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포위전의 세계적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그 가렬성과 엄혹성에 있어서 한차례의 세계대전과 맞먹는 가장 치렬하고 준엄한 전쟁이였다. 청소한 우리 공화국과 110여차례의 침략전쟁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고 자처하는 제국주의강적과의 대결전이였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세상에 전해졌을 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운명을 두고 우려를 표시한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였다.

그러나 이런 대적의 무리, 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가렬처절한 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류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영웅조선의 존엄과 기개를 온 세상에 높이 떨치시였으며 지구상에서 제국주의가 멸망하고 자주적인민이 승리하는 반제반미투쟁의 새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

미제를 반대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가 이룩한 력사적승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금까지 전쟁력사에서 있어본적이 없는 독창적인 군사전략과 전법, 뛰여난 지략으로 군대와 인민을 현명하게 이끄신 결과였다.

전쟁에서 전략의 제시와 성과적실현은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의 매 국면마다에 내놓으신 우리 식의 독창적인 전략은 준엄한 전쟁국면을 역전시키고 원쑤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김으로써 전쟁의 최후승리를 안아왔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직지휘하신 많은 작전과 전투들가운데서 우리 식의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신것은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주체39(1950)년 7월 위험을 무릅쓰시고 한밤중에 림진강철다리를 건너 전선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이 당면하여 대전에 집결된 적들을 포위소멸할데 대한 목표를 제시하시고 대전해방작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전해방전투와 1211고지방어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독창적인 전법과 탁월한 령군술의 위대성을  세상에 시위하였으며 적들의 수적기술적우세가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전략전술적우세앞에서 아무런 맥도 추지 못한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었습니다.》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무엇보다먼저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를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반공격전략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독창적인 전법, 주체적인 포위전법을 새롭게 밝히신것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현대포위전에서 우회전이 가지는 커다란 의의를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포위전을 성과적으로 벌리기 위한 독창적인 우회전법을 밝혀주시였다.

 

※ 세계전쟁사를 놓고 보면 당시까지 대련합부대에 의한 포위작전은 대체로 정면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적의 량익측에서 타격하는 부대들이 일정한 종심에서 합치는 타격형식과 포위의 외부전선과 내부전선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실현되였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과 방법으로 적을 포위소멸하려면 여러개의 기동로가 보장되여야 하고 보다 많은 공격력량이 있어야 하였다. 따라서 기성의 포위전법은 산이 많고 기동로가 심히 제한되여있으며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과 싸워야 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우회전은 간편한 무장을 가지고 산발을 타고 적의 익측과 후방으로 에돌아가 은밀하게 진행할수 있기때문에 기동로의 제한으로 인한 구속이나 력량과 전투기술기재부족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적의 퇴로를 차단하여 적을 일거에 포위할수 있으며 적의 익측과 배후에 불의에 나타나 타격함으로써 포위된 적을 보다 쉽게, 보다 빨리 와해소멸할수 있게 하는 독창적인 전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우회전은 은밀성과 불의성, 신속성, 정황처리에서의 대담성과 결단성을 전제로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묘하고 령활한 우회전법을 독창적으로 밝혀주심으로써 크고작은 모든 공격작전과 전투마다에서 능숙한 우회전으로 적에 대한 포위를 성과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것은 오직 항일의 불바다속을 헤치시던 나날 기민한 우회전으로 적을 소멸한 풍부한 경험을 쌓으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령활한 작전전술적방안이였다.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다음으로 전선련합부대들의 대전해방작전을 조직령도하시여 우리 식의 독창적인 포위전법의 위력을 과시하신것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대전해방작전은 우리 식의 독창적인 포위전법의 위력을 과시한 현대포위전의 산모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전선주타격방향 련합부대들의 금강강행도하를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 당시 전쟁을 도발하여 보름도 못되는 사이에 금강 이남까지 쫓겨간 적들은 대전을 《림시수도》로 정하고 금강과 소백산줄기의 유리한 자연장애를 리용하여 아군의 반공격을  최종적으로 저지시켜보려고 발악하였다. 적들은 금강방어를 《불퇴의 선》, 《최종방어선》이라고 하면서  아메리카합중국이 생긴 이래 9 000회 가까이 진행한 전투경험으로 보아 이만하면 그 어떤 강적과 맞다든다 해도 《3년간은 문제없이 지탱할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미제의 어용출판물들은 이제 조선에서 력사에 없는 《… 가장 영웅적이며 로련한 진지확보 및 방어전투》가 벌어질것이라고 요란스레 선전하였다.

 

금강강행도하문제는 전반적전선작전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대전포위작전의 성공여부와 관련된 매우 중대하고 긴급한 문제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주타격방향 부대들의 금강도하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금강계선방어를 위해 강한 방어진을 쳤으나 거기에는 반드시 약점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적방어에 빈 익측과 공간지대가 있는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공주방향으로 진격하는 련합부대들은 일부 력량으로 적방어가 강한 공주정면방향에서 거짓도하로 적들의 주의를 집중시킨 다음 기본력량은 량익측에서 일거에 도하하며 태평리방향으로 공격하는 부대들은 적방어정면에서 적을 끌어붙이는 행동을 강화하고 그 틈을 타서 좌우량익측에서 신속히 도하하여 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을 때  정면에서 행동하던 부대들이 일시에 도하할데 대하여 명철하게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대로 모든 부대들은 만단의 도하준비를 갖추었다.

1950년 7월 14일 이른 새벽에 먼저 미34련대가  방어하고있는 공주정면의 큰길쪽에서  거짓도하가 진행되였다. 

 

※ 일부 보병구분대들이 강물우에  가짜기재를 띄우고 포병, 땅크들이 적방어진지를 향해 맹렬히 사격하였다. 거짓도하에 속은 적들은 공주정면방어를 하느라고 좌우에 배치되였던 력량까지 끌어왔으므로 량익측은 텅 비다싶이 되였다. 이 틈을 타서 아군의 일부 력량이 불의에 량익측에서 강행도하하여 대안의 근거지에 있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족치였다. 

 

15일에는 미19련대가 방어하고있는 태평리방향에서도 강행도하가 시작되였다.

 

※ 먼저 적방어의 약한 고리인 량익측에서 부대들이 신속히 도하하여 적후방으로 뚫고들어가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미19련대는  《바위련대》의 체면을 고수해보려고 105㎜, 155㎜포대대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아군련합부대는 량익측에서 도하한 부대들의 전투성과를 리용하여 정면에서도 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하여 정면과 량익측 및 배후에서 적들을 호되게 족치면서 적종심 5~6㎞까지 진출하였으며 일부 력량으로 태평리정면의 미19련대를  평촌리와 발산리의 2개 구역에서 포위소멸하는데  성공하였다. 아군의 포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미19련대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이처럼 맹렬한 사격을 받아본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하루동안에 3 400여명의 병력중에서 1 700여명의 병력과 66문의 포, 255대의 자동차를 비롯하여 숱한 무기와 군사장비를 잃은데 대하여 비명을 질렀다.

 

인민군대로 하여금 이러한 기적적인 전과를 거두게 한것은 바로 《철화의 불퇴진지》를 강행도하할수 있는 기묘한 전술을 밝혀주시고 정면타격과 익측타격, 기습전과 퇴로차단의 기묘한 전법으로 적을 포위소멸하도록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하고 담대한 군사적지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금강을 성과적으로 도하한 전선주타격집단은 련이어 대전방향으로 성과를 확대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지략으로 대전포위를 신속히 실현하도록 하시였다.

 

※ 대전은 충청남도의 소재지이며 령남과 호남지방을 련결하는 군사적요충지였고 당시 남조선괴뢰도당의 《림시수도》였다. 《불퇴의 선》이 모래성처럼 무너지자 미제는 24보병사단의 전체 력량과 괴뢰군의 남은 력량으로 대전일대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면서 포항에 상륙한 1기병사단과 부산에 상륙한 25보병사단을 대전방향으로 기동시켜 대전계선을 고수함으로써 공세에로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적의 막대한 유생력량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이 삼남의 황토벌을 짓이기며 황급히 대전지역으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대격전이 벌어지게 될 이무렵 인민군전선사령부는 대전해방을 위한 작전계획수행에서 예상외의 사태가 조성되여 초긴장상태에 있었다. 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련합부대들은 작전계획대로 대전방향으로 진격하고있었으나 대전동남쪽에 진출하여 포위를 실현해야 할 련합부대는 청주남쪽  피반령계선에서 우세한 적의 집요한 저항에 맞다들어 공격속도를 높이지 못하고있었다.

 

이 련합부대들이 지정된 계선에 도착하려면 아직 사흘이 걸릴지 닷새가 걸릴지 알수 없었다.

조성된 사태를 수습하지 않는다면 대전동남지역은 빈채로 남아있게 되여 포위를 실현할수 없게 되며 그렇게 되면 미1기병사단과 25보병사단이 대전으로 올라와 그곳의 적들과 합세하게 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을 바로 잡고 대전해방작전을 계획대로 추진시키기 위하여 7월 16일 몸소 전선사령부에 나오시여 전선사령부 작전회의를 소집하시고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지략으로 대전포위를 신속히 실현할수 있는 묘술을 환히 밝혀주시였으며 대전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주계선에서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고있는 아군련합부대의 진출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이미 대전 서남쪽 론산까지 진출한 련합부대를 돌려 대전으로 공격시키며 그중 1개 부대를 대전 동남방향으로 신속히 우회시켜 대전 남쪽과 동남쪽의 도로를 차단하면 대전에 대한 포위를 실현할수 있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작전적묘책에 따라 제1군집단관하 련합부대들은 곧 대전포위를 위한 작전행동을 다그쳤다.

 

※ 7월 18일 대전 동남쪽으로 우회할데 대한 명령을 받은 제18보병련대 전투원들은 험준한 령들을 넘고넘어 하루밤사이에 40여㎞나 되는 로정을 우회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대전-금산, 대전-영동사이의 도로들을 차단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지휘에 의하여 20일 새벽에 이르러 인민군련합부대들은 마침내 대전시를 중심으로 한 100㎢의 좁은 지역에 적을 완전히 포위해넣는데 성공하였다.

대전은 인민군대의 완전한 포위환속에 들었으며 미24사는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대전지역의 적에 대한 포위가 실현되자 지체없이 포위된 적을 소멸하도록 하시였다.

대전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서는 대전지역에 있는 적에 대한 포위진을  빨리 치는것과 동시에 포위된 적에 대한 소멸전을 불이 번쩍나게 해야 하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정적인 타격으로 포위된 적을  빨리 소멸하도록 하기 위하여 대전 북쪽과 서북쪽, 서쪽에서 공격하기로 된 근위 서울 제3, 제4보병사단, 근위 서울 제105땅크사단은  적들에게 강력한 정면타격을 가하는 한편 땅크와 보병들로 구성된 소부대들을  대전시내에 진입시켜 적을 불의에 기습함으로써 적의 내부를 혼란시키며 대전동남쪽으로 진출한 부대는 적의 기동로를 장악하고 퇴각하는 적들과 증원해오는 적들을 소멸해버리도록 하는 빈틈없는 작전을 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쳐주신 작전적방침에 따라 제1군집단에서는 대전시가에 대한 공격에 앞서 2대의 땅크와 2개의 보병구분대 및 정찰구분대를 먼저 기동시켰다. 소부대들은 적소굴에 은밀히 뚫고들어가 적의 군용렬차와 연유창고, 집결된 자동차와 155㎜곡사포진지, 적통치기관과 유생력량들을 맹렬하게 타격소멸함으로써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대부대의 대전시가공격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20일 5시, 대전시가에 대한 총공격명령을 내리시였다.

 

※ 드디여 대전시가에 포위된 적집단에 대한 일대 섬멸전이 개시되였다. 인민군련합부대들은 포병화력의 엄호밑에 북쪽과 서북쪽 및 서쪽계선에서 일제히 공격으로 넘어가 순식간에 적의 방어진지들을 점령하고 시가전을 벌리면서 적들을 압축소멸하였다. 인민군대의 포위망이 조여들자 적들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마비되고 전투서렬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적사병들은 물론 대대장, 련대장들까지도 지휘부의 명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미1기병사단이 전멸의 위기에 처한 24사단을 구출하기 위하여 대전방향으로 달려왔으나 대전은 낮 12시에 이미 인민군대에 의하여 해방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지략과 작전전술적방침에 따라 진행된 대전해방전투에서 미제의 24보병사단은 완전히 괴멸되였으며 사단장은 병사옷을 갈아입고 도망치다가 포로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화도 생겨났다.

 

대전해방전투는 인민군대의 승리로, 미군의 참패로 끝났다.

대전해방작전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창조하신 주체적군사사상과 전법의 위대한 승리였으며 미제의 군사기술적우세에 대한 인민군대의 전략전술적우세의 힘있는 과시였다.

대전해방작전은 세계의  그  어느 병서에도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주체전법의 불패의 위력과 탁월한  령군술에 의하여  창조된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이였다.

 

※ 오산으로부터 대전에 이르는 여러차례의 전투들에서 《상승사단》이 겪은 련속적인 패배는 결국 《강대성》의 신화가 깨여지는 과정이였으며 온 세계에 미제는 결코 무적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준 과정이기도 하였다. 대전해방작전의 빛나는 승리는 우리 전체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에게  최후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고 차후작전들에서 계속 승리할수  있는 군사적, 정치도덕적담보를 마련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전법앞에 세계《최강》 자랑하던 미제의 거만한 코대는 여지없이 꺾어졌으며 주체42(1953)년 7월 27일 미제침략자들은 영웅적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오늘 우리의 혁명무력은 그 어떤 강적도 능히 쳐물리칠수있는 천하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났다. 또 한분의 백두산천출명장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여 우리 조국의 승리의 력사는 영원할것이다.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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