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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실학자이며 작가인 박지원과 《열하일기》​

2017-11-09   박철만

18세기의 이름있는 실학자이며 작가인 박지원은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박지원의 자는 중미, 호는 연암, 시호는 문도라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글읽기와 함께 문학과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옛이야기를 듣는것을 즐겨하였으며 점차 자라면서 국내외의 많은 책을 탐독하여 철학, 력사, 천문, 지리, 풍속, 문화 등 여러 분야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실학사상에 접촉하게 되고 또 본격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과정에 농촌현실을 볼수 있었고 착취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생활감정과 지향을 리해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20대~30대의 청년기에 벌써 봉건통치배들과 봉건사회에 대한 비판자, 그 부패한 현실의 폭로자로 등장하게 되였다.

그의 이런 사상경향은 《광문전》, 《민옹전》, 《김신선전》, 《우상전》, 《량반전》 등의 많은 작품에 반영되였는데 특히 《량반전》에서 부귀와 공명만을 바라면서 허송세월하는 봉건량반들의 부패한 생활을 통하여 량반들의 위선적인 《례의범절》과 그들의 략탈행위를 폭로하였다. 그는 또한 명산을 탐승하기를 즐겨하였는데 금강산을 비롯한 전국의 명산 등을 돌아다니며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와 농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시도 지었다.

박지원은 말년에 벼슬길에 나서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영농법에 관한 의견과 토지제도를 조절할데 대한 책들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당시의 부패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일련의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그에 대한 보수적인 량반들의 압력이 한층 더 심해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독서로 세월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박지원은 우수한 문학작품을 적지 않게 창작하고 진보적인 사회정치적견해도 내놓은 이름있는 작가였고 실학자였으나 계급적 및 력사적제한성으로 하여 결국 량반지배계급의 립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1780년대에 압록강을 건너 열하에 이르는 2 000여리에 걸치는 긴 로정에서 보고들은 사실들을 적은 려행기로서 정치, 경제, 철학, 천문, 지리, 풍속, 력사, 고적, 문화 등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령역에 걸치는 많은 문제들을 취급하고있는 책이다.

필자는 려행기를 서술함에 있어서 첫장을 이루는 《압록강을 건너서》에서는 려행행로에 따라 견문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는 일반적인 기행문형식을 취하였으나 그 다음장부터는 각이한 형식을 취하였다.

작품은 독자적인 내용의 주제를 가진 수필,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글들로 엮어져있다.

《열하일기》에서 필자는 려행견문체험에 기초하여 활차를 리용한 드레박, 벽돌로 쌓은 규모있는 주택, 퇴비쌓기, 발달된 교통, 여러가지 편리한 수레, 번창한 상품류통 등에 대해 쓰고있으며 좋은것을 배울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낡은것을 버리고 새것을 창조하여 우리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개혁하려는 사상, 이것이 《열하일기》에 관통되여있는 기본지향이다.

《열하일기》에는 《허생전》, 《범의 꾸중》과 같이 문학사적으로 의의있는 작품들도 들어있는데 여기서는 당시 봉건사대부들의 부패성을 폭로비판하고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형편과 그것을 동정하며 상업을 발전시키고 생산을 늘일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형상적으로 해명하였다.

《열하일기》는 당시 진보적인 사상조류였던 실학사상으로 일관되여있고 특히 근대적개혁에 관한 사상적지향을 반영한것으로 하여 당시 우리 나라의 진보적문학발전경향과 실학자들의 사회개혁사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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