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응상(1893.12.27-1967.4.24) ​

유전학자이며 잠학자이다.

평안북도 정주군 석산리의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1911년 서울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부터 정주오산중학교 교원으로 있었다. 1923년 4월 일본 규슈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누에유전학, 생리학 및 해부학부문에 대한 5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1930년 중국 광동성 광주시 중산대학 농학교수로 있으면서 10여종의 우량한 누에품종을 육종하였으며 8건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그후 윁남의 하노이와 하이풍, 홍콩과 일본의 고베에서, 1939년에 경기도 농사시험장과 재령잠업연구소에서 과학연구사업을 하려고 하였으나 나라없는 과학자로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을뿐 뜻을 이룰수 없었다. 조국이 해방된 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과학의 나래를 한껏 펼칠수 있게 되였다. 주체35(1946)년 10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후대교육과 과학연구사업에 전심전력하였다. 이해 10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후 주체의 방법론에 기초하여 생물학발전과 농업실천에 저애를 주고있던 《혼합유전설》과 《환경유전설》을 반대배격하고 유전자설을 옹호고수함으로써 유전학과 생물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여러가지 뽕누에품종을 비롯한 가둑누에품종을 육종하였으며 온대지방에서 겨울을 나는 피마주누에품종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육종하였다. 자신의 연구성과와 실천적경험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많은 론문들과 과학기술도서들을 집필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가둑누에 및 피마주누에고치생산기술을 체계화한 도서 《작잠학》, 《피마잠》, 3권으로 된 《계응상선집》을 비롯한 많은 과학기술도서들을 집필편찬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원사(1952), 교수, 박사(1948)였으며 주체52(1963)년에 로력영웅칭호와 《인민상》을 받았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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