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운동앙양의 새로운 리정표 마련

 

 

남패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주체27 (1938). 11. 25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7(1938)년 11월에 조직진행하신 남패자회의는 항일혁명투쟁에서 조선혁명의 주체성을 더욱 강화한 력사적인 회의이다.

주체27(1938)년 가을에 이르러 항일무장투쟁의 앞길에는 엄혹한 난국이 조성되였다.

 

일제는 관동군 주력사단들의 대부분과 위만군, 지방무장경찰대까지 총동원하여 압록강, 두만강연안의 군사전략상 중요지대들에 배치하고 항일무장부대들에 대한 《토벌》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특히 일제는 1930년대초부터 저들을 엄중하게 위협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토벌》의 기본대상으로 삼고 군사적공세와 함께 집단부락의 건설, 교통통신시설의 신설완비 등으로 혁명군의 생존조건을 봉쇄하는 《치본공작》, 공산주의사상 및 반만항일사상을 말살하는 《사상공작》과 《귀순공작》 등을 골자로 하는 《문화토벌》을 집요하게 벌리는 동시에 도처에서 혁명조직과 애국적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책동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때 국제당이 강요한 좌경모험주의적로선에 따라 본래의 유격전구를 떠나 열하원정에 나섰던 남만의 중국인항일련군부대들이 적의 포위에 들어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은 백두산서남부일대에 증강된 적의 대병력과 거의 단독으로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발악적책동을 짓부시고 열하원정의 후과를 시급히 극복하며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울것을 결심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중국 몽강현 남패자로 부르시였다.

 

남패자로는 열하방면으로 나갔다가 큰 피해를 당한 동북항일련군부대 성원들도 모여왔다. 항일련군 제1로군장 양정우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자리에서 그동안 거듭되는 열하원정으로 모두가 큰 피해를 보았는데 조선인민혁명군이 력량을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한것은 김사령이 주견을 가지고 부대를 잘 이끌어온 덕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네 부대에 조선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적의 포위를 뚫지 못하고 전멸당했을것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일군들을 많이 양성하여 파견해주신데 대해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7(1938)년 11월 25일부터 10여일간 중국 몽강현 남패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였다.

 

회의에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들과 함께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의 군정간부들도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최근에 혁명의 앞길에 난국이 조성되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국제당에 있는 일부 사람들의 모험주의적인 책동의 후과와 주요하게 관련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열하원정계획은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로 보나 유격전쟁의 원칙으로 보나 지역적대상으로 보나 매우 무모한 계획이였다고 비판하시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시급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로 진출할데 대하여 밝히시였다.

 

조선혁명은 조선의 혁명가들이 책임지고 수행한다는 자주적립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혁명투쟁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확고하게 견지하여오신 일관한 립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기 위하여서는 정세에 대한 판단을 옳게 하며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시급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국경일대에로 진출하는것은 당시의 정세하에서 매우 절박한 요구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시 백두산근거지를 떠나 유동작전을 전개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마치도 인민혁명군을 《진압》한듯이 우리 인민을 기만하는 악선전을 벌리고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압록강, 두만강연안에 진출하여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려야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강력한 타격을 줄수 있으며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반일민족해방투쟁에 성과적으로 조직동원할수 있었다.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키기 위해서도 조선인민혁명군이 하루속히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여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다시 백두산일대에로 진출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선혁명을 계속 줄기차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난관과 위험이 앞을 가로막아도 그것을 용감히 뚫고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광활한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더 활발히 조직전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활동에서 유격전의 기본요구를 옳게 구현하여 집중과 분산, 령활한 기동전을 조직전개함으로써 적에 비한 전술적우세를 확고히 보장하고 일제의 동기《토벌》책동을 이르는 곳마다에서 완전히 파탄시키는것과 함께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다 리용하여 대중정치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회의에서는 인민혁명군부대들을 여러 방면군으로 편성하고 그 지휘관들을 임명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대들의 활동지역과 임무를 구체적으로 분담하시고 국내와 압록강, 두만강연안에서 활동하게 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인 제2방면군을 친히 지휘하기로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패자에서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지휘일군들인 양정우, 위증민에게 조선인민혁명군 성원들을 수많이 보충하여 경위련대를 새롭게 개편해주시였으며 지어 그들에게 전령병들까지 파견하시여 그들의 전투력과 사기를 높여주시고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과 군대사이의 친선과 우애를 더욱 두터이 하시였다.

 

남패자회의는 조선혁명의 주체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로선적문제를 채택함으로써 일제의 반동공세와 좌경모험주의의 해독적후과로 말미암아 조성된 난국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고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인 혁명운동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나가는데서 새로운 리정표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패자회의는 남호두회의와 함께 조선혁명과 동북혁명의 주체성을 강화하는데서 큰 몫을 담당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에 기초하여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을 가지고 자기 나라의 특성과 실정에 맞게 혁명을 자주적으로 해나가려는 조선혁명가들의 의지가 재천명된 남패자회의의 정신은 조선인민혁명군 전체 장병들에게 커다란 고무적힘을 안겨주었으며 그 힘은 그들로 하여금 적들이 겹겹으로 포위하고있던 그 준엄한 환경속에서 장백의 설령과 설원을 헤치고 조국땅에 나가 승리의 총성을 울릴수 있게 한 위력한 원동력으로 되였다.

남패자회의는 또한 국제당이 지시한 좌경모험주의적인 열하원정로선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여 심대한 손실을 당한 동북항일련군부대들로 하여금 심각한 교훈을 찾고 중국 동북지방에서의 혁명운동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일화; 출발을 미루신 사연​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19장 시련의 언덕을 넘어. 6. 양정우와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