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산사건》​

일제가 1937년과 1938년에 압록강연안일대에서 감행한 조선의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두차례의 대검거사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1930년대 후반기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에서 혁명력량이 급속히 장성강화되자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헌병, 경찰, 밀정들을 동원하여 이 일대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을 찾아내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그러던 주체26(1937)년 10월 상순 어느날 갑산군 운흥면 철도공사장에서 일하던 한 조직성원이 체포되였으며 그때로부터 5일후에는 또 무산군 백무선 철도공사장에서 한 조직성원과 애국적인민들이 체포되였다.

이것을 계기로 일제는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제1차검거선풍을 일으켰으며 그것은 삽시에 혜산을 중심으로 한 국내와 장백일대를 휩쓸었다. 이 검거때 장백현에서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던 권영벽, 리제순을 비롯하여 당 및 조국광복회조직성원들이 수많이 체포투옥되였다.

제2차검거는 1938년 5월부터 10월까지의 사이에 감행되였다. 이때 박달을 비롯한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이 수많이 구속되였다. 일제교형리들은 검거투옥한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을 야수적으로 고문학살하였으며 1941년 8월에는 《혜산사건》이라는 이름밑에 《함흥지방법원》에서만도 167명에게 비법적인 《유죄》판결을 내리고 많은 애국자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등을 언도하여 그들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이관하였다.

이 검거사건은 조선혁명가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책동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큰 검거사건이였다. 일제는 《혜산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조선의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을 체포학살하고 혁명조직을 일시 파괴할수는 있었으나 결코 조선인민을 놀래울수는 없었으며 조선혁명을 말살할수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혁명조직에 굳게 뭉쳐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더욱 힘있게 떨쳐나섰다.

《혜산사건》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은 일제를 반대하여 견결히 싸우고있다는것과 놈들의 최후발악적책동이 반드시 전면적인 파탄을 면치 못하리라는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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