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1장 가해자측이 내댄 《주패장》


1


어둠이 모든것을 먹어치운 뒤였다. 한낮동안 소음공해로 들볶아대던 도꾜시내가 좀 즘즘해졌다. 번화가로 불리우는 거리들을 따라 늘어선 고층건물들의 꼭대기와 정면에 내걸린 도섭쟁이같은 장식등들만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화광을 번쩍거릴뿐 시내의 공공건물과 주택들의 창문가들에서 바글대던 불빛들은 이미 다 사그라져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도꾜의 북쪽교외 우라와라는 주민지의 나지막한 둔덕아래 《사꾸라》나무숲속에 자리잡은 2층집 창가에서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때는 5월이라 나무가지들에 다닥다닥 매달렸던 색이 희바래진 꽃잎들은 도꾜만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밤바람에 죄다 떨어져 집마당 여기저기로 어지럽게 날려다니고있었다.

그 장면을 반주라도 하는듯 2층의 어느 한 방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쏘나타 17번 《폭풍》을 연주하는 격렬한 피아노소리가 울려나온다. 도꾜의 어느 한 음악학교에 다니는 이 집의 여라문살 나는 소녀가 치는것이였다.

이 집이 바로 일본의 법률계는 물론 일본녀성들속에서 녀성권리의 《수호신》으로 소문난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 공동대표인 녀성법률가 도모이 아사꼬의 자택인 동시에 그의 개인법률사무소이다. 1층에 있는 4개 방은 법률사무소 사무실들이고 2층의 방들은 살림방이다. 현재 이 집에서 아사꼬는 여라문살짜리 귀여운 맏손녀와 둘이 살고있다.

아사꼬의 남편 도모이 니쯔미쯔는 도꾜농공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몇해전인 1995년초 효고현으로 일보러 갔다가 깅끼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그만 잘못되였다.

아사꼬의 아들은 처와 함께 막내자식을 데리고 어머니 아사꼬가 은인으로 여기며 오빠라고 부르는 늙은이 오따니 히로미를 부양하면서 도꾜의 동쪽에 위치한 지바에 가서 생활하고있다.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은 일본의 민간단체이지만 지난 시기 일본녀성들의 인권을 옹호하는데서 국내외적으로 긍정할만 한 일들을 적지 않게 해놓았다. 특히 이 조직의 공동대표인 아사꼬의 활약은 말그대로 눈부시였다.

이날도 아사꼬는 초저녁부터 자기의 법률사무소에 틀고앉아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을 강점한 미국인들이 일본녀성들에게 가한 각종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자료를 종합하여 국제법률가협회에 제출할 준비에 골몰하고있었다.

60대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건강도 그리 좋지 못한 아사꼬이지만 그의 정력은 아직도 대단하다. 한번 잡아쥔 사건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파보는 무서운 질군이다.

그는 근 1 000년전인 가마꾸라막부때부터 시작되여 도꾸가와막부시대에 이르러 더욱 번창했던 일본사회의 공창, 사창제도가 남겨놓은 이러저러한 악페들을 청산하기 위한 사회적운동의 선구자일뿐아니라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일본녀성들의 인격과 인권을 옹호하는 일에 매진할것을 결심하고 법률계에 발을 들여놓은 녀성이다.

그는 몇달전에도 일본에서 창기업이 이미 법적으로 페지되였으나 이러저러한 형태의 밀매음이나 밀창기업들이 여전히 존재하고있다는것을 구체적으로 까밝힌 사실자료들을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에 제출하여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아사꼬가 잠시 맏손녀의 방에서 울려나오는 바다줴흐스까의 피아노곡 《처녀의 기도》의 아름다운 선률에 심취되여있는데 앞상우에 놓인 전화기가 《따릉-》 하고 울었다.

《아, 전홍상이세요? 한밤중에 어떻게 이 늙은이를 다… 혹시 귀여운 정부를 찾는다는것이 번호를 잘못 누른게 아니세요?》

송수화기를 볼에 붙인채 다른 한손으로 코에 걸었던 돋보기를 벗어드는 아사꼬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피곤이 가득 몰렸던 눈가에서 정기가 돌면서 엷은 잔주름이 알릴락말락하게 얽힌 길쑴한 얼굴에 녀성고유의 아릿다운 웃음이 살며시 피여올랐다.

《거참, 전화를 잘못 건것 같기도 하고 똑바로 건것 같기도 한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이 〈부덕쥐〉가 제일 보고싶어하는 〈정부〉에게 면바로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려. 하하하…》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도 걸작이였다. 그가 바로 아사꼬가 《부덕쥐》라고 별명을 붙여놓은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이다.

아사꼬보다 20년이나 손아래인 전홍은 다혈질의 건장한 중년이다.

그들은 국적이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년령상차이도 심하지만 사업상관계로 하여 매우 가깝게 지낸다. 일본사회의 곳곳에 뿌리깊이 박혀있으면서 집요하게 머리를 쳐드는 남존녀비의 사상을 타매하고 반대하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견해의 공통성으로 하여 그들은 한배에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홍이 사회의 어지러운 리면만을 골라가며 렌즈를 들이댄다고 하여 아사꼬가 《부덕쥐》라는 별명을 달아놓았지만 당사자는 그 별명을 한번도 탓해본적이 없다. 인간사회를 표면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하며 그 리면을 중시해야 한다는것, 촬영가의 렌즈는 언제나 인간사회의 리면에서 토프뉴스감을 포착해야 한다는것을 일종의 지론으로 삼고있는 전홍이였기에 오히려 그 별명을 기껍게 받아들이였다.

전홍과 아사꼬사이에 몇마디 인사말이 오간 다음 대화는 계속되였다.

《전홍상, 요새 당신은 내가 제일 저주하는 미국인들과 무슨 거래를 하면서 돌아간다고 하던데…》

《아하, 이거 아사꼬상의 곡해가 좀 지나친것 같습니다. 그사이 미국회도서관에 아무때건 길다란 팔을 쑥쑥 들이밀수 있는 몇몇 미국인들과 교제가 있은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이 〈부덕쥐〉가 일본녀성들의 존엄과 인권을 지켜 평생을 분투하는 아사꼬상에게 굉장한 토프뉴스감을 선물할수 있게 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음을 알려드리는바입니다. 그래서 한밤중이지만 이렇게…》

《?》

아사꼬는 빈정기까지 섞인 전홍의 말을 처음에는 제대로 리해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지가 발발한 《부덕쥐》가 분명 희한한 사건의 내막 같은것을 물어왔음을 인차 짐작하였다.

수화기에서 《부덕쥐》의 밉지 않은 걸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사꼬상, 제 혼자서 토프뉴스감을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밤중의 방문이 실례로 되지 않는다면 이 〈부덕쥐〉가 그것을 가지고 이제 당장…》

아사꼬는 선선히 응낙했다.

《좋아요. 그래주세요. 기다리겠어요.》

요꼬하마를 떠나 도꾜의 거리를 누비며 달리던 전홍의 승용차는 잠시후에 아사꼬의 개인법률사무소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문앞에 회색덧옷을 어깨에 걸친 아사꼬가 마중 나와있었다.

전홍은 자그마한 트렁크를 손에 들고 아사꼬의 안내를 받으며 상담실로 향했다.

귀엽게 생긴 아사꼬의 맏손녀가 커피 두잔을 올려놓은 차반을 들고 상담실로 들어서서 전홍을 향해 무릎을 살짝 굽히며 눈인사를 하였다. 이런 때면 자기 할머니가 중요한 문제를 토의한다는것을 잘 아는 손녀였으므로 매우 어른스럽게 행동하였다.

자리에 마주앉기 전부터 전홍은 득의양양해서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자, 아사꼬상. 이 〈부덕쥐〉가 뭘 물어왔는가를 좀 보시오.》

전홍은 사무용트렁크에서 누렇게 퇴색한 여라문장의 사진을 꺼냈다.

아사꼬는 전홍이 꺼내놓는 사진들에 손을 내뻗쳤다.

《가만, 이 귀한걸 공짜로 보일수 없다는거야 자명한 리치인데 이 〈부덕쥐〉에게 귀잡고 절을 하든 뭐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홍이 아사꼬의 손을 제지하며 히물거린다. 전홍은 보기 드문 엉너리군이다.

규격도 각이하고 퇴색정도도 각이한 사진들을 일별하던 아사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사진들에는 태평양전쟁시기 련합군에 포로된 일본군장교들과 사병들 그리고 전쟁마당으로 끌려다니던 국적불명의 녀성들의 처참한 모습이 담겨져있었는데 대개 《일본병들과 운명을 함께 한 위안부》라는 해제가 달린 사진들이였다. 사진들은 대번에 아사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사진들을 손에 든채 놀라움과 경탄이 뒤섞인 눈길로 전홍을 넘겨다보았다. 이런걸 어데서 물어왔는가 하는 물음이였다.

했으나 전홍은 제 기분대로 《하,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십니까? 아사꼬상의 그 시선에 그러지 않아도 변변치 못한 내 얼굴이 맞창나겠습니다. 허허…》하고 히물거리였다.

그리고는 남달리 《국민옹호정신》이 강한 아사꼬의 기분이 잡쳐질가봐 일본군이 지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기간에 숱한 《위안부》녀성들을 전쟁마당으로 끌고 다닌 호색광들이였다는 표현은 슬쩍 빼버리고 말을 했다.

《원래 사진이란 력사앞에서 가장 솔직하고 가장 엄정한 증견자인즉 이 〈부덕쥐〉가 미국회도서관에서 물어온 이 사진들을 무심히 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일본군이 중국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타고앉았던 1940년대 전반기의 실상이 그대로 살아숨쉬고있습니다.》

아사꼬는 사진들에 시선을 던진채 나직이 말했다.

《그러니 이 사진들이 지금껏 미국회도서관에 소장되여있었다는 사실인데…》

전홍이 아사꼬의 말에 발을 달았다.

《그렇다고 합니다. 이 사진들은 대체로 1944년에 련합군에 소속된 미군보도반이 중국 전서전역(태평양전쟁시기 중국과 먄마가 린접한 전선서부지역)에서 촬영한것들인데 미국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사진들이 미국회도서관에서 더 나올것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런걸 어떻게 다…》

아사꼬는 탄복하였다. 정말 전홍은 부덕쥐이상이였다.

그는 앞상우에 펴놓은 사진들가운데서 4명의 녀성들이 음울한 표정을 짓고있는 시누렇게 퇴색된 사진 한장을 집어들었다.

사진에는 《먄마와 국경을 접한 송산에서 련합군의 포로로 된 4명의 일본군위안부녀성들(1944.9.)》이라는 표제가 달려있었다.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아사꼬의 가슴은 후두두 떨려났다. 포탄에 깊숙이 파헤쳐진 산경사면에서 후렁한 옷을 걸치고 맨발로 몰켜서있는 4명의 《위안부》들의 모습중에서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바위너설에 기댄 녀성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마주할수가 없었다.

사진을 보며 입술을 깨물던 아사꼬가 앞탁을 탕- 하고 내려치고는 벌떡 일어섰다.

《아하, 그랬댔구만! 그 몹쓸 짐승같은 장개석의 군대도 우리 일본녀성들에게 그런 더러운짓을… 날벼락이나 맞아 콱 뒈질 색광이같은것들!… 전홍상, 여길 좀 보세요.》

아사꼬는 사진 왼쪽 펑퍼짐한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성노예녀성들을 쳐다보면서 웃음을 짓고있는 국민당군인의 상통에 손가락을 콱 박았다.

앞탁을 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던 전홍은 아사꼬가 가리키는 사진을 집어들고 들여다보더니 또다시 히물거리였다.

《나이도 적지 않으신분이 꽤 성미가 급하십니다그려. 지나친 흥분은 몸에 해롭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아사꼬상, 제가 보기엔 이 사진속에 우리 중화민족을 모해할 아무런 건덕지도 없는것 같은데… 저명한 법률가선생, 즉흥뒤에는 실수가 따르기 십상이라는걸 명심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전홍의 민족정신도 아사꼬에 짝지지 않았다. 사진속에서 웃고있는 군인이 비록 자기가 타매하는 장개석의 군대였지만 그도 같은 중화민족이라는데로부터 아사꼬가 색광이라고 망탕 락인하는것을 결코 묵인할수 없는 전홍이였다.

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나서 아사꼬앞에 사진을 내밀었다.

《아사꼬상, 상스러운 욕질은 그만하고 이젠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오. 그리고 여길 찬찬히 보십시오.》

아사꼬는 책상빼람에서 확대경을 꺼내여 사진의 맨 아래단에 갖다대고 깨알같이 박혀있는 꼬부랑글자들을 천천히 소리내여 읽었다.

《일본병들은 전멸되였거나 마을에서 쫓겨났다. 중국병이 그 녀성들을 호위하고있다.》

아사꼬는 사진설명문을 다시한번 읽어보고서야 자기의 즉흥적인 감정을 교정하면서 《이러나저러나간에 우리 녀성들이 태평양전쟁때 총포탄이 날아다니는 싸움마당에까지 끌려다니면서 〈위안부〉로 온갖 치욕을…》하고 뒤말을 얼버무리였다.

사진들에 씌여진 설명문만 보아도 반세기나마 영상으로 고착되여있는 그 녀성들이 다름아닌 일본군의 성노리개였다는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아사꼬도 전홍도 사진속의 《위안부》들이 모두 일본녀성이라고 확신하였다.

일본사회는 물론 세인을 경악케 할 토프뉴스감들을 앞에 놓고 밤이 깊도록 전홍과 진지한 의견을 나누던 아사꼬는 이렇게 말했다.

《전홍상, 신속성을 중시하는 자유촬영가인 당신은 이 비극의 영상들을 당장 텔레비죤방송으로 공개하고싶겠지요?》

《글쎄, 그런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녀성인권문제전문가인 아사꼬상의 고견을…》

《그렇다면 아직 영상방영을 좀 미루어주세요. 내 생각에는 가능한껏 사진들이 안고있는 사실들과 영상으로 고착된 인물들의 이름과 생사여부 또는 사후결과까지 정확히 해명한 후에 방영하는것이 더…》

전홍이 순순히 응했다.

《나도 찬성입니다.》

《그럼 래일 오후에 시간을 내여 이 사진들을 가지고 태평양전쟁시기 먄마전선과 중국 송산전역에서 군복무를 한적이 있는 우리 오빠네 집부터 가보는게 어때요?》

전홍이 찬동한다는 뜻으로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까딱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아사꼬의 오빠인 오따니 히로미의 집은 보소반도의 서쪽 도꾜만기슭에 위치한 지바현의 경치좋은 야산기슭에 있었다.

집문을 열고 들어선 아사꼬가 《오빠, 그간 무고하셨나요?》하며 두손을 모아잡고 갑삭 인사를 하였다.

집안에서도 지팽이신세를 지는 히로미는 팔걸이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며 《아니? 아사꼬가 어떻게…》 하고 여간만 반가와하지 않았다.

아사꼬의 뒤를 따라 들어선 전홍을 본 히로미의 반가움은 더해졌다.

《이런, 우리 집에 유명한 영상져널리스트(사진기자)까지 방문온걸 보니 오늘이 혹시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신령님이 내린 날이 아닌가? 허허… 어서들 들어와 앉게. 애들은 다 신쥬꾸에 있는 체육관에 탁구경기를 보러 가고 집에는 나 혼자뿐이네. 그애들은 탁구라면 오금을 못써.》

좀 과묵한편인 히로미는 귀한 손님인 전홍이까지 집에 오자 즐거움에 겨워 말이 많아진것 같다. 70을 넘긴 로인같지 않게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빈집에서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던차라 반가움이 컸고 기쁨도 컸던것이다.

그러나 히로미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문제의 사진들을 펴놓은 앞상을 가운데 놓고 아사꼬와 전홍을 마주한 히로미의 얼굴은 대번에 어두워졌다. 도수높은 안경알속의 주름많은 눈가에서는 가느다란 경련이 일었다. 사진을 쥔 손도 부들부들 떨었다.

아사꼬로부터 그 사진들을 입수하게 된 사연을 전해들은 히로미는 조용히 한숨을 내불더니 《이런것들이 지금도 남아있었는가? 하긴 력사는 인멸되는 법이 없으니까.》 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안을 두었다가 아사꼬는 어릴 때처럼 응석기가 섞인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오빠, 혹시 이 사진들속에 아는 사람들이 없나요? 또는 이 사진들을 촬영한 장소라든가 그러루한것들을…》

《글쎄, 내가 먄마나 중국에서 군복무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반세기도 더 넘었는데 그때 거기서 있었던 일들과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어떻게 쉽게 기억해낼수 있겠니?》

《그럼 이 불행한 녀성들이 일본녀자들이라는건 분명 사실이겠지요?》

히로미가 돋보기너머로 아사꼬를 쳐다보더니 《다 일본기녀들인가 하는건데… 속단할 근거는 없다. 가만, 좀 생각을 더듬어보자꾸나.》라고 하면서 천천히 사진들을 일별하기 시작하였다.

아사꼬와 전홍은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히로미의 일거일동을 놓치지 않았다.

한동안 오랜 추억속에 사진들과 교감을 하던 히로미는 아사꼬로 하여금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쌍욕을 퍼붓게 했던 그 사진을 집어들었다.

그는 돋보기를 꼈다벗었다 하면서 사진을 가까이에서 뜯어보다가는 좀 멀리에서도 바라보군 하였다. 짚이는데가 있는것 같았다.

드디여 히로미는 후들후들 떠는 손가락으로 지친 모습으로 바위에 몸을 기대인 《위안부》녀성을 가리켰다.

《이 녀성은 분명 와까하루야! 와까하루! 분명 와까하루야!》

히로미가 흥분하자 아사꼬도 흥분하고 전홍도 격동되였다.

구멍은 뚫리기 시작하였다. 아사꼬와 전홍이 기대했던바대로 히로미가 사진에 찍혀진 《위안부》들중에서 한명의 녀성을 알아보고 이름까지 기억해냈던것이다.

전홍은 격정을 이기지 못해 두주먹을 공중으로 내흔들며 입안소리로 만세까지 불렀다.

왁작하던 분위기가 좀 사그라지자 아사꼬가 히로미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오빠, 이 와까하루라는 녀성에 대해 아는껏 이야기해주실수 없나요?》

축 처진 어깨를 등받이에 맥없이 내맡긴 히로미는 사진속에 있는 와까하루를 점도록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 녀성은 조선사람이야. 그의 조선식성은 박가였어. 이름은 기억속에서 사라졌어.》하며 눈을 꾹 내리감았다.

아사꼬와 전홍을 더욱 놀라게 한것은 히로미의 다음 말이였다.

《내… 내가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건 사진들에 찍혀진 〈위안부〉들은 거… 거의가 다 조선녀성들이라는거다.》…

이날 히로미를 만나고 돌아가는 승용차안에서 아사꼬와 전홍은 사진문제와 관련한 초기계획을 대담하게 변경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우선 문제의 그 사진을 평양에 있는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 전송하면서 히로미가 《와까하루》라고 확언한 그 조선인《위안부》의 생사여부를 조사하여 결과를 알려달라는 요청서를 함께 띄우기로 하였다. 로회한 법률가인 아사꼬나 거의 20년동안 이러저러한 사회적악페의 근원까지 촬영기렌즈에 어렵지 않게 담아내군 하던 전홍은 《와까하루》에게 문제해명의 실마리가 있다는것을 순간에 포착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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