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의 항일전 학습을 하면서요 그분께서 머슴군신분으로 푸르허마을에 들어가시여 대중계몽사업을 하셨다는걸 알게 됐는데 놀랍습니다. 왜 그분께서 꼭 거기에서 머슴군이 되시여 활동하게 되셨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한동서 [ 일본 - 사무원 ] 2018-07-12 11:48:47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       2018-07-14 18:19:3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쟁준비를 마감하시던 시기인 주체21(1932)년 2월부터 3월까지의 사이에 푸르허마을에 가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하기 위한 사업에서 푸르허마을을 중시하신것은 우선 푸르허가 앞으로 유격활동을 벌리는데서 매우 유리한 곳이였기때문이였습니다.
푸르허는 안도에서 돈화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였습니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푸르허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소사하일대와 린접해있었을뿐아니라 남만은 물론 만주 각지로 드나드는 길목에 놓여있었기때문에 각지 혁명조직들과 련계를 강화하고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곳이였습니다. 이곳을 거치지 않고서는 돈화지방이나 남만일대를 자유롭게 왕래할수 없었습니다. 또 이 마을을 혁명화하지 않고서는 소사하, 대사하, 류수하를 비롯한 린접마을들의 안전을 담보할수 없었습니다. 푸르허마을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준비사업을 마음놓고 내밀수가 없었으며 무장대오가 조직된다 하여도 자유롭게 활동할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푸르허마을을 중시하신것은 또한 농촌혁명화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숭고한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자는데 있었습니다.
당시 적들은 푸르허마을에 밀정을 박아넣고 인민들의 일거일동을 엄격하게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기만 해도 닥치는대로 체포,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고있었습니다.
조직에서는 푸르허마을의 지형상 유리한 점을 고려하여 유능한 공작원들을 여러번 파견하였으나 매번 실패하였습니다.
거기에 혁명조직을 꾸려놓아야 하겠는데 누구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다 잡혀서 목숨을 잃었으므로 묘책을 찾아낼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목숨을 내대고 들어가서 군중을 각성시키고 혁명조직을 꾸려야 하며 또 군중의 힘을 발동해서 적의 밀정들을 적발해내여 이 마을을 혁명적인 마을로 꾸려야만 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공작원들에게 혁명가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란 있을수 없으며 범을 잡자면 범의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는 한편 무장투쟁을 벌리는데서 나서는 전반적사업을 성과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하여 이 농촌마을의 혁명화를 몸소 맡아나서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변을 념려하는 동지들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부락에서 활동하고있는 혁명조직성원의 집 《머슴군》으로 가장하고 마을에 들어가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푸르허마을을 혁명화하시는 기간 비범한 사업수완과 한없이 넓은 도량,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지니시고 마을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시고 조직적으로 결속하여 온 마을을 완전히 혁명화하시였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푸르허마을혁명화를 통하여 보여주신 실천적모범과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동만 각 현들에서는 농촌혁명화가 성과적으로 추진되게 되였습니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