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해방작전에서 과시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전략과 비범한 령군술​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1950년대에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력사상 처음으로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으시였으며 세계자주화위업발전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탁월한 군사전략과 비범한 령군술은 서울해방작전에서도 남김없이 과시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청소한 인민군부대들은 반공격을 개시한지 불과 3일만에 리승만괴뢰도당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이며 반동의 소굴인 서울을 해방하였습니다. 서울해방은 리승만괴뢰도당의 통치체계를 마비시키고 괴뢰들을 전면적인 붕괴의 위기에 몰아넣었습니다.》

 

ㅡ 서울해방작전을 조직지휘하시면서 과시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전략과 비범한 령군술은 무엇보다도 전전선에서 반공격을 실현할수 있는 요진통을 틀어쥐시고 적기본집단을 일격에 소탕하기 위한 중심고리를 찾아내신것이다.

 

※ 전쟁에서의 전략적중심고리는 오직 폭넓은 군사적안목과 비범한 통찰력, 담대한 의지와 능숙한 군사적지휘능력을 지닌 뛰여난 령장만이 옳게 설정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초기에 벌써 전선의 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 앞으로의 정세발전추이 등을 천리혜안의 예지로 분석판단하신데 기초하여 적들을 급속히 격멸소탕할수 있는 요진통을 면바로 찾아쥐시고 강의한 의지와 결단력, 뛰여난 령군술로 작전을 주도세밀하게 조직지휘하시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으신 전략적중심고리는 바로 38˚선계선과 서울일대에 배치된 적기본집단을 일격에 소탕하는것이였다.

적들의 도발적인 무력침공으로 하여 전쟁이 개시되여 첫시기, 아직은 전쟁전반을 쉽게 가늠해볼 시간적여유도 없는 그때에 조성된 정세를 순간에 역전시켜 반공격으로 적의 아성인 서울해방을 결심하신것은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우리 수령님의 담력과 배짱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낼수 없는 신화적인 지략이였다.

 

※ 지난 전쟁들에서의 경험을 보면 적방어의 가장 약한 고리가 아군에 있어서는 주타격방향으로 되는것만큼 적의 약한 방향에 타격력량을 집중하여 승리를 마련해나가는것이 공격전의 상례로 되여왔다. 이것은 전투규범상 옳은 투쟁방법이며 공격의 성과를 확대할수 있는 일반적원칙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공격의 전략적중심고리를 적의 약한 방향이 아니라 적기본집단이 집중전개되여있고 화력밀도도 가장 강한 38˚선지역과 서울일대를 불의에 강력히 타격하는것으로 정하시였다.

이것은 사실상 적의 심장부에 력량을 집중하여 첫탕에 된매를 안김으로써 단 한차례의 공격작전으로 적의 기본집단을 전면적붕괴에로 몰아넣을수 있게 하는 대담하고 통이 큰 군사전략이였다.

 

ㅡ 서울해방작전을 조직지휘하시면서 과시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전략과 비범함 령군술은 다음으로 타격집단편성과 타격방향선택 그리고 련합부대들의 전투임무의 합리적인 분담으로 설정된 중심고리를 원만히 풀어나가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타격집단을 전선타격집단과 적후타격집단으로 구성하고 기본타격집단인 전선타격집단을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 중심고리를 푸는데서 결정적의의를 가지는 타격집단이 합리적으로 편성됨으로써 금천-구화리, 련천-철원, 화천-양구일대에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줄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주타격은 의정부-서울-수원방향에, 보조타격은 개성-서울, 춘천-수원방향에 지향시키도록 하시였으며 서해안의 옹진, 연안방향과 동해안의 강릉방향에서도 타격을 가하여 주타격집단과 보조타격집단의 량익측해안을 믿음직하게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타격방향별로 되는 전선련합부대들의 전투임무를 구체적으로 분담하시면서도 기본은 력량과 기재를 집중하여 서울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진행하는데 두도록 하시였다.

서울해방작전수행을 타격집단의 기본임무로 규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지휘에서 나서는 문제들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8˚선일대와 서울지역에 집중된 적들을 포위섬멸하기 위하여서는 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련합부대들이 맹렬한 반공격으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며 그 좌우익측에서 행동하는 련합부대들이 주타격방향의 련합부대들과의 긴밀한 협동밑에 한강이남에 신속히 진출하여 서울 서남쪽과 남쪽에 있는 적의 퇴로들을 모조리 차단하고 배후를 타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련합부대들사의의 협동작전을 잘 조직하며 보조타격방향부대들의 행동을 주타격방향부대들의 전투행동에 일치시키며 반공격속도를 높이되 적을 련속타격하여 철저히 소멸하는 원칙을 견지하며 남조선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작전적방침에 따라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서울해방작전에 기본력량을 집중하면서 전전선에 걸쳐 전투성과를 급속히 확대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인민군전선련합부대들의 전선작전을 전반적으로 령도하시면서 서울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42km의 주타격방향에 보병의 26%, 포병의 37%, 땅크의 80%, 비행대의 100%를 집중하여 주타격방향에서 적에 비하여 보병은 1:2, 포병은 1:1.4의 우세를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실로 그 누구도 생각할수 없었던 대담하고도 신묘한 작전방안이였다. 이렇게 되자 바빠맞은 적들은 전술적 및 작전적예비대는 물론 전략적예비대들과 군사학교학생들까지 모조리 끌어내여 문산, 의정부, 춘천북쪽계선에 급히 방어를 조직하고 아군의 반공격을 저지시켜보려고 발악하였으며 미제침략자들은 황급히 해군과 공군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그 어떤 발악도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적방침을 관철해나가는 인민군부대들의 전진을 가로막을수 없었다.

 

※ 반공격을 시작한 첫날 저녁에 동두천을 해방한 인민군 련합부대들은 6월 26일에는 소부대를 적배후에 진입시켜 퇴로를 차단한 후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를 해방하였으며 련이어 27일에는 미아리계선을 일거에 점령하여 서울의 최종 외부방어선에 큰 파렬구를 형성하였다. 퇴로가 차단된 괴뢰군사병들은 사복을 갈아입고 부근의 산속으로 도망쳤는데 한 외국론평원이 평가한것처럼 모래속으로 물이 스며들듯 사라졌다.

 

ㅡ 서울해방작전을 조직지휘하시면서 과시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군사전략과 비범한 령군술은 다음으로 시가전의 성과적수행과 시민들의 생명재산, 문화유물들을 적극 보호할수 있도록 공격개시시간을 정해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군의 일부 력량으로 먼저 서울시내에 돌입하여 적을 혼란시키고 기본력량은 28일 새벽 5시에 공격을 개시할것을 명령하시였다.

 

※ 새벽 5시면 아군의 공격에 온밤 신경을 쓰며 안절부절 못하던 적들이 피곤에 몰려 긴장성을 늦추게 되며 반면에 아군은 날이 밝아 적들의 움직임과 타격대상물들을 정확히 가려볼수 있기때문에 공격하는데 유리하였다.

 

인민의 생명재산과 문화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울시에 대한 총공격개시시간을 날이 밝을 아침시간으로 정하신것은 언제나 인민의 리익을 최고의 원칙으로 내세우시고 전쟁도 인민을 위한것으로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인민사랑의 구상이였다.

인민군부대들의 서울진입이 박두하게 되자 멸망의 공포에 질린 민족반역자들과 온갖 반동들의 소동으로 하여 시내는 온통 수라장이 되였다.

 

 방송마이크앞에 나앉아 인민들을 기만하며 《국군》의 《강대성》에 대하여 헛소리를 치던 미국《대사》 무쵸는 수원비행장으로 도망쳤고 리승만매국역적은 더러운 목숨을 건지려고 자기가 포로되면 《국민의 사기》에 영향을 준다고 하면서 서울시민들이 깊이 잠든 27일 새벽 3시에 혼자 몰래 서울역을 빠져 대전으로 꽁무니를 빼였다. 전선정황에 어두운 괴뢰 《국회의원》들만 《긴급국회》라는것을 열어놓고 《수도사수》를 떠들다가 리승만이 달아난 소식과 인민군대의 포사격소리를 듣게 되자 살구멍을 찾아 도망치고말았다.

당시 서울의 형편에 대하여 미국의 문필가 데이비드 콘데는 다음과 같이 썼다. 《표면상 서울의  6월 27일 밤은 죽은 거리였다. 새벽까지 <한국군>은 전면적으로 퇴각하고있었다. 화물자동차와 찦차에 탄  장교들과 사람들은 거리를 달리고있었고 그뒤에 반라체로 땀과 흙투성이가 되여 무엇인가 지껄여대며 무기를 내던지고 도보로 뛰여가는 군대들이 있었다.》

 

6월 28일 새벽 5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서울시에 대한 총공격이 개시되였으며 오전 11시 30분, 영용한 우리 인민군대에 의하여 드디여 서울은 완전히 해방되였다.

미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이였던 서울상공에는 오각별 찬란한 람홍색공화국기발이 휘날리고 해방의 기쁨과 감격으로 온 도시가 들끓었다.

거리는 수많은 환영군중들로 물결치고 《김일성장군 만세!》 환호성으로 떠나갈듯 하였다..

적들은 대참패를 당하였다.

 

※ 적들은 겨우 목숨을 건진 병력을 수습해보고는 《전체의 반이상이 서울함락전 3일간에 전사했거나 부상, 포로당하였다.》고 개탄하였으며 《륙군본부는 9만 8 000명이 올라있던 25일의 병적부에서 불과 2만 2 000명밖에 확인할수 없었다.》고 비명을 질렀다. 38°선이북으로 침공할 때에는 《아시아제일의 군대》라고 하던 10만의 남조선괴뢰군이였으나 나흘후에는 4분의 3이 행방불명되여 적기본집단은 말그대로 패배만 한것이 아니라 붕괴된것이였다.

 

공화국북반부를 단숨에 삼키려던 미제침략자들의 무력침공을 일격에 짓부셔버리고 미제의 식민지통치체제를 단 3일만에 허물어버린 전대미문의 이 군사적기적은 전적으로 천리혜안의 군사적예지와 비범한 령군술을 지니신 강철의 령장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반공격의 중심고리를 면바로 찾으시고 전선작전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신 결과로 이룩된 빛나는 승리였다.

 

※ 적들의 무력침공을 좌절시키고 단 3일만에 이룩된 서울해방작전에서의 승리를 두고 우리 인민들은 축지법과 일행천리의 지략, 풍운조화, 승천입지의 묘술을 지니신 백두산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이룩하실수 있는 기적이라고 격찬하였다.

 

위대한 전승의 력사는 또 한분의 희세의 천출명장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선군조선의 영원한 승리의 력사로 세기를 이어 길이 빛날것이다.

차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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