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복 회​

1910년대초 애국문화운동가들이 조직한 반일정치단체이다.

신채호(1880-1936), 리동휘(1873-1935), 리갑 등 연해주로 망명한 애국문화계몽활동가들에 의하여 주체1(1912)년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조직되였다. 광복회는 일제강점자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는것을 투쟁목표로 내세웠다. 이 단체는 본부를 울라지보스또크에, 지부는 중국 동북의 회인현과 안동현(지금의 단동)에 각각 두고 활동하였다. 광복회는 반일독립운동자들과의 련계를 강화하면서 서, 북간도지방에 자기의 조직을 확대해나가는 한편 중국 동북지방에 동림무관학교와 동창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을 세우고 청소년들을 반일무장활동을 위한 인재로 키우는데 관심을 돌리였다.

광복회는 조직초기에 주로 중국 동북지방과 연해주지방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대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국내 경상남북도를 비롯한 삼남지방에 자기 조직을 뻗쳐나갔다.

국내에서 광복회조직들은 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친일관리들과 악질지주, 부호들을 습격처단하는 활동을 벌리였다.

광복회의 세력이 국내의 여러 지역에로 확대되고 군자금모집활동을 비롯한 반일활동이 강화되는데 당황한 일제는 1918년 1월부터 광복회성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일제의 광란적인 탄압책동으로 광복회성원들은 3월 하순경에 이르러 거의다 체포당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처형 또는 중형을 당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이 조직은 국내에서 더는 활동을 전개할수 없게 되였다. 광복회는 그 활동에서 로동자, 농민과 같은 기본대중에 의거하지 못하고 조선민족자체의 힘으로 민족적독립을 이룩하려는 립장에 튼튼히 서지 못한 계급적 및 정치사상적제한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초기 민족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직된 대표적인 반일정치단체의 하나로서 국내외의 동포들속에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하며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사업을 추진시키는데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