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로역경의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을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110여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시여 조선혁명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끄시였다.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어려운 행군이였던 고난의 행군은 거리상으로보면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길지않은 구간이였지만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은 110여일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간고하고 어려운 행군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는 행군은 행군기간으로 보나 그 간고성으로 보나 종래의 행군들과는 대비도 할수 없는 간고한 행군이였습니다. 행군기간이 100여일이나 되기때문에 이 행군은 〈100일행군〉이라고도 불리우고있습니다. 기간을 보면 사실 110여일이나 되는 행군이였습니다. 고생이 너무도 막심했기때문에 그 행군을 가리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패자회의에서 항일혁명투쟁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 진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당시의 정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대부대로 조국으로 나갈 형편이 못될 정도로 매우 엄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담하게 국내진출을 위해 압록강연안에로의 행군을 단행하기로 하신것은 조선혁명앞에 닥쳐온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마당거우에서처럼 한해겨울동안 밀영에 들어앉아 군정학습을 하다가 날씨가 따뜻해진 다음에 새로운 작전을 펼쳐도 되지 않는가, 엄동설한에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하였지만 그런 방법으로 현상유지나 해가지고서는 혁명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할수 없었다. 《혜산사건》​으로 수많은 혁명조직성원들이 잡혀가고 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는 적들의 허위선전으로 서간도와 국내인민들의 사기가 저락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과 한다하는 혁명가들조차 신심을 잃고 백두산쪽만 바라보고있는 때에 혁명을 다시 앙양시키자면 조선인민혁명군이 고난의 행군을 해서라도 조국으로 나가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군이 녹아났다고 적들이 선전할 때 그것을 허위라고 까밝히며 혁명군이 살아있다고 선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국내에 들어가서 총소리를 내는것이며 총소리만 내면 지하혁명조직도 많이 내올수 있다고 보시고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기어이 헤쳐나가 장백의 혁명조직을 수습해놓은 다음 조국에 나가기로 하시였다.

 

혁명앞에 닥쳐온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자면 어떤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장백에로, 조국에로 나가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드놀지 않는 배짱이고 의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남패자회의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제2방면군의 활동지역을 국내와 압록강, 두만강연안 국경지대로 확정하시고 자신께서 직접 부대를 친솔하기로 하신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리하여 주체27(1938)년 12월초부터 주체28(1939)년 3월말까지 110여일동안 계속된 고난의 행군이 진행되였다.

 

 

고난의 행군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력사에서 류례없이 어려운 행군으로 된것은 그것이 적들의 끊임없는 추격과 포위속에서 진행된데 있었다.

 

일제는 열하원정에서 동북항일련군 1군은 다 녹고 얼마 없다, 남은것은 김일성부대뿐이라고 떠들면서 이해 겨울에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와 기어이 결판을 낼 심산으로 대규모 《동변도토벌작전》을 벌리였다. 일제침략자들은 통화에 《토벌사령부》를 두고 관동군주력부대의 대부분과 위만군 정예부대, 무장경찰대, 자위단의 병력을 비롯한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혁명군이 진출하는 길목마다에 집중배치하였다. 그리고 지상부대와 항공대의 협동작전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사면팔방으로 협격할 태세를 갖추고 통신수단으로 비둘기까지 날리면서 악착스럽게 덤벼들었다. 백두산지구와 국경일대는 적들의 총검으로 숲을 이루고 조밀한 《토벌망》으로 뒤덮이게 되였다.

 

적들의 이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국경연안에로 나간다는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기에 행군은 시작부터 총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다가 적들의 《토벌》전술도 종전과는 달랐다. 전에는 혁명군의 행동방향을 탐지한 다음에야 이곳저곳에서 병력을 끌어왔고 그러다가 반격을 받게 되면 물러가기도 했지만 이해 겨울에는 처음부터 《맹공장추전술》을 썼다. 적들의 공격과 추격이 얼마나 맹렬하였던지 인민혁명군은 밥을 해먹을 사이도 없어 생쌀을 씹어먹으면서 행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적들은 서로 교대하면서 얼마든지 쉴수 있었지만 혁명군은 쉴짬도 먹을 짬도 없이 계속 싸워야 하였다.

 

행군의 간고성은 여기에만 있지 않았다. 이해에는 추석전에 첫서리가 내리고 추석이 지나서는 벌써 첫눈이 크게 내려 온 산판을 덮은데다가 초겨울부터 강추위에 박달나무가 얼어터질 정도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전례없던 대강설로 눈이 키를 넘고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서 생눈길을 헤치고 뒤따르는 적과 힘겨운 전투를 계속 벌리면서 행군하여야 하였다.

 

행군과정에 겪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시련은 식량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래 주체27(1938)년 가을에 혁명군이 한해 겨울동안 먹을수 있는 식량을 충분히 마련해놓으시였다. 그런데 남패자회의를 하는동안 많은 식량을 소비한데다가 나머지식량은 먼저 떠나는 부대들이 담당지역으로 갈 때 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시였던것이다. 추운 겨울이여서 산나물이나 풀잎따위의 신세마저도 질수 없었다. 그래서 행군초기에 혁명군대원들은 하루 두끼씩 죽을 쑤어먹다가 얼마 못가서 하루 한끼로 줄이였으며 나중에는 그 한끼마저 먹지 못하고 생눈을 삼키면서 행군하였다.

 

적을 치고 빼앗은 말고기도 불을 피울수 없어 날것으로 먹어야 했다. 식량난에 쫄라병까지 겹치여 그 고생이란 참으로 이루 헤아릴수 없는것이였다. 게다가 적들은 《귀순공작》과 같은 간첩집단을 밀림속에 계속 들여보내고 비행기로 삐라를 뿌리면서 인민혁명군을 내부로부터 와해해보려고 하였다. 지어 조선인민혁명군이 소금이 떨어져 고통을 겪고있다는것을 탐지하고는 간교한 방법으로 소금에 독약을 쳐서 들여보내는 악랄한 모략까지 꾸몄다.

 

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진 시련과 난관으로 일관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진두지휘하신 이 행군과정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다 겪었지만 조선혁명은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상승일로로 발전할수 있게 되였다.

 

   ※ 일화 승리가 확정된 길​

   ※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20장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향하여. 1. 고난의 행군

                   도서: 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고난의 행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