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옥과 《공후인》​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자기의 고유한 음악과 예술을 창조하여오면서 훌륭한 전통을 이룩하였다. 비록 살림은 가난하였으나 그속에서도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면서 자기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든것을 노래에 담았다.

우리의 음악은 고조선시기에 벌써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

려옥에 대한 이야기가 이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고조선의 민간음악가였던 려옥은 B.C. 5~B.C. 4세기 사람으로 보고있다.

고조선의 수도 평양의 대동강나루가에는 곽리자고라는 배사공이 안해 려옥과 함께 자그마한 초가집에서 살고있었다. 그들부부는 나루배에 의지하여 오가는 길손들을 성의껏 건늬여주면서 살림을 꾸려나갔다.

저 멀리 먼동이 터오면 려옥의 초가집 사립문이 조용히 열리고 부지런한 곽리자고는 기다란 노대를 어깨에 멘채 안해의 눈바래움을 받으면서 강가로 성큼성큼 나서군 하였다. 대견스런 그 큰걸음에 려옥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을 내보낸 후이면 려옥은 베틀에 마주앉아 바디를 놀리거나 터밭의 남새를 가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종 남편을 도와 강기슭을 오가면서 동리사람들의 고달픈 생활을 눈여겨보았고 그속에서도 꽃과 같이 피여나는 인정의 면모를 뜨겁게 새겨두었다.

어둠이 서려드는 저녁이 오면 곽리자고의 초가집에서는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공후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곽리자고는 보고 또 보아도 싫지를 않을 안해의 정다운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면서 벽에 등을 기댄채 공후의 소리를 듣군 하였다.

려옥은 글도 잘 짓고 공후도 잘 탔다. 공후의 줄을 골라가는 날랜 손놀림에 곽리자고는 넋을 잃군 하였다.

곽리자고뿐아니라 온 동네가 그의 노래를 즐기였다. 명절이면 의례히 려옥의 공후연주를 청하였고 그의 노래를 듣기도 하였다.

어느날 려옥은 옆집에 사는 려용이라는 녀인과 함께 성안에서 일어난 일을 놓고 눈물을 흘렸다. 글쎄 비왕(고조선의 급높은 관직)의 친척된다는 사람이 그만 병에 걸려죽었는데 그가 데리고있던 종 60여명을 그 집의 안해와 함께 무덤속에 함께 묻었다니 기막힌 일이였다.

노예주가 죽으면 같이 매장하는 당시의 법이니 할수 없는 일이였다. 저세상에서도 생존시와 꼭같이 주인을 받들라는것이다. 억울해도 어디에 하소연 할길 없는 그들이였으니 한숨만 나갈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언제나와 같이 싱글벙글 웃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던 곽리자고가 오늘은 웬일인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오더니 노대를 마당가에 놓고 토방돌에 털썩 걸터앉는것이였다.

려옥은 달려가 넘어진 노대를 바로 세우고 곽리자고에게로 돌아섰다.

《어인 일이오이까. 혹시 나쁜 일이라도?…》

그러자 곽리자고가 한숨을 지으며 그날 강변에서 있은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여느날보다 일찍 나루가에 나간 곽리자고는 아직 이른아침이라 몇사람의 길손을 배에 태우고 서서히 노를 저어가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건너편 강변에서 별안간 백발을 풀어헤친 한 늙은이가 미친 사람모양으로 한손에 그 무엇인가를 거머쥔채 세차게 흐르는 물결을 질러 강복판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배에 올랐던 길손들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런데 뒤를 따라 늙은이의 안해로 짐작되는 녀인이 두손에 공후를 들고 달려오고있었다.

그러면서 건너가지 말라고 소리쳐불렀다.

하지만 늙은이는 하늘을 향해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리였다. 안해는 그만 그자리에 주저앉아 몸부림치더니 공후를 부둥켜안고 손으로 땅을 치면서 《공무도하가》를 탔다.

처절한 울음소리는 배에 탔던 사람들의 가슴을 허비였다. 스산한 강바람만이 그 울음소리를 싣고 저멀리로 사라졌다.

남편을 강물속에 잃어버린 녀인은 슬픔과 괴로움을 참을길 없어 성큼 일어나더니 강물에 몸을 던져버렸다. 사람들이 녀인을 붙잡을 사이조차 없는 한순간이였다.

곽리자고는 주저없이 웃저고리를 벗어던지고 녀인을 구원하려 강물속으로 뛰여들었다. 그 누군가가 쓸데없는짓이라고 그의 팔을 잡았지만 곽리자고는 그냥 강물속을 헤쳐들어갔다. 이 강가에서 나서자란 그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찬 물결은 어느사이엔가 녀인을 데리고 가버렸다.

알고보니 그들부부에게는 귀여운 외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는 길가에서 그 누군가가 흘린 보석반지를 얻었다고 한다. 처녀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웃에 사는 노예주가 그를 도적으로 몰아대였다.

실은 처녀를 탐내여 그놈이 일부러 만든 《그물》에 가엾게도 걸려든것이였다.

법에 의하면 남의 물건을 훔치면 그 물건주인의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물건값에 달하는 베천을 내야 하는데 가난한 그의 살림에 있을리 만무하였다.

딸애는 결국 노예로 끌려가고 그 억울함을 어디에도 하소연할길 없었던 아버지는 더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로인은 타번지는 울분을 안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뒤따라 어머니까지도 그 신세가 된것이니 너무도 비참한 일이였다.

이야기를 마치는 곽리자고의 큰가슴에서는 동정의 한숨이 터져나왔고 그것을 듣고있던 려옥의 눈가에서도 가랑가랑 눈물이 고여내렸다.

그들부부의 심중에는 사품치는 강물에 몸을 던진 불쌍한 부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차있었다.

그날 저녁 뒤동산에서는 소쩍새가 여느때없이 구슬프게 울어댔다.

려옥은 공후를 끄당겨 부둥켜안고 곽리자고가 들려준 《공무도하가》를 재현시켜나갔다.

노래소리는 깊은밤 하염없이 울리고 또 울리였다. 그때 노래의 사연과 구슬픈 곡조를 듣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려옥은 그 곡조를 옆집에 사는 려용에게 들려주었는데 노래곡명을 《공후인》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때 려옥이 지어부른 《공후인》은 다음과 같은 한시로 번역되여 전해오고있다.

 

강 건느지 말랬는데

왜 굳이 건느셨소

물에 빠져죽었으니

님아 이 일 어이 하오

 

(님아 가람 건느지 마소

그에 님이 건느시네

물에 들어 늬오시니

어저 이를 어이 하료)

 

노래는 동네를 지나 온 나라에 불리워졌고 지경을 넘어 이웃나라에까지 널리 퍼지였다.

려옥이 지은 이 《공후인》은 고조선인민들속에서 깊은 공감을 받았으며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

서정적이면서도 처량한 《공후인》에 담겨진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선률은 그 시기 고조선사람들의 아름다운 세계를 잘 반영하였다고 할수 있다. 당시 려옥이 탄 공후는 열석줄로 된 현악기로서 매우 정교한것이였다.

《공후인》은 그 가사가 전해지는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랜 고대가요작품들중의 하나이다.

노래는 고조선인민들속에서 창조되고 대를 이어 내려온 민요성격의 가요작품이다.

노래에 담겨진 한 부부의 물에 빠져죽는 기막힌 이야기는 귀족들에게 시달리던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담은것으로서 노예소유자국가인 고조선시기의 형편을 보여주고있다.

또한 노래 《공후인》에는 이름없는 배사공의 안해까지도 가사를 짓고 악곡을 할줄 알며 공후를 훌륭히 타서 만사람의 가슴을 움직이였던 고조선시기 예술의 경지가 비껴있다.

고조선시기 민간녀류음악가였던 려옥이 지은 노래 《공후인》은 당시의 시대상과 인민들의 사상감정을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창작된 때로부터 수천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우리 인민의 정서와 재능을 담은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으로 길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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