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3장 남경으로 가는 렬차에서


2


진희는 자기 침대칸으로 들어섰다.

우측 하단침대에는 박순정이 아래턱을 하- 하고 떨군채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80을 눈앞에 둔 고령의 병약한 몸으로 렬차를 타고 수천리길을 간다는것은 사실 상상밖의 일이다.

그르렁- 그르렁- 하는 숨소리는 늙은이의 몸상태가 몹시 나쁘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다가 죽더라도 기어이 이번 3개국합동조사단과 함께 남경과 송산으로 가서 일본호색마귀들의 만고대죄를 까밝히겠다며 이 길에 오른것이다.

박순정에게 약을 먹인다, 주사를 놓는다, 팔다리를 주물러준다 하면서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본 녀의사는 반대켠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반쯤 감고있었다. 충혈된 두눈은 피곤에 몰리워 거불거불하다.

진희는 자리에 누우려던 생각을 털어버리고 녀의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의사선생, 눈을 좀 붙이세요. 그러다간 목적지에도 못 가보고 렬차칸에서 쓰러지고말겠어요. 내가 대신 할머니를 간호하겠으니 어서 자리에 좀 누우세요. 아직 저녁식사시간까진 두어시간 있는데… 어서요. 자, 상단에 올라가 좀 누우세요.》

《아니, 아니. 괜찮아요. 연구사선생이 더 피곤할텐데 어서 올라가세요. 그래야 현지조사를 잘할게 아니나요. 할머니를 돌보는건 나의 본분이예요.》

손수건으로 두눈을 꾹꾹 찍으며 일어선 녀의사는 반대로 진희를 침대우로 떠밀려고 하였다.

한동안 싱갱이끝에 녀의사가 진희의 손에 떠밀리워 침대우로 올라갔다.

《그럼 먼저 한 30분쯤 눈을 붙이겠으니 그사이에 할머니가 깨여나면 거기 탁우에 있는 사포솔을 서너숟가락 입에 떠넣어주세요. 아까 점심때부터 자꾸 목에서 가래가 끓던데… 그리고 15분쯤 지나서 맥박도 좀 재여보고 기록부에…》

진희는 자기를 내려다보는 녀의사에게 고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어요. 맘놓고 어서 푹 쉬세요.》

렬차가 굴간과 철다리를 지날 때마다 뿡- 하고 부드러운 기적을 울리며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그 바람에 객차가 가볍게 흔들리고 베개를 벤 박순정의 머리가 좌우로 왔다갔다한다. 침대옆으로 드리운 앙상한 손이 매달린 연약한 팔이 향방없이 건들거린다.

진희는 제꺽 자리를 옮겨 박순정이 누운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박순정의 팔을 모포속으로 살며시 밀어넣어주고 머리도 바로 잡아주었다.

진희의 측은한 눈길이 호두껍질처럼 쪼글쪼글한 박순정의 얼굴을 한동안 어루쓰다듬었다.

치욕과 수난의 력사가 그대로 오리오리에 얽힌듯 한 주름많은 저 얼굴… 진희의 눈에는 박순정의 그 얼굴이 불쑥 자기 할머니의 얼굴모습으로 바뀌여들었다. 뒤미처 오래전에 자기네 할머니를 난처하게 만들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가 13살때 있은 일이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그는 책상을 붙들고 씨름질을 하다가 머리를 싸쥐였다. 우리 집에는 왜 할아버지가 없을가? 이상한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 집 식구들》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지어오라고 했던것이다.

진희는 《우리 집은 참 행복한 집입니다. 집에는 나를 제일 고와하는 할머니가 계시고…》라는 글줄을 이어가다말고 부엌으로 내려가 할머니의 허리에 매달렸다.

《할머니, 할머니!》

《왜 그러느냐?》

《할머니, 우리 집엔 왜 할아버지가 없나요? 다른 애들의 집에는 다 있던데…》

《으응? 할아버지?…》

찹쌀지짐을 부쳐 부꾸미를 만들던 할머니는 웬 일인지 말을 갑자르다가 머리를 돌렸다.

이때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던 어머니가 무슨 큰일이나 난듯이 황황히 달려나와 진희의 팔을 잡아끌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비누거품이 가득 묻은 손가락으로 진희의 볼을 쿡 찌르며 오금을 박았다.

《이 철딱서니없는것아, 그런걸 할머니에게 물으면 못써!》

《아, 엄만 왜 그러나? 우리 할머닌데… 해해…》

《요건, 어른들이 말하면 들을게지.… 너 정말 혼나봐야 알겠니?》

어머니의 오른손이 허공으로 들리웠다.

《아가가- 엄만 정말 별나다야. 힝-》

진희는 하도 이상해서 부엌을 건너다보았다. 그때 그는 할머니가 저고리고름으로 눈굽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는것을 보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왜 울고 어머니가 왜 그리도 성이 나서 자기를 꾸중했는지 알수 없었다.

퍽 후에야 진희는 그렇게도 자기를 고와하는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라 양할머니라는것을 알았다.

대학졸업반때에는 할머니가 해방전에 일본군성노예로 끌려다녔다는 사실도 죄다 알게 되였다.

진희의 양할머니 김옥녀의 고향은 함경남도 보천면(현재 량강도 보천군)이였다. 그는 가정의 막내딸로 태여났다.

옥녀네 아버지는 원래 남포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청년시절부터 남포진을 지키는 조선군대에 복무했었는데 참위(소위)였다.

일제가 조선을 타고앉아 1907년에 조선군대해산령을 내리자 이에 반발한 아버지는 두 아들을 안해에게 맡기고 홍범도반일의병대에 들어가 참모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후 부대와 함께 함경도의 산간오지를 종횡무진하며 일제침략자들을 치던중 그 유명한 후치령전투에서 그만 다리에 중상을 입고 풍산면 독골이라는데서 1년간 치료를 받게 되였다. 홍범도의병대가 만주로 들어갔다가 연해주로 이동하자 아버지는 부대를 찾아갈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중상당한 다리가 그를 영원히 불구로 만들어놓았던것이다.

그후 그는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혜산을 거쳐 인적이 드문 보천보로 들어갔다. 그다음 사람을 띄워 남포에 있는 가족들을 다 데려오도록 하였다.

이렇게 왕년의 의병대 참모였던 아버지는 보천보의 곤장덕밑에서 부대기를 일구며 생계를 유지하는 화전민이 되였다. 그곳에서 언니 금녀가 출생하고 5년터울로 옥녀가 태여났던것이다.

옥녀가 4살 나던 해였다고 한다.

하루는 면경찰서에서 일본순사 셋이 와서 아버지를 불온분자라고 하면서 다짜고짜로 잡아갔다. 그때 아버지는 놈들에게서 모질게 매를 맞고 그 어혈로 두달을 못 넘기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더는 살아갈 길이 막힌 옥녀네 어머니는 맏딸 금녀를 남포에 있는 외켠친척집으로 보내고 옥녀가 14살 잡히던 해에는 그마저 회령에 있는 삼촌어머니에게로 보냈다.

그런데 옥녀가 회령으로 갔을 때에는 삼촌어머니가 눈을 감은 뒤여서 그곳에 엉치를 붙일 형편이 못되였다. 결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빌어먹기도 하고 남의 집 심부름을 해주면서 얻어먹는 신세가 되였다.

이렇게 1년을 방랑하던 옥녀는 남포시내의 자그마한 피복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는 언니 금녀를 찾아갔다. 그때 옥녀는 녀직공합숙에 며칠 머물러있으면서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사진이랑 찍고 바다구경도 하였다.

《옥녀야, 이젠 어머니랑 오빠랑 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싫어, 난 언니하고 있을래.》

《그럼 못써. 어머니랑 오빠들이랑 지금 널 얼마나 애타게 찾고있겠니. 내 이제 돈많이 벌어가지구 집에 갈게. 응?》

금녀는 그사이 뼈를 깎아 번 돈을 참지에 꼬깃꼬깃 싸서 옥녀의 품에 찔러주었다.

그후 혜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던 옥녀는 차칸에서 낯모를 한 왜놈장교의 눈에 걸려들었다. 그놈의 눈길이 자꾸 자기에게 쏠리는것이 두려워난 그는 어느 한 중간역에서 내리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왜놈순사 두명이 달려들어 옥녀의 뒤덜미를 움켜잡았다. 그 포악한 손탁에서 빠져나올수 없었던 옥녀는 혜산행 렬차로부터 청진행 렬차로 옮겨졌고 이틀만에 청진역에 이르게 되였다. 왜놈순사에게서 쿨쩍거린다고 귀쌈까지 얻어맞으며 역앞에 있는 무슨 창고 비슷한 곳에 끌려가니 거기에는 자기또래의 소녀들이 수십명이나 와있었다. 한결같이 옥녀처럼 강제로 왜놈헌병들이나 순사들에게 홀치기를 당한것이였다. 다음날 옥녀네들은 그곳에서 화물차에 실려 쏘련과 린접한 국경지대로 끌려갔다.

이때로부터 옥녀는 그곳에 있는 일본군수비대병영안의 《위안소》에서 《에이꼬》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온갖 치욕을 다 당하였다.

그때 옥녀의 방으로 제일먼저 뛰여든 왜놈은 그를 처음부터 유심히 노려보던 그 헌병장교였다.

8.15해방을 며칠 앞둔 어느날 깊은 밤 옥녀는 수비대병영 외부공사에 끌려나온 기회에 일본군보초병의 눈을 피해 도망쳤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였다.

해방과 함께 옥녀는 고향 보천보로 갔다. 그런데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반나마 무너지고 돌기와를 얹은 지붕에 잡초들만 무성한 찌그러진 고향집이 그를 기다리고있을줄이야…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옥녀네 두 오빠가 1942년 여름 한날한시에 징병으로 끌려가자 기절하여 쓰러졌던 어머니는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몇년동안 일본군성노예로 온갖 치욕을 다 당하고 어머니마저 잃은 옥녀의 일루의 희망은 남포에 있는 금녀언니를 만나는것이였다. 그러나 온 남포땅을 다 뒤져보아도 언니의 행적을 알길이 없었다. 외켠친척들도 어데로 뿔뿔이 헤쳐졌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두루두루 수소문을 해보니 옥녀가 남포로 왔다간 이듬해에 피복공장에 있던 금녀는 어느 한 양복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는데 그후 소식을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

뿡- 하는 기적소리에 진희는 그만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진희가 알고있는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사는 국제공개청문회참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할머니를 바래워주던 그날 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일부였다.

진희는 손목시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25분이 지나갔구나. 맥박을 재여보라고 했지?)

진희는 박순정의 뼈만 남은 팔을 자기 무릎우에 살그머니 올려놓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퍼런 피줄이 얼기설기한 손목 안쪽부위에 갖다댔다. 분당 109회였다. 보통때보다 맥박수는 높아졌어도 1시간 30분전에 녀의사가 기록해놓은것과 비슷했다. 마음이 좀 놓이였다.

진희는 박순정의 팔을 다시 백포밑으로 슬며시 밀어넣었다. 그러느라니 불쑥 할머니가 림종의 시기에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에도 진희가 1시간에 한번씩 할머니의 맥박과 체온을 재여보았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진희야, 그만둬라. 다된 육신에 맥박이나 체온 같은걸 재봐서 뭘 하겠냐. 그만둬라. 정말 이제는 저세상에 가야 할 때가 왔나부다.》

그러면 진희는 눈물이 가랑가랑해가지고 떠듬거리였다.

《야, 할…머닌 왜…자꾸 그런 말씀만…》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아, 급살을 맞아뒈질 그 일본쪽발이들한테서 사죄를 받아내지 못하고 가는게 한이로구나. 그걸 생각하면 땅속에 들어가서도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하구나.

진희야, 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셔라. 어려서부터 부모친척 다 잃고 고생도 많았던 네 애비에미가 아니냐.》

그날 진희네 할머니는 정신이 혼몽해지는 속에서 용케도 기억을 더듬었다.

《…3년간의 전쟁으로 나라는 엉망이 되였지. 일제가 총칼로 마구 헤집어놓은 상처가 해방후 5년간에 겨우 아물라 할 때 또 다른 외래침략자들이 폭탄을 마구 던지며 달려들었으니까. …

우리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너무도 피나는 대가를 치르었다. 도시건 농촌이건 죄다 재더미로 되였단다. 보이는건 마사진것뿐이고 밟히는건 재더미뿐이였지. …》

말마디들에 추억을 담던 할머니는 진희에게 이런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정전이 된지 한달이 지난 때였다.

애당초 가정을 이루지 않고 홀몸으로 살던 옥녀는 정전후부터 평양시교외 순안근방에서 토굴집생활을 하고있었다. 혼자 사는데다가 전쟁까지 겪다나니 가산이란 쭈그러진 남비 한개와 이빠진 사발 몇개, 숟가락 하나, 불타다 남은 이불 한채가 전부였다.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궂은날이였다.

옥녀는 혹시 금녀언니나 오빠들을 만날수 있지 않을가 하는 미련을 가지고 남포로 갔다가 순안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는 페허로 된 평양시내를 지나다가 비를 그으려고 보통강기슭의 어느 다리아래로 들어섰다.

그가 다리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는데 뒤쪽에서 《으응-》 하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다리목아래 어둑시근한 제일 안쪽 좀 마른 땅이 있는 움푹진 곳에서 웬 아이가 가마니짝우에 새우처럼 몸을 꼬부라뜨린채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예닐곱살 나는 사내애였다.

《얘야, 너 어디 아프니?》

옥녀가 다가가 그애의 어깨를 흔들었다.

《응- 응- 엄마- 엄마-》

아이의 머리는 불덩이같았다. 이발을 떡떡 맞쪼으며 팔다리를 와들와들 떠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옥녀는 무작정 아이를 둘쳐업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물어 병원을 찾아갔다.

아이는 영양실조에 학질까지 겹치여 매우 위급한 상태였다. 요행 더 늦지 않은탓에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너무 몸이 허약하여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고 음식을 넘겨도 전혀 소화를 시키지 못하였다.

그 아이는 원래 강원도의 어느 한 농촌마을에서 살았는데 전쟁통에 부모를 잃게 되자 평양에 산다는 먼 친척을 찾아 올라왔다가 그만 중병을 만난것이였다.

옥녀는 병원에서 한 20일가량 아이곁에서 간호를 해주던 끝에 그 아이의 어머니가 되였다. 옥녀가 자기의 피까지 뽑아넣어주면서 살려낸 그 아이가 바로 진희의 아버지 김형삼이였다.

그후 옥녀는 형삼이보다 4살아래인 소녀애를 육아원에서 데려다 키웠는데 그가 후날 진희의 어머니로 되였던것이다.…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이국의 풍경은 이채로웠지만 그것이 전혀 망막에 안겨오지 않는듯 진희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생각은 바닥없이 깊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리워 손목시계의 바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귀에 익을대로 익은 렬차의 바퀴소리만 귀전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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