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쟁은 력사상 가장 가렬한 전쟁​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청소한 우리 공화국과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가장 간고하고 엄혹한 시련이였으며 인류전쟁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가렬한 전쟁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상에 조선전쟁처럼 가렬한 전쟁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ㅡ 조국해방전쟁이 전쟁사상 가장 가렬한 전쟁으로 되는것은 무엇보다도 력량대비와 전쟁이 벌어진 령역에서 력사에 류례가 없는 전쟁이였기때문이다.

전쟁의 가렬성은 적아간의 력량대비와 전쟁이 벌어진 령역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조선전쟁은 적아간의 력량상에서 대비가 되지 않는 전쟁이였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에서 리승만괴뢰군을 앞세워 전쟁을 도발한 미제는 유엔에서 비법적인 결정을 조작한 다음 15개 추종국가군대, 남조선괴뢰군, 일본군국주의군대를 포함하여 최신식무장장비를 갖춘 대병력을 조선전쟁에 들이밀었다. 또한 트루맨과 아이젠하워, 이든과 쳐칠, 애치슨과 덜레스, 브래들리와 맥아더, 릿지웨이, 클라크 등 미국과 영국에서만도 정치와 군사에서 당대 자본주의세계의 손꼽히는 《명물》, 《명장》들이 모두 조선전쟁에 뛰여들었다. 당시 조선인민군은 정규무력으로 발전한지 2년밖에 안되며 더우기 현대전의 경험도 없었으며 불과 8개의 사(려)단과 3개의 련대 및 18개의 경비대대 그리고 3개의 민청훈련소(후에 3개의 사단으로 개편)를 가지고있었을뿐이였다.

 

한편 조선전쟁은 조선반도의 좁은 지역에서 적아 수백만대군이 3년간에 걸쳐 벌린 피어린 격전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장 큰 폭리를 보고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미국은 조선전쟁을 너무도 쉽게 속단하였다. 창건된지 2년도 안되는 청소한 조선 대 피비린 100여년의 침략력사를 자랑하는 미국과의 전쟁은 말그대로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였다.

 

인류전쟁사를 놓고보아도 적아간의 력량대비가 이렇게 엄청난 례는 보기 드물다. 하기에 전쟁도발자들은 아침은 해주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장담하였던것이다. 그야말로 조선전쟁은 령토의 크기와 인구수에 있어서나 군대의 수와 무장장비, 현대전의 경험에 있어서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를 이룬 전쟁이였다.

 

때문에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세상에 전해졌을 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운명이 《72시간내에 결판》나게 된다는 미제의 호언을 그대로 들으면서 전쟁의 《명백한 결과》를 속단한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였다.

이처럼 조국해방전쟁은 력량대비와 전쟁이 벌어진 령역에서 력사에 류례없는 전쟁이였다.

 

ㅡ 조국해방전쟁이 전쟁사상 가장 가렬한 전쟁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미제침략자들이 아직 인류가 알지 못하는 가장 야수적이며 악랄한 범죄적만행들을 저지른 전쟁이였기때문이다.

조선전쟁은 인간과 야수와의 대결이였다.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수행한 작전의 본질은 집단살해였으며 전술의 기본은 불바다작전이였다. 미제는 자기 병사들에게 조선인민을 닥치는대로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미제가 일으킨 조선전쟁은 그 잔인성과 야만성에 있어서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살륙과 파괴전쟁이였다. 

 

《죽이라. 설사 그대들앞에 있는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의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 당시 미8군사령관이였던 워커의 이 살인명령은 조선민족멸살을 노린 미제의 간악한 흉계의 집중적인 발로였다. 살륙과 파괴에 환장이 된 미제침략자들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쏘아죽이고 불태워죽이고 생매장해죽이고 목매달아죽이였다. 미제침략군은 전쟁시기 남조선에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일대와 수원, 대전과 충주, 공주와 평택, 부여와 청주, 전주와 군산, 안양과 통영을 비롯한 남조선 그 어디에서나 무차별적인 대학살만행이 감행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공화국북반부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도 대중적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시적강점시기 신천땅에서 군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무고한 인민들이 학살된것을 비롯하여 전쟁전기간 황해도에서 40만 1 940여명, 평안남도에서 16만 2 180여명, 강원도에서 12만 9 390여명, 평안북도에서 11만 6 220여명, 함경남도에서 11만 5 300여명, 함경북도에서 8만 2 020여명, 자강도에서 6만 4 240여명의 인민들이 미제살인귀들에 의하여 피흘리며 쓰러졌다. 3년간의 전쟁기간 공화국북반부에서는 123만 1 540여명의 평화적주민들이 미제야수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였다.

 

미제는 조선을《싸움터》로, 《병력과 무기의 가장 효과적인 리용을 위한 시험장》으로 간주하였으며 나팜탄과 같은 대량살륙무기사용과 세균전, 화학전만행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에서 쫓겨가면서 평양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황해도(황해남북도) 등 지역에 음흉한 방법으로 천연두를 비롯한 전염병균들을 퍼뜨리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영웅적조선인민군에 의하여 전선에서 참패만을 거듭하던 미제는 1952년에 들어서면서 공화국북반부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세균전까지 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제에 의하여 1952년 1월 초순부터 3월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169개의 지역에 연 804차에 걸쳐 각종 세균탄이 대량 투하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세균전에 세균폭탄, 세균산포탕크, 세균포탄, 종이탄, 원통형나무함 등을 리용하였다. 투하된 세균탄에는 가장 무서운 악성, 급성, 전염성병균들이 묻은 파리, 벼룩, 거미를 비롯한 유해곤충이 무수히 들어있었다. 1952년 5월에 들어서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수많은 비행기들을 동원하여 공화국북반부지역에 세균탄을 투하하였는데 어떤 날에는 비행기의 수가 무려 480여대에 이르렀다. 극악한 세균전만행에 직접 참가했다가 포로되였던 미해군륙전대 대좌도 《조선에서의 세균전계획전체는 미합동참모본부에서 지시한것이다. 1952년 5월에 세균전은 5공군의 지시에 의하여 더욱 확대되였다.》고 진술하였다.

 

미제는 세균무기와 함께 대량살륙수단인 화학무기도 거리낌없이 사용하였다. 

 

미제는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 강원도, 황해도(황해남북도), 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24개 시, 군과 전선지구들에서 수많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화학무기는 스파나팜탄이였다. 미제는 인민군전연진지와 후방의 평화적도시들과 농어촌들에까지 대량살륙무기의 하나인 스파나팜탄을 1 500여만발이나 사용하는 범죄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처럼 미제국주의자들은 1951년 10월 조선전선에 세균 및 화학무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할것을 명령하고 집행함으로써 세균무기와 유독성화학무기사용을 금지할것을 규정하고있는 국제법규와 관례들을 엄중히 위반하였다.

 

ㅡ 조국해방전쟁이 전쟁사상 류례없는 가장 가렬한 전쟁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단위면적당 병력수와 화력밀도, 살상률에 있어서도 인류전쟁사상최대의 전쟁이였기때문이다.

전쟁에 동원된 병력수와 화력밀도, 살상률 또한 전쟁의 가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의 하나이다.

• 우선 단위면적당 병력수에서 사상최대의 전쟁이였다.

 

미제는 조선의 좁은 전선에 최신장비로 무장한 저들의 륙군의 3분의 1과 공군의 5분의 1, 태평양함대의 대부분 그리고 15개 추종국가군대와 남조선괴뢰군 및 일본군국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도합 200여만명의 대병력을 투입하였다.

 

• 또한 화력밀도에 있어서도 인류전쟁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전쟁이였다.

화력밀도에서 미제는 언제나 전쟁사상 보기 드문 《불바다전술》을 썼다.

 

1950년 9월초 《대구위기》때 미8군이 부산교두보에서 하루 포 1문당 발사한 포탄수는 제2차 세계대전때의 약 2배였다. 《하기공세》때 983.1고지(《피로 물든 봉우리》)공격을 위해 미2사는 200문의 포로써 공격정면 4㎞(포 1문당 공격정면 20m)에 1일 평균 4만발의 포탄을 9일간 련속 발사하였는데 《이 밀도는 전쟁에서 희유한것》이였다고 한다. 1952년 11월《철의 3각지대》의 3개 고지를 공격하는데 시간당 1만 7 000발의 비률로 8시간동안 계속 사격하여 모두 13만 6 000발의 포탄을 소모하였는데 이런 화력밀도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도 찾아보기 어려운것이였다.

 

적비행대는 전쟁 3년간 105만회이상 출격하여 그 85%를 평화적대상들에 대한 폭격과 기총사격에 집중하였다.

 

1950년 10월말까지 후방폭격에 출격한 《B-29》의 연 대수는 5만대였으며 전쟁초기 7개월간 평양폭격에만도 연 5 000대의 비행기가 출격하였다. 이 비행대들이 3년간 조선에 투하한 폭탄량은 56만 4 436t, 나팜탄은 3만 2 357t(그밖에 로케트탄 58만 7 789발, 기총탄 2억 3 865만여발, 연막탄 5만 5 700여발은 제외)에 달했는데 이것은 태평양전쟁시기 일본본토에 떨군 폭탄 16만 1 425t의 3.7배를 초과한 방대한 량의 폭탄이 크지 않은 우리 나라 령토에 집중투하되였다는것을 말한다.

 

• 또한 동원병력수에 비한 살상률에 있어서도 미군은 조선전쟁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기였다.

《유엔군》의 살상률은 40~60%였는데 이것은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낸 살상률의 5~8배에 해당하며 파쑈도이췰란드군의 55.8%보다 컸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미군의 살상률은 이것보다 훨씬 높았다.

 

1950년 10월 21일 강점한 평양비행장에 날아온 맥아더가 사병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미군으로서 평양에 먼저 침입한 제5기병련대 F중대를 찾은 일이 있었다. 200명의 중대성원들앞에 나선 그는 《96일전에 조선에 상륙하여 지금까지 살아온자는 대렬앞으로!》라는 구령을 주었는데 일보앞에 나선자는 단 5명뿐이였다. 그가운데서 3명은 머리와 팔다리에 붕대를 감은 피투성이의 부상자였고 성한자는 2명뿐이였다. 그러니 99%의 사상자를 낸것으로 된다. 이것은 미1기병사단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한것일뿐아니라 실제상 미8군의 거의 모든 기본사단들의 손실의 축도이기도 하였다. 미24사는 더 말할 여지가 없고 미2사, 25사, 7사도 모두 1기병사단의 형편과 같았다. 때문에 1950년 8월부터 매달 1만~1만 5 000명의 병력을 본국에서 보충받고있던 맥아더는 눈앞에 벌어진 참경이 예상보다 너무 참혹한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기분이 나빠진 그는 《공훈자》들을 승급시키려던 본래의 계획을 취소하고 맥없이 되돌아섰다고 한다. 바로 이때문에 미합동참모본부의장 브래들리는 조선전쟁은 《미국이 진행한 지금까지의 전쟁가운데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가장 류혈이 많은 전쟁》이였다고 개탄하였다.

 

ㅡ 조국해방전쟁이 전쟁사상 가장 가렬한 전쟁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최신예무기들이 다 동원되여 방대한 물자를 소모한 전쟁이였기때문이다.

전쟁에 투입된 무기 및 전투기술기재를 포함한 방대한 물자의 소모는 전쟁의 가렬성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척도이다.

미제는 태평양전쟁에서 소모한 군수물자의 11배에 달하는 7 300만t이상의 군수물자를 소모하였으며 150억US$의 직접적군사비와 1 500억US$의 간접적군사비를 탕진하였다. 미제는 조선을 신형무기의 시험장으로 삼았다. 미제는 음속에 가까운 분사식비행기들을 출격시켰고 땅크와 반땅크포, 고사기관총 등 상용무기와 장비들에서 새형의 무기와 장비들을 모조리 끌어내여 시험하였을뿐아니라 화학무기와 세균무기까지 사용하면서 그 효과를 검증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전략적핵무기를 완성하여 조선에서 그 작전전술도 연구하였다. 미군은 한개 공격목표를 위하여 한개 사단이 하루에 화물자동차 1 500대분의 탄약을 쓰는 돈의 싸움을 벌리였다.

 

일본의 출판물들은 조선전쟁은 돈의 싸움이였고 이런 의미에서 조선전쟁은 이후 전쟁의 표본이라고 론평하였으며 이 현대전쟁을 통하여 조선민족은 벌써 제3차대전을 겪었다고 평가하였다.

조국해방전쟁은 이처럼 인류전쟁사에서 가장 가렬했던 사상최대의 전쟁이였다.

이렇듯 력사에 류례없는 가장 방대한 침략무력과 물자가 동원되고 그 수법에 있어서도 가장 야수적이며 범죄적인 전쟁방법이 적용된 조선전쟁에서 미국은 침략전쟁 력사상 처음으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무비의 담력과 배짱, 탁월한 령도력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다.

그것은 지난 1950년대 조선전쟁에서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클라크가 한 말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미국의 《이름있는 장군》이라던 그는 항복서에 수표하고나서 기자들에게 수표에 리용한 만년필을 보이며 이 만년필로 정전협정에 내가 수표하게 된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김일성장군과 맞섰는데… 나뽈레옹이 백이 있어도 조선을 당할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지난 조선전쟁에 참가하여 미제침략군과 그 추종국가군대의 군사작전에 직접 참여했던 뽀르뚜갈 전 대통령 고메스는 《당시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미국편에 선 서방나라들의 참모장들, 군사전문가들인 수십명의 장군들이 여러차례 모여서 토의한 끝에 만든것이였다.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단독으로 격파하시였다. 나는 이것을 내 눈으로 보고 김일성장군이시야말로 이 세상에 한분밖에 없는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시며 위대한 령장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였다.》라고 하였다.

 

보총으로 원자탄을 이긴것과 같은 세계전쟁사의 기적의 요인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이였다.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또 한분의 선군령장을 당과 혁명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있다.

 

약육강식을 생존법칙으로 삼는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지금 세계도처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고 적지 않은 나라 인민들이 동란으로 살길을 찾아 방황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미제의 악랄한 전쟁도발책동과 제재와 봉쇄책동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인민의 행복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적이 창조되고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이 현실로 펼쳐지는 오늘의 자랑찬 성과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불철주야의 선군혁명령도가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웅적한생이 어려있는 자주의 기치가 있고 대를 이어 걸출한 령도자를 높이 모시고있기에 우리 혁명의 앞길은 창창하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도 자주를 혁명의 영원한 승리의 기치로 높이 추켜들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강성국가건설의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갈것이다.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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