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이냐 민청이냐​

 

 

북조선민주청년단체대표자회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 주체35 (1946). 1. 17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직후 청년들이 새 사회건설에서 노는 역할과 당시 청년운동의 복잡한 실태와 관련하여 청년들을 단일한 청년조직에 굳게 묶어세우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해방직후 청년운동내부는 매우 복잡하였다.

 

청년들은 계급적출신이 달랐을뿐아니라 그들의 정치적동향도 달랐으며 따라서 그들은 제가끔 서로 다른 청년단체들에 망라되여있었다. 나라가 해방되자 전반적지역에서 공산주의청년동맹이 조직되였으며 여기에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로동자, 농민출신의 무산청년들이 망라되고있었다. 이밖에도 진보적인 청년단체로서 애국청년동맹, 건국청년동맹, 농민청년동맹, 학생청년동맹 등 여러개의 청년조직들이 나왔다. 그뿐아니라 한때 정세가 복잡한 틈을 타서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백의청년동맹, 민성회관이요 하는 부르죠아청년단체들과 그리스도교청년회, 천도교청년동맹과 같은 종교청년단체들을 만들었다. 이 단체들은 각양각색의 구호를 들고 청년들을 끌어당기려고 하였다. 남조선에서는 형편이 더욱 험악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망라하는 단일한 대중적인 청년조직을 내오지 않는다면 중요한 혁명력량인 광범한 청년군중을 하나로 결속할수 없었으며 우리 나라 청년운동은 분렬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년운동의 복잡한 형편을 헤아리시고 이미 조직된 공청조직들이 청년대중을 묶어세우고 청년운동을 발전시키는데서 핵심적이며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끄시였다.

 

공청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무산계급의 청년조직인것만큼 공청조직을 강화하고 청년핵심들을 더 많이 늘여 그들의 역할을 높이면 공청이 청년들을 묶어세우는데서 핵심적역할을 놀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조직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자주 공청조직을 찾으시여 공청일군들에게 공청사업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항일혁명투사들을 비롯한 우수한 일군들로 공청일군대렬을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였으며 공청지도기관안에 당조직을 내오고 당조직생활을 통하여 일군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교양하고 그들의 실무수준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공청대렬을 확대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공청에 무산계급청년들만이 아니라 공청조직에 들어올것을 희망하는 각계층 청년들을 다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또한 공청이 다른 청년조직들과의 련합을 실현하고 행동통일을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공청은 조직사상적으로 강화되게 되였으며 청년운동을 발전시키고 청년들을 새 조국건설에로 조직동원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청년동맹은 명칭그대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무산청년들만이 들어갈수 있는 청년조직이였으므로 민주주의기치아래 각계각층의 광범한 청년들을 묶어세우는데서는 일정한 제한성이 있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청년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지만 자기들의 계급적처지로 하여 공청에 들지 못하고있었다. 또한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하여 악선전을 많이 하였기때문에 공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로부터 그리고 아직 사상의식수준이 낮은것으로 하여 응당 공청에 들어야 할 로동청년, 빈농출신의 청년들도 들지 않고 공청에서 하는 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청조직을 가지고서는 광범한 청년들을 묶어세울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청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민주주의기발아래 각계각층 청년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운동의 분렬을 막고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단일한 청년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하여 주체34(1945)년 10월 《애국적청년들은 민주주의기발아래 단결하라!》라는 구호밑에 공청을 주동적으로 해산하고 대중적청년단체인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할데 대한 로선을 내놓으시였다. 《민주청년행진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광범한 청년들을 하나로 결속하기 위하여서는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청조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청조직로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몸소 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를 무어주시고 민청결성준비사업을 빈틈없이 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일군들에게 민청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더욱 다그쳐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민주청년열성자대회를 열고 공청을 민청으로 개편한다는것을 세상에 선포하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청년열성자대회에서 민청의 강령과 규약을 발표하고 애국적민주청년들은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자는 선언서도 내보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날 오랜 시간에 걸쳐 대회에서 채택하게 될 중요문건들의 작성방향과 거기에 담을 내용, 표현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명예회장으로 되여주실것을 원하는 청년일군들의 외람된 청도 기꺼이 받아주시였다.

 

청년일군들의 한결같은 념원에 의하여 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청결성준비위원회 일군들과 각도 공청일군들을 자주 만나시여 대회준비사업정형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으며 민청창립에서 핵심적역할을 하여야 할 공청원들과 공청일군들에게 민청조직로선과 그 정당성을 깊이 인식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멀리 38°선을 넘어온 남조선의 청년일군들도 만나시여 남조선에서도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하고 청년운동을 발전시킬데 대한 강령적교시를 주시였다.

주체34(1945)년 10월 28일~29일사이에 평양에서는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민주청년열성자대회가 열리였다.

대회에는 각 도에서 올라온 공청일군대표들이 참가하였다. 그중에는 종파분자들과 그 졸개들도 있었다.

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청년운동의 발전방향과 당면과업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에 조성된 복잡한 정세를 분석하시고 당면한 우리 혁명의 성격과 임무를 밝히시면서 이로부터 우리 나라 청년운동은 공청이라는 좁은 테두리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민주주의청년운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을 민청으로 개편하는것을 공청의 단순한 해산으로 인식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공청원들은 민주청년동맹에 들어가 거기에서 핵심적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민주청년동맹은 반드시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대표들의 질문을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소탈한 인품에 이끌려 대표들은 잘 리해되지 않는 문제들을 기탄없이 제기하였다.

 

각계각층의 청년들을 망라하는 조직을 내온다면 리해관계가 서로 다른 청년들의 통일단결이 가능하겠는지, 공청을 그대로 두고 민청을 조직해도 되지 않겠는지 대표들은 알고싶어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물론 그중에는 종파분자들의 영향밑에 있는 청년들이 제기하는 색다른 질문도 없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 대해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제기된 모든 질문들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질문이 더 없다는것을 재삼 확인하시고서야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청년대표들은 앞을 다투어 연단에 나와 민청조직로선을 지지하여 토론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종파분자들은 순순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른 일로 자리를 뜨신 틈을 타서 자기의 속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이자들은 대표들의 토론을 가로채고 연단에 나가 청년운동의 《퇴보》니, 《우경화》니 하면서 민청조직로선을 반대하여나섰다.

 

청년대표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자로 하여 하나하나 사리를 따져가며 론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10월 29일 또다시 회의장에 나오시였으며 대회에서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결론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하는것은 우리앞에 제기된 혁명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절실히 필요하다는것을 다시금 천명하시고 민청조직의 목적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하는것은 어느 한두사람의 정치적리익을 위한것이 아니며 모든 조선청년들을 결속하여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줄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성과적으로 건설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민청조직로선을 관철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을 밝혀주신 다음 대회대표들에게 열성자대회정신을 받들고 대중적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대회에서는 공청을 민청으로 개편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할것을 토의결정하고 동맹의 강령과 규약초안을 승인하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다듬어주신 전체 조선청년들에게 보내는 선언서가 채택발표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대회의 결정을 광범한 청년들속에 침투시키기 위하여 각 도들에서 청년열성자들의 회의를 열도록 하시였으며 10월말에는 조선청년들에게 편지를 보내시여 청년들의 투쟁을 적극 고무격려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편지에서 청년들을 민주조선건설의 선봉대, 초석 이라고 불러주시면서 청년들의 사명과 임무를 다시금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청년들에 대한 크나큰 신임과 기대가 담긴 위대한 수령님의 편지를 받아안은 청년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각 도들에서는 공청원들이 중심이 되여 청년열성자회의를 열고 분산된 청년단체들을 단일한 민청에 합류시킬데 대한 구체적대책들을 토의결정하였다.

청년들이 민주주의기발아래 하나로 뭉쳐감에 따라 종파분자들은 더욱 발악하였다.

 

어떤 도에서는 종파분자들이 공청을 민청으로 개편할데 대한 민주청년열성자대회결정을 받아들일 대신 공청을 구태여 해산할 필요가 없고 공청의 보조적조직으로서 일반청년동맹을 조직할것이라고 하면서 외곡된 결정을 채택하는가 하면 어떤 도에서는 종파분자들이 민청조직로선을 청년일군들에게 전달조차 하지 않았으며 청년일군들이 의견을 제기하자 자기 지방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청조직과 기타 청년조직들을 그냥 둘것을 고집하여나섰다. 지어 오기섭을 비롯한 종파분자들은 황해도 해주와 함경남도 함흥에 나가 《서울중앙》의 《지시》라고 하면서 공청을 절대로 해산시키지 말아야 하며 민청은 공청의 《외곽》단체로 되여야 한다고 엉뚱한 소리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1월 26일 평안남도 민주청년단체결성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민청조직로선관철을 방해하는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폭로분쇄하시고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을 지도하여주시였으며 그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4(1945)년말까지 전국의 도, 시, 군, 면들에 민청단체들이 조직되고 공장, 광산, 탄광, 농촌, 어촌 그리고 학교와 기관들에도 민청조직이 꾸려지고 여기에 여러 청년단체들이 통합되게 되였다.

 

주체35(1946)년 1월 16일 드디여 평양에서는 민주청년동맹결성을 위한 북조선민주청년단체대표자회가 전체 인민들과 청년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열렸다.

회의에서는 민청결성사업에 관한 보고가 있은 다음 각 도 대표들의 토론들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단체대표자회에서 《북조선민주청년동맹결성에 즈음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으며 이날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의 결성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이 결성됨으로써 당의 믿음직한 후비대가 마련되게 되였으며 우리 당은 각계각층의 광범한 청년들을 새 조국건설에 힘있게 조직동원할수 있는 단일한 대중적청년조직을 가지게 되였다.

 

일화: 청년들에게 안겨주신 구호, ​ 민주청년열성자대회에서의 질의응답​,

           장군이 아닌 옛 학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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