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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

2017-11-08   리영남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던 고구려의 지향은 10세기초에 창건된 고려에 의하여 계승되였다. 고려는 신라가 차지하고있던 대동강이남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멀리 북쪽에서 이주하여온 발해의 유민들까지도 하나의 주권밑에 통합하였으며 광활한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기 위하여 힘찬 투쟁을 벌렸다.》

918년 궁예의 태봉국을 전복하고 수립된 고려는 고구려의 통일지향을 계승하여 건국초기부터 동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국토통일정책을 힘있게 추진함으로써 930년대 중엽 마침내 국토의 통일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지향을 실현한 커다란 민족사적사변이였다.

 

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보다도 고려가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뒤이은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로서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서게 되였다는데 있다.

 

왕건은 태봉국의 궁예정권을 전복하고 나라를 세울 때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의미에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립당시의 고려는 아직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때 북방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여전히 존재하였으며 남방에는 고려와 함께 비등한 지위를 가진 후백제와 신라가 있었다. 이밖에 독자적인 국가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소왕국과 같은 할거세력들이 수십개나 존재하였다.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동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국토통일정책을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고려는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매우 중시하였고 수도 개경을 꾸리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힘을 넣었다. 고려는 918년 9월 평양에 대도호부를 설치하고 왕의 사촌동생 왕식렴을 비롯한 중신들을 보내여 이곳을 장악지배하도록 하였으며 919년에는 평양을 서경으로 승격시키였다. 또한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차지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서북방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발생발전의 중심지를 확고한 자기의 령토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고려로 넘어오는 수십만의 발해주민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신라와 후백제의 령토와 주민을 통합하였다.

그리하여 고려는 고조선이후 여러개의 국가로 존재해온 분립의 력사를 끝장내고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민족의 령토와 주민을 통합한 력사상 첫 통일국가로 되였던것이다.

이처럼 고려는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일대를 차지하고 수많은 발해유민들을 포섭하였을뿐아니라 신라, 후백제의 령토와 주민을 통합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차지할수 있게 되였다.

 

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는 다음으로 우리 민족이 한 나라, 한 강토우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려나갈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는데 있다.

 

B.C. 15세기 중엽 단군조선이 후조선으로 교체된 후 후조선, 부여, 구려, 진국으로 분렬된 우리 민족은 봉건국가로 넘어온 초기에 고구려, 후부여, 백제, 신라, 가야로 분렬되였으며 그후 발해, 후기신라까지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민족분렬의 이러한 재난과 고통을 끝장내고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의 통일지향은 김춘추, 김유신을 비롯한 신라의 통치배들이 당나라침략자들을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킨 사대배족적행위에 의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고려가 성립될 당시 대동강류역 이남지역은 고려, 후백제, 신라 세나라와 한개 혹은 몇개 고을을 차지하고 《성우두머리》, 《장군》으로 칭하면서 각지에 할거해있던 수십개의 봉건세력들로 갈라져 자기가 차지한 령역안의 인민들을 제마음대로 억압착취하였을뿐아니라 그들을 세력권쟁탈을 위한 싸움에로 내몰았다. 극심한 분렬과 계속되는 내란은 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웠다.

고구려의 통일지향을 계승한 고려가 서북방진출을 다그치는것과 함께 발해유민들을 적극 포섭하고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여 국토의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나라 호상간 지역적인 장벽은 점차 허물어지고 우리 민족은 마음대로 오가며 자기의 의사에 따라 아무데서나 살수 있게 되였으며 분렬로 인한 끊임없는 재난과 불행, 민족적고통이 극복되고 한 나라, 한 강토우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는 다음으로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나가는데 유리한 국면을 열어놓았다는데 있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돌이켜보면 국토의 통일이전시기에는 외적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 전민족적범위에서 벌어지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 국한되였다.

 

B.C. 109~108년 고조선인민들이 한나라의 무력침공을 반대하여 완강한 투쟁을 벌리고있을 때 동족의 나라였던 부여, 진국은 이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삼국시기 고구려가 전한, 후한, 연, 위, 수, 당 등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장기간에 걸치는 간고하고도 어려운 투쟁을 벌리고있을 때 백제, 신라, 가야, 후부여의 통치배들 역시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령토확장과 통치권만을 추구하였다. 지어 신라봉건통치배들은 당나라와 비밀협약을 맺고 동족의 나라인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죄악을 저질렀다.

 

고려는 국가성립후 동족의 나라로 넘어오는 발해유민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함으로써 거란의 침략을 견제하는 정치군사적인 력량을 마련할수 있었다.

당시 반거란감정이 강한 발해유민들은 서북지방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을 장악하는데서와 그후 거란침략군을 물리치는데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993년 10월 거란침략군을 청천강계선의 안융진에서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한 중랑장 대도수, 1010년 12월 곽주(평안북도 곽산)방어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대장군 대회덕 등은 발해유민들이였다.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과 압록강이남지역의 장악, 수많은 발해유민의 포섭, 후백제, 신라령토의 통합 등으로 고려의 군사력은 훨씬 강화되였으며 단합된 민족의 힘으로 외적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해나갈수 있었다.

 

993년~1019년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은 국토가 통일된 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싸워이긴 첫 반침략투쟁이였다. 1231년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지역을 강점하고 수백년간 통치하면서 세계의 《정복자》로 자처하던 봉건몽골침략자들이 수십년간에 걸쳐 고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하였으나 끝내 고려만은 굴복시킬수 없었던것은 바로 통일된 강토에서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싸웠기때문이였다. 이후에도 고려인민들은 왜구, 홍두적, 녀진 등 외적들의 끊임없는 침략책동이 있을 때마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싸움으로써 외적을 성과적으로 물리치고 나라의 자주권을 영예롭게 수호하였다.

 

이처럼 고려에 의한 국토의 통일이 실현됨으로써 분렬로 인하여 민족이 하나로 단합될수 없었던 페단은 극복되고 온 민족의 힘을 모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할수 있게 되였다.

 

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는 다음으로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에도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는데 있다.

 

고려이전에 우리 민족은 여러 나라로 분렬되여있었기때문에 경제와 문화분야에서 이룩한 우수한 성과와 경험들을 널리 보급하고 하나로 종합체계화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봉건통치배들의 죄악으로 제한까지 받았다.

 

고려에 의하여 국토가 통일됨으로써 우선 그 이전시기 우리 인민이 이룩한 경제문화적유산을 보다 전면적으로 계승하여 그것을 새로운 토대우에서 더욱 발전시킬수 있었다. 고려는 평양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되찾고 왕실귀족들과 관료들, 학자와 기술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발해유민들을 포섭함으로써 고구려, 발해의 발전된 경제와 문화를 전면적으로 계승할수 있었을뿐아니라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함으로써 그의 경제문화적유산들도 폭넓게 이어받을수 있었다. 또한 우리 인민들은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배워주고 배우면서 더욱 발전시켜나갈수 있었다.

고려시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자기가 광범히 생산되고 출판력사에 특기할 불교총서인 8만대장경과 속장경이 편찬되였으며 12세기 전반기에는 금속활자를 발명하는 등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빛나는 성과들을 이룩하여 세계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의 국토통일이 가지는 의의는 다음으로 온 민족의 힘을 하나로 합침으로써 우리 나라의 대외적지위를 훨씬 높여나갈수 있게 하였다는데 있다.

 

이전시기에는 민족의 단합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여 주변나라들에 더 큰 영향을 줄수 없었고 단일한 국호를 가지고 대외관계를 맺지 못하여 정치적분렬과 복잡성을 피할수 없었다.

 

고려에 의한 국토통일이 실현됨으로써 나라의 방위력이 강화되고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여 주변나라들에 큰 영향을 주게 되였다.

북방의 녀진인들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 《대국》으로 받들면서 집단적으로 귀화하여오거나 고려와 친밀한 련계를 맺고 공물까지 바치였으며 자주 오고갔다. 1044년 6월 송나라통치배들속에서는 강대한 고려와 동맹하여 앞뒤에서 공격한다면 거란은 멸망하고야말것이라고 하면서 고려와 국교를 회복하고 반거란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울려나왔다.

고려에 의해 국토가 통일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대외무역에서도 커다란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다.

 

고려시기 농업, 수공업의 생산과 기술이 발전하고 대내외상업이 번성함으로써 송, 거란, 녀진, 대식국 등 여러 나라들에서 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수도 개경의 외국인숙소는 항상 초만원을 이루었으며 벽란도항구에는 외국배들의 돛이 숲을 이룰 정도였다.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공용어인 《코레아》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것도 바로 국토통일이후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한데 기초하여 대외무역이 활발히 진행되였기때문이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출현으로 나라의 국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화되여 민족의 존엄과 명예가 높아지고 우리 민족의 애국적열의가 높이 발휘된데서 이룩된 결실이다.

이처럼 고려에 의한 국토의 통일은 단일민족으로서 우리 인민의 혈연적뉴대와 공통성을 더욱 강화하고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해나가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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