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찾아 천리를 달려온 태자 유류

유류는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고주몽)의 맏아들이다.

동명왕의 아들인 유류가 아버지를 찾아 천리를 찾아와 태자로 되기까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유류는 아버지가 부여왕실의 박해를 피하여 남쪽의 구려땅으로 떠난 다음해인 B.C. 278년 부여국에서 태여났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불우하게 유년시절을 보내였다.

B.C. 270년 봄,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에 좋아라고 뛰노는 망아지의 갈갬질을 인내성있게 받아주며 혹 구를세라 어미말이 보살피는것을 보면서 등에는 화살이 가득 들어있는 전통을 메고 한손에는 활을 든 한 소년이 스적스적 발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자그마한 키, 밤송이같은 머리칼밑에 도드라진 이마, 반짝거리는 새까만 눈동자, 오똑한 코아래 꼭 다문 입술…

그가 바로 유류였다. 이날도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온 그는 지금 발가는대로 정처없이 가고있었다.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할머니나 어머니와 온종일 있기가 갑갑하였던것이다.

그가 버드나무밑을 지나고있을 때였다.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동네아이들이 왁 달려와 그를 에워싸고 유류의 활쏘는것을 좀 보여달라고 졸라댔다.

우울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왔던 유류는 자기의 솜씨를 한번 보여주리라 결심하고 화살을 하나 꺼내들었다. 어디에 가든지 항상 활을 가지고다니던 그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버드나무가지우에 앉은 새를 쏘라고 하는가 하면 울바자우에 돌을 올려놓고 그것을 맞히라고도 하였다. 이왕이면 돌보다 새를 맞히리라 결심한 유류는 곧 새를 겨누어 활을 당겼다.

그러나 다음순간 《핑-》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는 《아차》하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그가 화살시위를 놓는 바로 그때에 머리에 동이를 인 한 아낙네가 바로 그 화살앞으로 들어섰던것이다.

새를 향하여 날아가던 화살은 그만 그 동이를 맞구멍 내고말았다. 뚫려진 구멍으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류는 재차 다른 화살끝에 흙덩이를 붙이고 쏘았다. 그 화살은 다시 구멍을 명중시켜 메꾸어버렸다. 그제서야 그는 안도의 숨을 쉬였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였다.

유류가 침착하고도 날랜 동작으로 동이구멍을 메꾸어버리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감탄의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유류도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동이를 내려놓고 그들에게로 다가온 아낙네는 활을 집고있는 유류를 보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애비가 없으니 못된짓만 한다는 그 아낙네의 말을 듣자 유류의 얼굴은 이제까지 피여올랐던 기쁨의 웃음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그대신 원망과 증오의 빛으로 변하였다.

그는 너무 분한 나머지 활을 그자리에 팽개치고 한달음에 집에 달려왔다.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처럼 아버지없는 설음을 뼈저리게 느껴본적이 없었다. 이때 방안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 례씨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놀란 얼굴로 섧게 울고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달래는 어머니앞에서 실컷 울고난 유류는 자기는 왜 아버지가 없는가고 울먹이며 말하였다.

그러는 유류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너의 아버지는 여기서 몇백리 떨어진 곳에 있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임금이시다. 너의 아버지는 부여왕자들과 관리들의 모해와 시기가 항시적으로 뒤따르게 되자 이곳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셨다.》

유류는 어머니의 말을 눈한번 깜빡하지 않고 듣고있었다. 어머니의 말은 유류를 놀라게 하였다. 《유류야, 다음 내 말을 새겨듣거라. 너의 아버지는 이곳을 떠나실 때 아들을 낳으면 일곱모가 난 돌우에 선 소나무밑에 감춘 물건을 찾아내여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가서 놀생각을 집어치우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거라. 알겠느냐?》

다음날부터 그는 함께 놀자는 동네아이들의 권고도 뿌리치고 산으로 올랐다.

울창한 수림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을 샅샅이 훑으며 그는 일곱모가 난 돌우에 선 소나무를 찾기 시작하였다. 간난신고하여 소나무란 소나무는 죄다 찾아가 보았으나 그런 소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저녁 서산에 락조가 비낄 무렵이였다.

이날도 유류는 지친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저녁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도 듣는둥마는둥 하며 멍하니 바야흐로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때였다. 그가 앉아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두어걸음 되나마나한 곳에 있는 기둥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심결에 그곳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금시 휘둥그래졌다.

글쎄 기둥밑에 있는 주추돌이 일곱모가 나있는것이 아닌가. 유류가 달려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소나무기둥이였다. 그는 다급히 그밑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조금후에 쇠소리가 나며 그 무엇인가 부딪쳤다.

드디여 그의 눈앞에 절반정도의 칼토막이 나타났다. 그 순간 유류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렸다.

이때 유류의 나이는 불과 8살이였다.

그때부터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여년세월을 하루같이 활쏘기와 칼쓰기, 말타기훈련을 하였으며 그 나날에 여러 친구들과 사귀게 되였다.

B.C. 259년 4월 그는 드디여 어머니를 모시고 세 벗들인 옥지, 구추, 도조 등과 함께 고구려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한편 고주몽의 머리속에서는 요즘 웬일인지 지나간 나날들이 계속 맴돌았다. 비록 귀족가문에서 태여났으나 남다른 재주와 용맹을 소유한탓으로 하여 왕자들과 관료들의 시기와 모해를 받아 말먹이군을 하던 일, 그들의 위협이 더욱 로골화되자 사랑하는 어머니와 안해를 남겨두고 남하하던 일, 구려국에서 지반을 닦아나가며 마침내는 이 고구려를 세우고 주변소국들을 통합하여 령역을 넓혀나가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중에서도 부여의 왕자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벼리던 그밤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였다.

이제는 국가가 체모도 기본적으로 잡히고 령토도 넓혔으나 그에게는 마음놓이지 않는것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두 아들인 비류와 온조중에 누구를 태자로 삼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두 아들은 동명왕이 구려에 와서 장가든 소서노와의 사이에 난 아들들이였다. 그들은 비록 한 어머니배속에서 태여났으나 성격은 판이하였다.

형인 비류는 매사에 우유부단하면서도 고집이 셌지만 동생 온조는 남달리 똑똑하고 사물현상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고 사리에도 밝았다.

그리하여 동명왕의 정은 형보다 동생에게로 더 쏠리였다.

한동안 태자문제를 생각하느라니 그의 귀전에는 부여를 떠나올 때 불편한 몸으로 동구밖에까지 따라나와 부디 몸성히 다녀가라고 하던 안해 례씨의 그 랑랑한 목소리가 금시 들리는것만 같았다.

바로 이때 한 신하가 다급히 들어와 례씨와 유류일행의 도착소식을 아뢰였다.

조금후에 안해와 아들이 대궐안으로 들어섰다. 자기가 부여를 떠날 때에는 활짝 피여나는 함박꽃처럼 아름답고 싱싱하던 안해가 이제는 중년부인이 다되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옆에는 억실억실한 두눈동자에 훤칠한 이마와 성큼한 코마루를 가진 한창 혈기왕성한 20살안팎의 한 청년이 서있었다.

동명왕은 이 혈기왕성한 청년이 자기의 아들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증거물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유류는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였던 칼토막을 꺼내여 정중히 올리였다.

동명왕은 자기가 보관하였던 칼토막과 그것을 맞추어보고 나서야 자기 아들임을 확인하였다.

동명왕은 아들 유류의 무예를 시험쳐보기 위하여 대궐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유류는 곧 칼을 뽑아들고 이제껏 련마한 검술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그리고 화살을 날려 백보앞의 옥가락지를 단번에 맞혀 깨버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일제히 감탄의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동명왕은 즉석에서 유류를 태자로 삼았다. 그해 9월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유류가 왕위에 올랐다.

이렇게 되여 부여에서 애비없는 후레자식이라는 모욕을 받던 유류는 동방의 강대국인 고구려의 두번째 임금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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