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언론계가 폭로한 치떨리는 과거죄악

일본은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통치기간 국가권력을 총발동하여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랍치, 유괴, 강제련행하여 죽음의 전쟁터와 고역장들에서 강제로동과 성노예살이를 강요한 극악한 랍치국이다. 일제의 가증스러운 만행에 대해서는 일본의 언론계도 광범히 보도하였다.

잡지 《아사히져널》 1991년 11월 1일호에는 일제에게 강제련행되였던 조선인로동자 김경식에 대한 자료가 실렸다.

1942년 10월 김경식은 집안의 세대주로서 대를 이어야 할 형이 강제련행당할 위험에 빠지게 되자 자신이 형을 대신하여나섰다. 16살이였던 그는 어느 한 제강소에 강제로 끌려가 그때부터 휴식일이 없이 일하며 고역을 치르게 되였다.

잡지는 1990년에 일본정부가 조선인강제련행자 총수자를 극히 줄여서 발표한데 대해 폭로하였다. 그러면서 자국정부가 조선인강제련행자조사에 소극적이였던것은 이 문제에 깊이 들어가면 새로운 배상문제를 야기시킬수 있다고 걱정했기때문이라고 까밝혔다.

잡지 《아사히져널》 1992년 1월 31일호에도 《종군위안부 110번 련이어 날아드는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조선녀성들을 성노리개로 마구 유린한 일제의 천인공노할 죄행을 고발하는 증언자료들이 실렸다.

그에 의하면 《일본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회》 등 시민단체가 한두명도 아닌 수많은 조선녀성들을 랍치하여 일본군성노예로 끌고간 일제의 죄행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기 위하여 《종군위안부 110번》(구급전화번호)을 개설하였다. 결과 1월 4일부터 3일동안에만도 230건의 전화정보가 입수되였다. 정보제공자의 대부분은 이전 군인, 군속들과 그 가족들이며 그들이 한 증언의 태반은 전장에서의 성노리개로 유린당한 조선녀성들의 비참한 실태를 알리는것들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잡지는 전화로 알려온 증언들의 일부를 렬거하였다.

이전 녀교원: 나는 1943년 당시 전라남도의 국민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원을 하고있었다.

어느날 교장으로부터 비행기부분품작업원으로 일할 《정신대》 8명을 선발하라는, 특히 체격이 실하고 비교적 가정이 가난한 아이들을 고르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로 말하면 일본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때이라 나는 깊이 생각지도 않고 11살안팎의 학급학생 8명을 골랐다.

전후에 제자들을 만났을 때 《정신대》로 내보낸 녀학생들이 사실은 일본군성노예로 되였고 그후 행방불명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연실색하고말았다.

이전 군인: 시모노세끼에 머물러있던 때의 일이다. 같은 려관에 묵고있던 10명가량의 젊은 조선녀성들이 울고있기에 사정을 물었더니 남방에 파송되여 성노예로 된다는것이였다.

이전 군의: 나는 이시가끼섬에 있는 부대에 배속되여있었다. 그 부대에서 다른 지구의 부대에 성노예가 모자라니 곧 보충해줄수 있으면 보고할것이라는 무전을 친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우리에게 예비병 있음. 당장 호송하겠다.》는 대답이 다른 지구의 부대에서 왔다. 며칠후 구축함 2척에 20~30명의 조선녀성들이 실려왔다.

이전 경관의 자식: 나의 아버지는 조선농촌에서 경관으로 있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녀성들을 조달하라는 군대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집행하였다. 그 녀성들이 성노예로 되였다는것을 후에 알게 된 어머니는 격분하여 아버지와 크게 다투었다.

당시 아버지는 군대의 명령이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세계최대의 랍치국이며 특대형반인륜범죄국인 일본은 천인공노할 과거죄행을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다.

주체107(2018)년 12월 16일 로동신문

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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