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관문을 잘 지킨 장군 고노자

고노자는 고구려가 거듭되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을 영예롭게 지켜내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칠수 있게 한 애국명장들중의 한 사람이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서북관문을 믿음직하게 지켜낸 장군 고노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296년(봉상왕 5년) 8월 어느 날 고구려의 조정에서는 임금과 국상이하 고위대신들이 모여 중대한 국사를 론의하고있었다. 그 내용인즉 고구려의 서쪽변방을 빈번히 소란케 하는 모용선비족을 어떻게 하면 견제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 당시(3세기 말엽)로 말하면 고구려가 건국이후 주변에 널려있던 소국들에 대한 통합을 기본적으로 종결짓고 동족의 나라였던 고조선의 옛땅을 되찾기 위한 사업을 국책으로 내세우고 적극 실행해나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290년대에 들어와 고구려의 서변에는 모용씨의 선비족이 위험한 세력으로 대두하여 고구려의 안전을 위협해나섰다. 모용씨는 3세기 중엽이후 료하류역의 내륙지방에서 점차 강화된 선비족으로서 280년대에는 중국 진나라의 유주와 료서를 침공하고 동쪽으로 후부여를 불의에 습격하여 그 나라 임금 의려로 하여금 자살하게 하는 등 침략행위를 일삼았다. 그 침략의 창끝은 고구려에도 돌려졌다.

바로 이 며칠전에도 모용외를 우두머리로 하는 선비족침략군이 고구려를 불의에 공격하였다. 놈들은 고구려의 서부변경지역 부락들에 달려들어서는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살륙하고 재물을 마구 략탈하다 못해 봉상왕의 아버지인 서천왕의 무덤을 파헤치는데까지 이르렀다. 침략자들의 만행은 고구려군의 즉시적인 반격에 의하여 저지되고 적들은 국경밖으로 쫓겨나고말았다.

고구려에 있어서 모용선비세력은 실로 시끄러운 존재였고 그의 침략행위를 짓눌러버리는것은 당시 중요한 국사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되여 고구려왕정에서는 대신들이 모여 그 해결책을 강구하게 된것이다.

봉상왕이 여러 신하들을 굽어보며 입을 열었다.

《근간에 림하여 모용씨가 정예하고 강한 군사를 몰아가지고 루차 우리 고구려의 강역을 침범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어디 묘안이 있으면 말해보도록 하오.》

임금의 분부가 내려졌으나 대신들은 서로 얼굴들을 마주 볼뿐 이윽토록 함구무언이였다. 그들도 그럴것이 괜히 입을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조폭하기 이를데 없는 봉상왕한테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때문이였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기의 왕권에 저촉된다고 하여 자기 삼촌이고 동생이고 가리지 않고 죽인 봉상왕앞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장내에는 침묵이 무겁게 드리우고 이따금 기침소리만이 들렸다.

그러는 속에 모두의 시선은 어느덧 조정의 실권자인 국상 창조리에게로 모아졌다. 보매 국상만이 이 일을 도모할 방책을 내놓을수 있겠다는 타산이 그들의 생각을 일치시킨것 같았다. 국상이 되여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일처리를 잘하며 성품 또한 강직하여 임금도 대하기 어려워하는 그였기에 국사를 론의하는 이 마당에서 대신들의 함구무언도 충분히 리해가 가는 행동이였다.

분위기가 이쯤 되고보니 임금의 눈길도 자연히 창조리에게로 돌려졌다.

《보아하니 국상한테 책략이 있을듯도 한데 어디 말해보지 않겠소?》

자기 상념에 골몰하여 대궐바닥 한곳을 응시하고있던 창조리는 자기를 찾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장내를 빙 둘러보았다. 대신들은 줄곧 그의 입만 지켜보고있었다.

드디여 조회당의 답답한 공기를 깨뜨리며 창조리의 말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의 소견에는 북부대형 고노자가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고있으니 그만이 이번 일을 감당할수 있다고 보오이다. 대왕께옵서 만약에 외적의 침습을 막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고저 하옵시면 고노자가 아니고서는 가당한 인물이 없는줄로 아뢰오. 계축년 모용씨란시에도 신성 성주 고노자가 아니였던들 이 나라 사직은 외적의 무리에 의해 욕되는바로 되였을것이오이다. 대왕께서도 전번 일을 자상히 아실터이니 과단 조처함이 마땅한줄로 아오이다.》

《고노자》

이렇게 되뇌이는 봉상왕의 눈앞에는 모용외의 침입을 받고 곤궁한 처지에 빠졌던 3년전의 일이 어제런듯 삼삼히 떠올랐다.

때는 바로 293년(계축년) 봉상왕이 왕위에 오른지 2년째 되는 해 8월이였다.

평소부터 고구려의 령토를 넘겨다보며 기회만 노리던 모용외를 괴수로 하는 선비족이 이때에도 국경을 넘어 고구려땅에 침략의 발을 들이밀었다.

마침 신성을 비롯한 변경일대를 순행하고있던 봉상왕은 도중에 그 급보에 접하자 부랴부랴 국경요새의 하나인 신성을 향하여 다우쳐 떠났다.

그런데 봉상왕이 국경지대에 나와있다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적들은 고구려왕을 사로잡아보려고 군사들을 냅다 몰아 왕의 행렬을 추격해왔다.

행렬이 곡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적군과의 거리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임금자신은 물론 시위군사들도 낯색이 창백해지며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태는 각일각 긴박해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담. 위기를 모면할 방책이 없을가.)

임금이 이런 생각을 쫓으며 전전긍긍하고있는데 시위장수 하나가 급히 달려오더니 아뢰는 말이 《대왕마마, 따라오던 적들이 돌연 퇴주하고있소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말은 탄성에 가까운것이였다.

《저길 좀 보사이다. 우리 고구려군사들이외다. 아니 저건 신성의 고노자성주이군요. 저런, 그의 군사들이 놈들을 되겐 다불러대고있소이다.》

봉상왕은 그 말에 너무 기뻐 마차가 흔들거리는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부석에 올라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편에서는 500여기나 되는 고구려의 기병들이 황토색먼지를 자욱히 날리며 돌진하고있었고 저켠에서는 이에 질겁한 적군이 병쟁기고 뭐고 할것없이 모두 집어내치고 황황히 줄행랑을 놓는 장면이 펼쳐지고있었다. 그것은 말그대로 장관이였다.

《과시 장할시고.》

임금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찬탄의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고노자가 이끄는 신성군사들의 헌신적인 격전에 의하여 침략군은 쫓겨가고 위기는 가셔졌다.

이 전역에서 세운 공로로 하여 고노자의 작위는 소형(7품)으로부터 대형(5품)으로 올랐다.

회억에서 깨여난 봉상왕은 묵묵부답으로 어명을 기다리고있는 대신들을 굽어보며 드디여 입을 열었다.

《짐은 국상의 제기에 반대가 없소.》

그리하여 고구려조정에서는 서북관문인 신성(중국 료녕성 무순시 북쪽 고이산성)을 군급고을로 승격시키고 고노자를 그 장관인 태수로 임명하였다.

신성태수로 된 고노자는 정사에 힘쓰고 위엄과 명성을 떨쳤다. 이 사건으로 하여 모용외세력은 다시는 고구려를 침노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모든 일의 성패가 사람을 잘 쓰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교훈의 하나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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