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머니의 고귀한 한생​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신 그날로부터 어느덧 126돌기의 년륜을 아로새기고있다.

강반석녀사께서 탄생하신 뜻깊은 날을 맞으며 우리모두는 어머님의 고결한 생애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있다.

1892년 4월 21일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성장하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일찍부터 나라잃은 민족이 당하는 모진 수난속에서 열렬한 반일애국정신을 키우시였으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지니시고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고귀한 한생을 바치시였다.

강반석녀사의 한생은 한가정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위대한 한생이였다.

 

강반석녀사의 한생은 어버이수령님을 위대한 인간, 위대한 혁명가로 안아키우신 걸출한 조선의 어머니의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니의 온 생애는 그대로 나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도 같은 생애였다.》 

부모자식들사이에 흐르는 사랑도 맹목적인것이면 그것은 공고한 사랑이라고 말할수 없다. 사랑을 관통하는 정신이 참답고 고결해야 그 사랑은 영원하고 성스러운것으로 될수 있는것이다.

강반석녀사께서 위대한 수령님께 기울이신 사랑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였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나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전에 나라에 충정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진실하고 혁명적인 사랑이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무엇보다도 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할 나라의 기둥으로, 민족의 영웅이 되라는 높은 뜻을 깊이 심어주시였다.

특히 강반석녀사께서는 이 세상 그 어느 어머니도 줄수 없는 가장 열렬한 헌신과 숭고한 혁명적사랑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조국과 인민의 아들로 억세게 키우시였다.

 

주체14(1925)년 1월 평양의 창덕학교에서 공부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께서 또다시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를 다지시면서 열네살나이에 만경대를 떠나시여 팔도구에 이르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부드럽고 인자하시였지만 엄동설한 천리길을 걸어온, 그것도 2년만에 만나보는 사랑하는 아드님을 하루밤도 재우지 않으시고 그날밤으로 다시 떠나보내시였다. 그날을 돌이켜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 대하여 잘 알고있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개와 넋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할 그런 경지에서 나를 굽어보고있었다, 그때의 모습은 차라리 어머니라기보다도 스승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 고마운 어머니를 모시고있다는 자랑으로 하여 나는 가슴이 터져나갈것만 같은 행복감을 느끼였다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쓰시였다.

 

강반석녀사는 생의 마지막까지 어버이수령님을 혁명의 길로 떠밀어주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 한평생 간직되여있던 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은 모진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사랑하는 아드님을 서슴없이 혁명의 길로 떠나보내시던 소사하에서의 그 강직하고도 고결한 모습이였다.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남만원정을 떠나시기에 앞서 어머님의 병환이 중하시다는 소식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들이 마련해드린 좁쌀 한말을 가지고 어머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환에 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떠나시는것이 마음에 걸리시여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때 어머님께서는 내가 보니 너는 이전보다 좀 달라졌다, 네가 쌀자루까지 지고다니며 어머니를 부양하게 될줄을 나는 몰랐다, 앓고있는 이 에미걱정때문이겠지, 너의 효성이 지극하니 고맙기는 하다만 그만한것으로 위안을 받을 내가 아니다, 부녀회를 늘이려고 무송에서랑 네 손목을 잡고 험한 령을 넘어다닐 때에 오늘 이런 위안이나 받자구 그랬겠느냐? 너에게는 더 큰일이 있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조선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내 걱정은 말구 어서 네 갈길이나 빨리 가거라라고 준절히 타이르시였다.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투쟁의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역경에 처하실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시기에 앞서 자신을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과 흰 옷을 입고 바래주시던 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은 대를 이어가며 싸워서라도 기어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심어준 스승이시라면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는 일단 혁명을 시작한 사람은 인정에 끌리거나 곁눈을 팔지 말고 끝장을 볼 때까지 오로지 목적한바를 실현하기 위해서만 노력해야 한다는 리치를 깨우쳐준 고마운 선생이시라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정녕 강반석녀사의 한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에 참된 인생관, 혁명관을 심어준 하나의 교과서와 같은 고귀한 생애였고 우리 수령님을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가도록 이끌어주고 떠밀어준 참된 혁명가의 위대한 한생이였다.

강반석녀사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이 있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류의 위대한 태양으로 높이 솟아오르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실수 있었다.

 

강반석녀사의 한생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신 걸출한 조선의 어머니의 위대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력사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 열화같은 사랑을 간직하시고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으신 강반석녀사와 같으신 그런 위대한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혁명가의 안해, 위대한 혁명가의 어머님으로서 자신께서도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눈부신 활동을 벌리신 녀성혁명투사이시였다.

강반석녀사는 만경대에 계실 때부터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드렸으며 독립운동자들의 시중을 드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시였다. 만경대에서 열두식구나 되는 큰 집안의 장손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의 공대는 더 말할것도 없고 집안팎을 거두고 설겆이와 빨래, 길쌈을 하시고 낮에는 농사일로 진종일 밭에 나가계시고도 강반석녀사께서는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우시는 한편 자제분들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하혁명활동을 하시던 시기 4~5명의 공청원들과 함께 무송시가에서 적들의 포위에 드신적이 있었다. 적들과 전투를 하면서라도 포위를 뚫고 현성밖으로 나가야 하였다. 그런데 총이 없었다. 무기는 적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말리허라는 곳의 혁명조직에 가야 가져올수 있었다. 그때 강반석녀사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나서시여 말리허의 혁명조직성원들로부터 무기를 받아 함지안에 감추어가지고 위험한 고비를 넘기시며 돌아오시였다. 그런데 그때 녀사께서 가지고오신 그 권총들은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수 있게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몹시 놀라시며 큰일날번 했다고 말씀드리시였다. 공청원들의 놀라움 또한 컸다. 그러자 강반석녀사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내가 너희 동무들을 보고 재워달라구 했다, 놈들이 이 함지를 수색하면 답새기자구 말이다, 기껏해야 두놈이나 세놈쯤 달려들겠지, 접어들면 한놈이라도 쏘고 나도 죽을 생각이였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의 그 말씀속에는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결심하기 어려운 고결한 넋이 깃들어있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녀사의 혁명투쟁은 더욱 적극화되였다. 그때 녀사께서는 무송현성은 물론 멀리 주변농촌에까지 나가시여 야학도 내오시고 조선녀성들에게 우리 나라 글을 배워주시였으며 그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적극적인 방조밑에 주체15(1926)년 12월 반일부녀회를 무으시고 반일부녀회사업을 통하여 광범한 녀성들을 조직에 묶어세우시였으며 그들을 민족적해방과 사회적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이끄시였다. 강반석녀사의 적극적인 교양과 손길아래 오랜 세월 억압과 천대속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숙명으로만 여겨오던 녀성들이 열렬한 투사로 자라나게 되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첫 무장대오의 창건을 위하여 병약하신 몸으로 부녀회원들을 이끄시고 군복을 만드시였다. 녀사께서는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시면서 군량미도 마련하시였고 생명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무기도 구해오시였다.

모진 시련과 고초를 참고 이겨내시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무력창건사업을 일심전력을 다하여 받들어오신 강반석녀사이시였다.

우리 민족사에 진정한 애국의 첫 무장대오로 새겨진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 바로 여기에도 강반석녀사의 적극적인 방조와 헌신적인 노력이 슴배여있었다.

인류력사는 강반석녀사와 같이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모든것을 혁명을 위해 다 바친 녀성혁명가를 일찌기 알지 못하고있다.

정녕 강반석녀사의 한생은 찬란한 태양을 받들어올리신 위대한 한생, 성스러운 혁명위업에 모든것을 다 바치신 고귀한 한생이다.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의 고결한 한생과 업적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상과 위업을 충정으로 받들어나가고계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따라 힘있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부강번영과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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