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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인민봉기를 통해 과시한 민족자주정신과 불굴의 기개​

2018-02-28    김국철

지금으로부터 99년전 3월 1일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우리 인민이 전민족적인 반일애국항쟁에 떨쳐나섰던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겨레는 일제의 무단통치의 악랄성과 함께 우리 인민이 발휘한 애국적장거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사에 빛나는 장을 아로새긴 3.1인민봉기는 강도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자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정신과 불굴의 기개, 열렬한 애국정신을 온 세상에 과시한 전민족적인 반일애국항쟁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3.1인민봉기를 통하여 조선사람들은 우리 인민이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며 나라를 찾기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20세기초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로 말미암아 조선인민은 자주성을 무참히 유린당하고 인간이하의 정치적무권리와 빈궁속에서 신음하였다. 그리하여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조선인민의 쌓이고쌓인 민족적울분과 사무친 원한은 극도에 이르게 되였다.

강도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두고 가슴을 치며 통탄하던 2천만 조선민족은 마침내 1919년 3월 1일 전국도처에서 전민족적인 반일항쟁에 분연히 궐기해나섰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세차게 타오르던 반일항쟁의 불길은 거의 1년동안 계속되였다.

 

3.1인민봉기를 통하여 조선인민은 무엇보다도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자주적인민으로 살며 발전하려는것은 모든 나라 인민들의 공통된 요구이며 지향이다.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만이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요구와 의사대로 살며 발전할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 인민들은 자주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할 때만이 나라와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이룩해나갈수 있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자기 조국과 민족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용감히 싸워온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다.

전국도처에서 용감히 분기해나선 3.1인민봉기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분쇄하고 자주적인민으로 살것을 원하는 우리 인민의 자주정신을 과시한 전인민적항쟁이였다.

 

3.1인민봉기의 나날에 우리 인민이 높이 든 구호는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 만세!》였다. 이 구호들에는 조선인민은 그 어떤 외세의 예속과 구속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지향과 요구가 담겨져있었다. 전체 조선인민을 반일항쟁에로 떠미는데 크게 기여한 독립선언서에도 우리 인민의 민족자주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여있었다. 먼저 조선은 독립국이며 조선사람은 자주민이라는것을 뚜렷이 명기한 선언서는 일제에 의한 조선침략책동을 낱낱이 폭로하고 일제의 《병합》정책을 철회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리고 남녀로소 막론하고 거리와 마을에 떨쳐나서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민족자주정신이 맥박치는 투쟁구호와 독립선언서는 우리 인민을 거족적인 반일항쟁에로 고무추동하였다.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시위투쟁으로 시작되였다.

 

3월 1일 평양에서는 각계각층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청년학생대표가 단우에 뛰여올라 《독립선언서》를 랑독하고 뒤이어 조선은 독립국가라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그러자 인민들은 북과 징을 울리며 《조선독립 만세!》를 목청껏 웨치면서 투쟁에 떨쳐나섰다. 떠날 때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위대렬은 삽시에 1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시위군중은 평양감옥을 둘러싸고 일제야수들의 폭압만행을 신랄히 규탄하면서 애국자들을 즉시에 석방할것을 요구하였다. 일제경찰들이 이 정당한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용감한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은 돌로 유리창을 까부시고 경찰서에 돌입하여 그곳에 구금되였던 60여명의 애국자들을 구원하였다. 이날 평양시민들의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밤늦게까지 줄기차게 벌어졌다.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반일독립만세시위투쟁의 불길은 세차게 타번지며 삽시에 전국을 휩쓸었다. 5월말에는 전국 232개 부, 군, 도(섬)가운데서 211개소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며 여기에는 220여만명의 인민들이 참가하였다.

이처럼 3.1인민봉기를 통하여 우리 인민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라는것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3.1인민봉기를 통하여 조선인민은 다음으로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서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보여주었다.

열렬한 애국정신은 자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대하는 고결한 마음으로 표현되며 자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더 높이 떨치기 위하여 발휘되는 숭고한 헌신성과 희생성으로 표현된다.

원래 조선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주의정신이 강한 민족이다.

불타는 애국심을 간직한 조선인민은 3.1인민봉기의 나날에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고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는 성스러운 싸움에서 무비의 용감성과 헌신성을 높이 발휘하였다.

거족적인 3.1인민봉기가 폭발하자 이에 질겁한 일제는 그것을 교살하기 위하여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일제살인귀들은 수많은 경찰을 내몰고도 부족하여 기마경찰대와 100여명의 군대, 별동대인 소방대까지 동원하였다.

일제야수들은 총칼과 쇠갈구리를 마구 휘두르면서 평화적인 시위자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학살하고 체포구금하는 야수적폭압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일제침략군과 경찰을 맞받아 용감하게 싸웠다. 

시위군중은 앞대렬이 쓰러지면 그 뒤대렬이, 뒤대렬이 쓰러지면 또 그다음 대렬이 앞장에 나서면서 전진하였다.

 

서울의 한 녀학생은 시위대렬에서 기발을 들고 달려나가다가 일제살인귀들이 군도로 오른팔을 내리찍자 왼손에 기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전진하였으며 왼팔마저 군도에 잘리웠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조선독립 만세!》를 불러 일제군경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또한 철산군의 14살 되는 한 소년은 시위에 참가했다가 일제침략자들의 총칼에 찔려 수십곳에 부상을 입고 숨지는 순간에도 어머니에게 저의 가슴에 칼자욱이 몇이나 되는가, 내 가슴의 뜨거운 피가 점점의 불꽃이 되여 섬나라를 태워버리도록 하겠다고 말을 하였다.

 

우리 인민의 불굴의 기개와 영웅적희생정신은 일제를 당황케 하였다. 

 

일제놈들도 3.1인민봉기가 《3월 하순에 이르러 마침내 13도에 쫙 퍼지였다. 이시기부터 4월 상순에 걸쳐서 각곳에서 련달아 일어났을뿐아니라 일반의 인심이 매우 험악해져서 경비기관(폭압기구를 의미)이 부족한것을 리용하여 교통의 형편에 따라 곳곳으로 퍼져갔다. 그 수단에 있어서도 곤봉, 낫, 괭이 혹은 참대창 또는 드물게 권총 등의 흉기를 사용하여 군대, 경무관헌에 저항할뿐아니라 관공서를 습격하여 방화 또는 파괴를 하고 일본인가옥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박해를 가하고 혹은 순사보, 헌병보조원의 집을 습격하고 심지어 경찰관을 죽이는 등 모질고 사납게 행동》하였다고 비명을 올렸다.

 

이처럼 우리 인민은 거족적인 반일항쟁에 떨쳐일어나 일제의 그 어떤 폭압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원쑤들을 맞받아 목숨걸고 싸웠다.

참으로 3.1인민봉기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민족적애국투쟁으로서 온 세상에 조선사람들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며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힘있게 과시한 전민족적인 반일항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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