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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대를 이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데 대하여

교시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주체81(1992)년 3월13일, 주체82(1993)년 1월 20일, 3월 3일 항일혁명투사들, 혁명가유자녀들과 하신 담화이다.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의  기본사상;

사회주위업,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야 한다는것이다.

 로작의 구성체계;

1.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본질적특성과 불패성에 대하여

2. 사회주의위업,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나갈데 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작의 앞부분에서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하실수 있은  비결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 동지들과 인민들이 극진히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해드린데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의 지지와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내가 80살이 넘은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적극 보호해준 덕분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혁명의 길은 매우 준엄하고 시련에 찬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세대 혁명가들로 주체적인 혁명대오를 준비하시면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나가시던 초기혁명활동시기도 어려운 나날이였고 아무러한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자체로 유격대오를 조직하여가지고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면서 강대한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 싸우시던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말할수 없이 간고한 나날이였다.

특히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시던 나날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랐으며 사선의 고비도 수없이 넘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그때마다 동지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적극 도와드리고 위험에서 구원해드리였으며 성심성의로 보호해드리였다.

 

 지하투쟁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도와드린 한영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얼마전에 한영애 의 딸을 만나보았는데 한영애는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자신의 혁명사업을 도와주고 신변을 보호해준 잊을수 없는 은인의 한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그는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여 투쟁할 때 자신께서 적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으며 5.30폭동후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교하를 거쳐 할빈에 가서 활동하실 때에도 모든것을 다하여 적극 도와주었다고, 그후 그는 할빈에서 자신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수행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였는데 적들의 고문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고 하시였다.

 

 오중홉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흡동무는 항일유격대의 지휘관으로서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부터 먼저 생각하였으며 자신을 목숨으로 보위한 충직한 혁명투사였다고 하시면서 백두산지구에서 활동하시던 어느해 겨울 홍두산밀영에 가시여 얼마 안되는 대원들과 같이 설명절을 쇠고계시던 때의 일을 회고하시였다.

당시 거기에 적은 인원밖에 없다는것을 내탐한 적들은 사령부를 포위소멸해보려고 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가지고 불의에 기습하여왔다. 그때 오중흡동지는 부대를 거느리고 림강쪽으로 행군해가고있었는데 도중에 적《토벌대》가 사령부가 있는 홍두산밀영쪽으로 이동해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사령부가 위험에 처할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즉시 부대를 돌려세워가지고 단숨에 달려왔다.

그는 사령부로 기습해오던 적들을 배후에서 공격하여 완전히 소멸해버리였다. 

이렇게 되여 사령부는 위험을 면하고 무사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자기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고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위험에서 구원해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수없이 많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제1차북만원정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대원들과 인민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구원되였다고, 북만에서 돌아오던 도중 촉한을 만나 사경에 처하였을 때 목재소에서 만난 김로인과  로야령  에서 살던 최일화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살아나지 못하였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하신 제1차 북만원정은 수령님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주체23(1934)년 10월부터 주체24(1935)년 2월까지의 사이에 북만일대에 진출하여 벌린 군사정치활동을 말한다.

천교령목재소에서 잡일을 하던 김로인은 조선의 운명이시고 조국해방의 구성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여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어지간한 작전가들도 궁리해내기 어려운 대담한 묘안으로 적의 2중3중의 경계망을 뚫고 사선의 고비를 넘을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였다.

 

 

 조택주, 최일화내외와 그들이 수령님께 삼가올린 만년필

 

최일화가족은 조택주로인내외와 맏아들 조욱, 맏며느리 최일화, 둘째아들 조경을 비롯한 손자, 손녀 14식구나 되였다. 김로인의 도움으로 적의 포위망을 무사히 벗어난 유격대원들이 간난신고끝에 로야령의 깊은 산속에서 숨어살고있던 이 일가를 만났을 때까지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식을 잃고계시였다.

이미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알고있던 조로인은 수령님을 하늘이 낸 장수이시라고하면서 수령님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온갖 지성을 다 바치였다.

특히 맏며느리 최일화어머니는 지성을 다하여 수령님의 병구완을 해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자신을 보호해준 은인들가운데는  장울화 를 비롯한 중국사람들도 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장울화

 

장울화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련계를 가지고 지하활동을 하던 도중에 변절자의 밀고로 적들에게 체포되여 고문을 받았는데 혹시 무의식중에 헛소리라도 하여 수령님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의 위치를 루설할가봐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다.

장울화동지 역시 잊을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동지이며 은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동지들이 생기고 어려운 때 은인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자신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실지 겪은 체험을 놓고 그렇게 말하고싶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 언제나 동지들의 방조를 받았고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인민들의 구원을 받았기때문에 끝까지 싸워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었다고, 속담에도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장군이 될수 없으며 인민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수도 혁명에서 승리할수도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락관적으로 생활하신데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이 오래 살면서 혁명을 하려면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락관적으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사람이 오래 살면서 혁명을 할수 있는 비결의 하나는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락관적으로 생활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인민대중을 위한 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있기때문에 사업과 생활에서 비관을 모른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든든한 배심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언제나 락관적으로 생활해왔으며 당시까지도 여전히 락관적으로 생활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자신께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의 하나이다, 언제나 비관을 모르고 락관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가르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것으로 하여 언제나 동지들과 인민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흠모를 받으신 절세의 위인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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