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안(1417~1464년)​

15세기의 학자이며 문인화가.

자는 경우, 호는 인재, 본은 진주이다. 그는 문인량반출신으로서 집현전제학 벼슬을 지냈으며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고 불리웠다. 어학자로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참가하였으며 1455년에 금속활자인 《을해자》의 원본을 써서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였다. 또한 관상용 화초와 나무들을 재배하는 기술에 대하여 쓴 《양화소록》도 남기였다. 그의 활동가운데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화가로서의 창작활동이다. 그는 먹으로 작은 풍경들을 많이 그렸으며 화소, 령모, 인물화도 잘 그렸다. 《용재총화》를 비롯한 기타 기록들에서 그가 그린 《미인도》, 《청학도》, 《청천강도》, 《경운도》, 열두폭의 풍경화 등을 높이 평가하고있으나 전해지는것은 없다.

지금 남아있는 작품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량반선비들의 생활을 그린 《생각에 잠겨》(《산수인물도》)와 《다리를 건느다》(《고사도교도》) 등이다. 이 그림들은 화면구성은 복잡하지 않으나 힘있고 간결한 필치로서 인물들의 성격과 물체의 특징을 잘 그려냈다. 그는 그림을 직업적으로 그리지 않은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시 유학과 문학제일주의립장으로 하여 전문화가들을 멸시하던 량반사대부들의 사상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없었다. 

강희안은 묘사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세련된 소묘력, 풍부한 표현력 등 높은 예술적기량을 가지고 조선화의 표현수법들을 발전시키는데 일정하게 이바지하였다. 그것으로 하여 강희안은 안견, 리상좌와 더불어 15~16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되였고 그의 이름은 이웃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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