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적견지에서 본 독도의 령유권

일본은 2005년에 《다께시마(독도)의 날》이라는것을 제정해놓고 해마다 2월 22일이면 시마네현에서 《다께시마(독도)의 날》이라는 《년례행사》의 간판밑에 광대극을 벌려놓으면서 저들의 《독도령유권》주장의 《타당성》을 부각시키고있다. 한마디로 《독도가 일본고유의 땅》이라는것이다.

일본반동들은 이를 여론화하기 위하여 2006년 1월부터 《다께시마의 날》을 맞으며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책을 26만부나 출판보급하였고 지역방송국을 통해 《다께시마의 날》조례제정을 주요내용으로 한 TV광고도 내보냈다. 2012년 9월에는 1주일간에 걸쳐 외무성의 명의로 중앙과 지방의 약 70개 신문에 《독도는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일본고유의 령토》라는 광고를 내는 등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출판선전놀음도 벌려놓았다. 그리고 독도강탈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위대》를 동원하여 외딴섬탈환훈련이라는것도 벌려놓았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래왕이 잦은 도꾜의 한복판에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그 무슨 《전시관》이라는것을 세워놓고 독도가 저들의 《땅》이라고 피대를 돋구면서 60년이상이나 그 누구에 의해 《불법점거》되여있다는 얼토당토않은 망발까지 줴쳐댔다.

일본반동들이 국제법규범들을 집요하게 거들면서 《독도령유권》문제와 관련하여 내드는 독도《령유의 법률적근거》들은 오히려 독도가 일본령토인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합법적인 령토라는것을 반증해주고있다.

그러면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이 얼마나 부당한가 하는것을 국제법적견지에서 살펴보겠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독도는 본래부터 우리 나라 섬입니다.》

국제법적견지에서 볼 때 독도는 무엇보다도 《무주지선점의 원칙》에 관한 국제법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일반적으로 무인지역이나 무주지섬에 대한 소유권은 《무주지선점의 원칙》의 법적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무주지선점》은 원래 《발견의 원리》와 《선점의 원칙》에 기초하고있다. 다시말해서 무인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서 가장 중요시되는것이 바로 그 섬을 제일먼저 발견해야 한다는 《발견의 원리》와 제일먼저 차지해야 한다는 《선점의 원칙》이다.

독도는 바로 이러한 《발견의 원리》와 《선점의 원칙》에 비추어보아도 우리 나라의 고유한 령토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독도는 고대조선사람들이 처음으로 발견하고 개척리용하였으며 그 령유권을 단 한번도 포기한적이 없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섬이다.

 

고대조선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에 울릉도를 발견하고 차지하였으며 그를 거점으로 하여 독도에로 진출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오래 살았기때문에 이곳에 고인돌무덤을 남기였다.

6세기초 조선동해의 울릉도에는 조선사람들이 세운 우산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우산국은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하슬라주 군주였던 이사부에 의하여 신라에 평화적으로 귀속되였다.

우산국은 울릉도를 기본령역으로 하면서 우산도(독도)까지도 자기의 령역으로 하고있었다.

 

독도가 우산국의 이름인 우산도로 불리운 사실자체가 그곳이 우산국의 령역이였으며 따라서 독도가 우산국의 편입과 함께 우리 나라 령토로 되였다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뿐만아니라 《고려사》에서는 울릉도가 신라시기의 우산국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우산, 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서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맑은 날이면 바라볼수 있다》(권58 지리3 울진현)하여 두 섬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밝히였고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우산, 무릉 두 섬은 … 신라때에 우산국이라 칭하였다. 》(강원도 울진현)라고 하여 우산도(독도)가 신라에 편입된 우산국의 령역이였음을 명백히 하고있다.

 

당시 일본자체도 독도가 조선의 신성한 령토라는것을 인정하고있었다.

그것은 지난날 독도에 대한 임대청원을 한 일본인의 《사업경영개요》를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

 

1903년부터 독도수역에서 비법적인 물개잡이에 종사한 나까이 요사부로가 직접 쓴 《사업경영개요》에 의하면 그는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물개잡이독점권을 얻기 위해 《리양꼬섬(독도의 유럽식명칭)을 조선령토로 믿고 동국정부(즉 조선정부)에 임대청원할 결심》을 가졌으며 이로부터 1904년에 수도에 찾아가 《그 섬이 울릉도에 부속된 조선의 령유라고 생각하여 장차 통감부(조선봉건정부)에 가서 할바가 있지 않을가 하여 상경하였다.》고 하였다.

즉 나까이는 독도가 조선령토이므로 일본정부가 조선봉건정부에 물개잡이독점권을 교섭해줄것을 청탁하기 위하여 수도에 갔던것이며 그의 소원은 《령토편입》이 아니라 《임대청원》이였다.

 

이처럼 독도는 《무주지선점의 원칙》에 비추어보아도 우리 조선사람들이 수천년전부터 발견하고 차지하여 리용해온 조선민족의 고유한 령토이다.

 

국제법적견지에서 볼 때 독도는 다음으로 공포절차와 통지방법에 관한 국제법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원래 국제법에는 주인이 없는 땅을 자기 령토에 편입할 때에는 응당 린접국가의 사전협의와 조회를 요망하게 되여있으며 령토편입시에는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것이 관례로 되여왔다.

 

조선봉건정부는 1900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독도가 조선의 신성한 령토임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칙령 제41호》의 해당 조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할사

제1조. 울릉도를 울도라 개칭하야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야 관제중에 편입하고 군등(급)은 5등으로 할사

제2조. 군청 …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죽서도), 석도(독도)를 관할할사

………

제6조. 본령은 반포일부터 시행할사

광무 4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는 정부신문인 《관보》 제1716호(1900년 10월 27일)로 세계에 정식 공포되였다.

이로써 조선은 신라이래 줄곧 조선의 령역으로 되여온 독도의 령토수속을 다시금 확인하고 근대 국제법의 요구에 맞게 그것을 내외에 명백히 선언하였다.

반면에 일본은 1905년에야 강도적방법으로 《독도령유권》을 주장해나섰다.

 

일본외무성과 해군성은 1904년 《오늘의 시국이야말로 (독도의)령토편입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 망루를 건축해서 무선 또는 해저전기선을 설치하면 적함에 대한 감시》에 더없이 좋을것이라고 타산하고 독도의 물개잡이를 독점하려고 하는 나까이라는자로 하여금 《독도의 령토편입청원서》를 제출하도록 조작하였다. 일본내각은 이를 접수하고 1905년 1월 28일 독도를 《무인도》로 날조한데 기초하여 나까이의 《청원서》가 성립되였다는것을 결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시마네현청은 1905년 2월 22일부로 이날부터 독도를 현소속 《오끼도》에 포함시킨다는것을 내용으로 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조작하였던것이다.

 

일본은 《독도편입》과 관련해서는 린접국인 조선봉건정부는 물론 그 어느 나라와도 사전협의는 커녕 사후통보도 하지 않았으며 고시자체도 한갖 지방관보인 현보에 게재하고 지방신문인 《산잉신붕》에 자그마하게 보도하였을뿐이였다.

우의 모든 사실은 독도가 령토편입의 국제법적요구와 실효적인 지배와 경영의 원칙에 완전히 부합되는 조선의 불가분리의 신성한 령토라는것을 확증해준다.

 

국제법적견지에서 볼 때 독도는 다음으로 패망한 일본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국제협약들에 비추어보아도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전후 일본의 령토처리를 규정한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 《련합국최고사령부》의 각서와 지령, 합의서들에서는 독도를 일본이 포기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조선의 령토로 규정하였다.

 

련합국의 《까히라선언》(1943년 12월 1일)에서는 《… 련합국의 목적은 일본으로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개시이후에 일본이 장악 또는 점령한 모든 섬들을 박탈하는것과 함께 만주, 대만, 팽호렬도 등 일본이 중국인들로부터 략취한 일체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시키는데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한 모든 다른 지역으로부터 축출될것이다.》라고 규제하여 1914년 이전에라도 일본이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한 지역이라면 일본령토에서 제외된다는것을 명백히 규정하였다.

《포츠담선언》(1945년 7월 26일) 제8항에서는 《까히라선언의 모든 조항은 리행될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 혹가이도, 규슈, 시고꾸와 우리들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국한될것이다.》라고 규제하여 일본의 령토를 4개의 기본섬과 앞으로 련합국에 의하여 결정되는 《여러 작은 섬들》로 규정하였다.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무조건 수락하고 1945년 8월 15일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은 법적구속력을 가진 전후 일본령토처리의 기초적문건으로 되였다.

《포츠담선언》에 기초하여 《련합국최고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 지령 제677호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키는것에 관한 각서》를 발표하였다.

 

이 《각서》의 제3항에서는 일본에서 제외되는 지역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 일본은 일본의 4개의 본도(혹가이도, 혼슈, 규슈, 시고꾸)와 약 1 000개의 더 작은 린접섬들을 포함한다고 정의된다. 포함되는것은 쯔시마 및 북위 30゜이북의 류뀨제도이다. 그리고 제외되는것은 ① 울릉도, 리앙쿠르암(독도), 제주도 ② 북위 30゜이남의 류뀨제도 … ③ 꾸릴렬도 … 등이다. 》

 

이리하여 독도는 일본의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된》 섬으로 간주되여 일본령토에서 명백히 제외되였던것이다. 때문에 1946년 6월 22일 《련합국최고사령부》지령 제1033호에서는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을 금후 … 리앙쿠르암(독도)의 12mile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또한 그 섬에 어떠한 접근도 못한다.》고 규제하여 일본인의 독도접근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따라서 독도의 령유권은 일본뿐아니라 련합국들에 의하여 국제적으로 공인된 합법적인 조선의 령토로 규정되였다.

이처럼 국제법적견지에서 보아도 독도는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한치도 떼여놓을수 없고 그 누구도 감히 넘겨다볼수 없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

김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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