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리왕의 국내성 천도

국내성은 5세기 초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400여년간이나 고구려의 기본수도로 되였다.

류리왕에 의한 국내성 천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동명왕이 졸본성에 수도를 정하고 우리 나라의 첫 봉건국가인 고구려를 세운 때로부터 어느덧 2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사이 임금도 여러 대를 거쳐 류리(명)왕(B.C. 19년-A.D. 18년)에 이르렀다.

때는 A.D. 2년 3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였다.

류리왕은 요사이 머리가 번거로와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몇해전 가을 그는 하늘에 제를 지낼 희생물인 돼지를 상하게 했다고 탁리, 사비 두사람을 죽여버린 일이 있었다. 그후 그가 병을 만나자 무당은 죽은 두사람이 원한을 품었기때문에 그들의 저주를 받아서 병이 생긴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이것이 또 무슨 화단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잡념을 털어버리려고 후원에 있는 꽃밭으로 나갔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향기로운 봄바람이 살살 불어오고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여나 그를 반겨주었다. 무릇 봄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푸른 하늘로 붕 띄워놓는 순풍과 같아 울적하던 그의 마음은 어느덧 가셔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요새 론의되고있는 천도문제가 여전히 감돌고있었다.

며칠전 오전에 있은 일이였다.

건국이후 300년 가까이 된 오늘에 와서 지금 수도로 정하고있는 졸본성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고 귀족관료들가운데서도 천도를 단행하자고 제기하는 축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그래서 그는 그날 동녘하늘에 아침해살이 퍼지기 시작하자 대신들과 장수들을 모두 불러들이라는 령을 내리였다.

잠시후에 그들이 다 모이자 류리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그대들을 이렇게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제기되고있는 천도문제틀 의논하여 아퀴를 짓기 위해서요. 자, 어디 한번 각자의 소견들을 말해보오.》

류리왕의 말이 끝나자 한 대신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우리 나라가 선지도 거의 300년이 되였소이다. 그 기간 소국들을 통합하고 외적들을 구축하면서 령역이 전에 비할바없이 넓어진 실정에서 지금의 도성은 너무 외진곳에 위치하고있어 여러모로 불편하옵니다. 이 졸본성은 험고한 산우에 쌓은것만큼 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편리하지만 교통에 불편할뿐아니라 이 일대에 큰 경야도 별로 없소이다. 그러니 여기보다 교통운수조건이 더 유리하고 물산이 많이 나면서도 유사시에 방어하기에도 유리한 지점을 선택하여 도읍을 옮기는것이 좋을것 같소이다.》

《음, 그럼 도읍을 어디로 옮기는것이 좋을것 같소? 어디 봐둔데라도 있소?》

그러자 지금껏 장황히 설명을 하던 그 신하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천도는 제기했지만 막상 옮기자고 보니 신통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던것이다. 다른 대신들도 적당한 곳이 생각나지 않는지 머리만 깊이 수그리고 있을뿐이였다.

그날 회의는 이렇게 새 수도를 정하지 못한채 끝나고말았다.

류리왕의 회상은 끝났으나 그는 여전히 수도를 옮길 장소를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어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다음날 아침 한 신하가 급히 달려왔다.

《그대는 무슨 일이 생겼길래 아침부터 그렇게 급히 달려오느뇨?》

《예. 소신, 설지 급히 아뢸 말씀이 있어 이렇게 왔소이다.》

《무슨 말이냐. 천천히 말하여라.》

《예. 며칠전 제가 그만 제사에 쓰려던 돼지를 놓치고 그것을 찾아 사방을 헤매였소이다. 그러다가 300리나 떨어진 국내땅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는데 마침 그곳 사람들이 돼지를 붙들어서 우리에 넣고 먹이를 주어 탈없이 살아있었소이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오는데 도중에 그곳 지형을 살펴보니 산과 물이 험하고 깊으며 땅은 오곡이 잘되며 짐승, 물고기 등 물산이 많아 도읍으로 삼기에 아주 적합할것 같았소이다. 요즘 한창 새 도읍으로 삼을만한 곳을 찾고있다기에 이 말씀을 드리고자 이렇게 달려온것이옵니다.》

《음, 국내지방이 그렇게 좋단 말이지.》

《예. 소신이 뉘앞이라고 감히 없는 사실을 꾸며서 아뢰이겠나이까.》

《좋다. 그럼 인차 국내를 한번 돌아보고 그때 도읍으로 적합할지 아닌지 정하도록 하자.》

그해 9월 어느날 류리왕은 대신들과 장수들을 거느리고 국내지방으로 행차하였다. 길안내는 설지가 맡아하였다.

국내에 조금 못미쳐 행렬이 먼저 닿은 곳은 국내서북에 솟은 산아래였다.

《저 산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러자 설지가 기다리기나 한듯 제꺽 대답하였다.

《예. 저 산은 위나암산이며 제법 넓은 골짜기를 안고있는 산이옵니다.》

류리왕은 머리를 끄덕이며 산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높고 맑은 하늘과 흰 구름, 그밑에 푸른 소나무, 잣나무로 꽉 들어찬 좌우쪽의 아아한 높은 산들,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우수수 설레이는 수림들을 보니 마치도 대지가 거대한 호흡을 하는것 같았다.

조금후에 행렬은 드디여 국내에 도착하였다.

《여기가 국내인가?》

《예. 그렇소이다.》

류리왕은 수레에서 내려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뒤에는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압록강이 있어 적들을 방어하기에도 유리할뿐아니라 물산이 풍부한 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져있고 수륙교통도 매우 편리하여 수도자리로서는 정말 나무랄데 없을것 같았다. 한참이나 지세를 돌아보던 그는 동행한 대신들과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어떻소. 수도를 여기에 옮기는것이 좋을것 같지 않소.》

그는 물음 겸 대답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지당한 말씀이오이다.》

이렇게 자기가 직접 새 수도자리를 돌아본 류리왕은 돌아오자마자 즉시 백성들을 동원하여 국내성을 쌓게 하였다.

평시에 왕궁과 관청이 자리잡을 평지성은 이미있던 토성을 수축하여 만들고 또 새로 산성을 쌓아 수도성으로서의 체모를 갖추게 하였다. 축성공사, 건축공사를 다그쳐서 다음해 10월에는 정식으로 수도를 국내로 옮기였다.

위나암산성은 국내성(평지성)에서 5리가량 떨어진 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몇개의 봉우리를 련결하는 산릉선을 리용하여 건설하였다. 또한 통화방면으로는 국내북쪽 약 150리되는 지점에 위사하의 좁은 협곡지대를 막은 차단성(관마장관성)과 그 서북 20여리 떨어진 곳에 차단초소로 삼을 작은 돌성을 쌓았다.

그리고 국내성 서북방면 졸본으로 통하는 길에는 신개하의 좁은 목에 길이 700자가량 되는 길목차단성(망파령관성)을, 국내서남쪽 120리 지점에는 강변 길목을 막은 강안보루인 해관 외차구보루를 쌓게 하였다.

이렇게 국내성과 위나암산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 주변의 중요한 곳들에 차단성, 강변방어성들을 쌓음으로써 수도 방위체계도 정연하게 이루어놓았다.

국내천도는 고구려의 중앙집권적통치체제와 국력을 강화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우선 국내성이 처한 교통운수상의 유리성으로 하여 전국각지에 대한 중앙집권력의 침투가 보다 쉽게 되였으며 또 전국각지에서 수탈하는 조세와 공물의 운반이 헐하게 되고 많은 물품들이 집중될수 있게 되였다.

또한 험준한 지세와 견고하게 쌓은 위나암산성의 강한 방어력에 의거하여 외적을 성과적으로 물리칠수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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