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거 문화재략탈범죄를 다시금 고발한다​

지난날 일본은 조선의 이름난 도자기를 비롯한 문화유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략탈하여갔다.

우리는 일본이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문화재략탈범죄를 다시금 까밝히기 위해 전문가인 위국현동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음: 현재 일본에 우리 나라 문화재들이 얼마나 소장되여있는가.

대답: 지금 일본의 전국각지에는 고려자기만 하여도 3만~4만점이나 있다.

일본인들자체가 밝힌데 의하면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이 도꾜국립박물관에 4만여점, 네즈미술관에 수천점 소장되여있다. 뿐만아니라 크고작은 박물관들과 대학, 절간들에 도자기, 금속공예품, 자개박이공예품, 불상, 그림, 도서, 활자 등 우리 나라의 다종다양한 문화유물이 전시 또는 보관되여있고 개인들도 수많이 가지고있다. 이것을 다 합치면 수십만점에 달한다.

물음: 그 모든 문화재들은 어떻게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였는가.

대답: 임진조국전쟁시기에 일본침략자들은 문화재들을 대대적으로 략탈하여갔다. 그래서 임진조국전쟁을 《도자기전쟁》이라고도 하고있다. 그때 일본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의 가치있는 도자기들을 략탈하였을뿐아니라 수많은 도자기기술자들과 장공인들도 랍치하여갔다.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값진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여갔다.

물음: 임진왜란때 일본이 도자기에 그토록 관심이 컸던 리유는 무엇인가.

대답: 남들보다 뒤늦게 문명의 길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당시 차를 즐겨마시는것이 풍조로 되였다. 그때 일본인들은 조선사람들이 일상시에 흔히 쓰는 밥그릇과 같은 평범한 자기들을 가져다가 차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 도자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욕망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것은 당시 고려말기의 차종지(공기) 한개가 쌀 1만석에 해당한 비싼 값으로 거래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잘 알수 있다.

물음: 일본은 자체로 자기를 만들지 못하였는가.

대답: 당시 일본의 큰 도시들에 도자기굽는 기술집단이라는것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자기들은 매우 보잘것없는것들이였다. 좋은 도자기를 가지는것은 일본의 《세기적인 숙망》이였다.

물음: 17세기초 일본에서 《흰 사쯔마》라는 도자기가 출현하여 최고급자기로 인기가 대단하지 않았는가.

대답: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때에 끌려간 박평의라는 도자기기술자가 만들어낸것이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땅으로 끌려간 도자기기술자들은 낯설은 산야를 헤매이며 도자기흙을 찾아내고 원료와 유약을 만들어 일본인들을 깜짝 놀래우는 도자기들을 만들어내였다. 도자기에 대하여 서술한 일본도서들에는 당시 일본이 이름난 자기라고 자랑한것들은 다 조선인도자기기술자들이 일본의 각 지방에서 만든 도자기이며 그것들은 일본도자기의 조상으로 되였다고 밝혀져있다.

오늘도 일본의 이름있는 도자기기술자들의 족보를 따져보면 모두가 우리 나라 도자기기술자들의 후손들이다.

물음: 《을사5조약》날조이후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에 대한 일본의 략탈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감행되였는가.

대답: 략탈행위에는 관권과 군권이 총발동되였다. 무력을 동원하여 전국각지의 왕릉들을 도굴하였으며 귀중한 유물들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개성에 있는 경효왕릉(공민왕릉)에서만도 달구지 10여대분의 유물들을 털어갔다.

조선통감부의 첫 통감이였던 이또 히로부미는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등에 보존되여 대대로 내려오던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수많은 도자기들을 빼내여 일본왕과 왕족, 귀족들에게 섬겨바쳤을뿐아니라 부하들과 공모하여 일본의 박물관이나 골동품장사군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폭리를 보았다. 두번째 통감이였던자는 략탈하는데서 물의가 일어나는것은 남몰래 가져가기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선물하는것으로 한다면 아무 지장이 없지 않은가고 하면서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들에 대한 략탈을 적극 장려하였다.

물음: 일본이 우리 나라에 대한 총독통치를 실시할 때에 문화재략탈행위가 더 악랄하게 감행되지 않았는가.

대답: 일제는 1916년에 조선고적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 연구회와 법령, 규정 등을 조작하고 유적조사로부터 발굴처리에 이르기까지 일체 조선총독부와 일본인들만이 관할하게 하였다. 그리고 조선사람들이 유적을 발굴하는것을 금지하였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찌는 경복궁의 한 건물을 헐어서 자기 고향으로 날라다가 그대로 다시 짓고는 《조선관》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우리 나라의 도자기들과 수많은 불상, 금속공예품, 장신구들을 전시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관리들과 조사위원, 고고학자, 골동수집가 등의 각종 탈을 쓴 일본강도배들은 헤아릴수없이 많은 가치있는 문화유물들을 도굴략탈하여 일본으로 빼돌렸을뿐아니라 《연구》, 《진렬》의 명분을 걸고 일부만을 형식상 비치하였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일본으로 실어갔다. 고고학자의 탈을 쓰고 기여들었던 가루베라는자는 백제시기 중류급이상의 무덤들을 매해 수백기씩이나 도굴하였다. 1963년에 이자는 일본기자와의 회견에서 《백제고분 2 000기를 도굴하였으며 그것을 장사군에게 평가시켜보았더니 3억 수천만¥이라고 하였다.》고 실토하였다.

물음: 문화재략탈행위에 대한 일본정객들의 립장은 어떠한가.

대답: 일본정객들은 조상들의 략탈행위를 《가장 볼만 한 문화사업》이였다고 찬양하며 추어올리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략탈한 문화재들을 저들의 《국보》로, 《중요문화재》로, 《중요미술품》으로 등록해놓고 선전하면서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란도질하고있으며 세계를 우롱하고있다.

일본의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본국보라고 세계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 미를 찬양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것은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것은 력사가들도 립증하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당히 말해서 조선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증오와 격분으로 높뛰는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서 특대형반인륜범죄를 저지른데 대해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조상들의 날강도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정당화하는 일본이야말로 우리의 천년숙적이다.

주체107(2018)년 12월 11일 로동신문

손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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