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종

고종(1852-1919)​은 조선봉건왕조의 26대왕이다. 이름은 리명복, 자는 성림, 명부, 호는 주연이며 고종은 죽은 다음에 붙인 칭호이다.

통치기간은 1863-1907년이다.

왕족인 홍선대원군 리하응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863년 12월에 조선봉건왕조 25대왕 철종이 왕자리를 이을 아들이 없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으로 되였다. 그가 즉위할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으므로 그의 아버지인 리하응이 대원군으로 되여 왕의 정사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정권을 틀어쥐게 되였다. 이때부터 10년간 나라의 실제적인 통치권은 대원군에게 쥐여지게 되였다.

1866년 민치록의 딸 민씨를 왕비로 삼았다.

1873년 11월 민가일파는 고종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고있던 대원군을 몰아내고 《친정》을 선포하였다. 이때로부터 조선봉건왕조의 권력은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하는 민가일파의 손에 넘어갔으며 세도정치가 다시 시작되였다. 고종은 민가일파와 함께 조선봉건왕조의 유지를 위하여 안으로는 반동적봉건통치를 더욱 강화하였으며 밖으로는 《개국정책》을 표방하면서 외래침략세력에 아부굴종하였다.

이렇게 되자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이 더욱 로골화되였으며 끝내 놈들의 강요로 1876년 2월에는 조일간에 침략적인 《강화도조약》이 날조되였다. 뒤이어 부패무능한 조선봉건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렬강들과 굴욕적인 불평등조약을 날조하였다.

더욱 오만해진 일제침략자들은 1895년 8월에는 조선왕궁을 습격하고 친로적경향으로 나가던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도발하였다.

고종이 일제에 대한 불만과 공포에 사로잡혀 다른 나라에 의존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짜리로씨야는 이 기회를 리용하여 국왕을 로씨야공사관에 1년동안 억류하였다. 이것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고종은 1897년 8월에 년호를 《광무》로 고치고 10월에는 국호를 《대한》으로, 자신을 《황제》로 부르게 하였고 황제즉위식도 벌려놓았다.

그는 전제군주라는 본성으로부터 왕권과 왕실의 유지를 위하여 인민들의 투쟁을 탄압하고 외세에도 의존하였으나 국운이 엄중한 단계에 이르자 비록 철저하지는 못하였으나 민족적립장을 지키는데로 나갔고 그것을 끝까지 견지하였다.

그는 《을사5조약》에 대하여 처음부터 사전승인을 하지 않았고 서명과 옥새날인도 하지 않았으며 그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의 불법무효를 주장하였다.

1907년 6월에는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을사5조약》의 비법성과 무효를 세상에 공포하기 위하여 3명의 밀사를 보냈고 날조된 이 조약의 페기를 목적으로 반일의병투쟁을 벌릴것을 관리들에게 권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1907년 일제가 《정미7조약》을 강요하였을 때에도 사전승인과 서명, 옥새날인을 거부하였다.

그는 헤그밀사사건후 그해 8월 일본의 협박으로 황태자(순종)에게 왕자리를 넘겨준 다음 일본군인들이 파수를 서는 덕수궁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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