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한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바쳐 싸우신 열렬한 혁명가, 인민의 참된 충복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실성을 지니고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호보위하시여 조선혁명이 승리의 한길을 걸어올수 있게 하시였으며 비범한 예지와 백절불굴의 강의한 의지로 수령님을 직접 보좌하시여 조국해방과 새 조국건설의 거창한 위업을 수행하는데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생애와 활동은 혁명하는 사람들이 수령을 모시는 립장과 자세가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가르쳐주고있다.
김정숙동지의 생애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혁명위업에 대한 굳은 신념과 무한한 헌신성, 한없이 고결한 혁명적의리, 혁명동지들에 대한 불같이 뜨거운 사랑,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강철의 의지, 계급적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와 비타협적인 투쟁정신, 더없이 겸손하고 소박한 인민적품성으로 일관된 참된 혁명가의 빛나는 생애였다.
김정숙동지의 혁명적생애는 혁명의 폭풍우속에서 주체혁명위업의 대를 굳건히 이어놓으신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와 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영원불멸할 혁명업적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친위전사, 항일의 녀성영웅, 탁월한 정치활동가, 혁명의 어머니로 영생하고계시며 그이의 존함은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찬연히 빛나고있다.
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생애와 활동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한 투쟁에 나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따라배워야 할 위대한 귀감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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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6(1917)년 12월 24일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덕동의 극빈한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
회령은 북관 6읍의 하나로서 예로부터 살기좋고 아름다운 고장으로 일러왔다. 특히 오산덕은 기슭으로 팔을천의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봄이면 연분홍진달래와 하얀 살구꽃이 만발하여 사람들이 《오산덕에 꽃노을이 피였다.》고 하는 회령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였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강점후 회령에는 일제침략무력의 집결지로서 지방폭압통치기구들과 경제략탈기구들이 집중되여있었다.
김정숙동지의 일가는 원래 함경북도의 어느 바다가마을에서 살다가 할아버지대인 1895년경에 이곳 회령으로 이주하였다.
김정숙동지의 일가분들은 이곳에서 소작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시다가 김정숙동지께서 탄생하실 무렵에는 빚값으로 지주놈에게 소작지를 빼앗기고 초가집마저 헐리워 더는 한집에서 모여살수도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김정숙동지의 할머님과 삼촌네 식구들은 두만강을 건너 연길현 북구에 가게 되였고 김정숙동지의 아버님네는 오산덕에 있는 남의 집 곁방을 얻어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후 아버님께서 이듬해에 곁방을 부엌과 정지간으로 고치고 그에 잇달아 방을 한칸 더 늘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로 이 집에서 수난겪는 조선의 딸로 탄생하시였다.
-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가정은 온 일가분들이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바쳐 싸운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이였으며 대대로 소작살이, 머슴살이로 어렵게 살아오면서도 정의를 사랑하고 뜨거운 인간애를 미덕으로 삼아온 참된 가정이였다.
○ 김정숙동지의 가정은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이였다.
• 할아버님은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하시였으며 일찌기 봉건통치배들과 지주놈들을 반대하는 농민봉기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시였고 후에는 고향을 떠나 회령에 오신후 세상을 떠나시였다.
• 아버님 김춘산선생님은 애국애족의 높은 뜻을 품으시고 일찌기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제를 반대하여 굴함없이 싸운 애국투사로서 주체18(1929)년에 이국땅에서 한많은 생을 마치시였다.
• 어머님 오씨는 반일독립운동에 나선 남편의 사업을 적극 뒤받침하면서 자제분들을 대바르고 훌륭하게 키우시다가 주체21(1932)년 7월 일제의 《토벌》에 희생되였다.
• 오라버님 김기준동지는 능숙한 지하공작원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시다가 주체23(1934)년 적들에게 학살되였다.
• 동생 김기송동지도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아동단원으로서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생을 마친 용감한 소년혁명가이시였다.
○ 김정숙동지의 가정은 극빈한 소작농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로동으로 생활을 개척하여온 근로하는 인민적가정이였으며 고결한 인품과 의리심을 지니시고 정의를 사랑하는것을 가풍으로 삼아온 가정이였다.
김정숙동지의 어머님께서는 가난속에 사시면서도 어린 자제분들에게 《귀한건 사람의 마음이란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은 곱게 먹구 살아야 한단다. 돈이나 재물이 무엇이겠니. 그까짓거야 모두 써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마음은 쓰면 쓸수록 빛이 나는 법이다.》라고 하시며 사람이란 언제나 의리를 지키며 참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한 생각보다 부모형제들과 이웃들을 위한 마음을 더 쓰게 되시였다.
한번은 김정숙동지께서 밭에 나가신 어머님의 집안일을 덜어드리려고 물을 길으시다가 돌부리에 걸채여 그만 옹배기를 깨뜨린적이 있었다. 밭일을 끝내고 돌아와 이 사실을 아신 어머님께서 깨진 옹배기는 때면 된다고 하시였으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쉬운 생각을 좀처럼 버리실수 없었다.
며칠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는 토기점으로 찾아가시였다. 거기에서는 질그릇을 구워내고있었는데 토기가마에서 질그릇을 꺼내는 날에는 일손이 딸려 마을녀인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고 그 삯으로 질그릇들을 주군하였다. 그러나 너무 어리신 김정숙동지에게는 그 일감마저 차례지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칭얼대는 어린애를 등에 업고 힘겹게 일하는 한 녀인을 보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보채는 어린애와 어린것을 돌볼 겨를도 없이 땀흘리며 일하고있는 녀인의 정상이 너무도 가긍하였기때문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녀인의 등에서 우는 어린애를 내리워 한낮이 될 때까지 봐주시였다.
드디여 일이 끝나자 토기점주인은 녀인들에게 질그릇을 몇개씩 나누어주었다. 질그릇들을 받은 애기어머니는 급히 어리신 김정숙동지에게로 달려와 애기를 받아안으며 세상에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는가고 하면서 옹배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이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굳이 사양하시였다.
그러나 녀인은 뉘집 딸인데 이렇게 마음이 고운가고 하면서 옹배기 하나를 끝내 어리신 김정숙동지께 안겨주시였다. 지금도 회령고향집의 부뚜막에는 그 작은 옹배기가 그대로 놓여있다. 그 옹배기는 오늘도 가난한 생활속에서도 남이 당하는 불행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적극 도우신 김정숙동지와 일가분들의 고결한 인품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이처럼 끊임없는 불행과 상실의 아픔을 당하면서도 민족적, 계급적 모순에 항거하여 굴함없이 투쟁한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일찍부터 열렬한 조국애와 높은 계급의식, 숭고한 풍모를 지닌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시게 된 터전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