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4장 번민


4


밤이 깊었건만 아사꼬는 잠자리에 들념을 못했다.

저녁식사후 조, 중, 일 조사단 단장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는 이번 합동조사사업의 편리를 위해 조사단들사이에 여러가지 문건과 자료들이 교환되였다.

조선측에서 아사꼬에게 넘겨준 자료들가운데는 《일본군성노예제는 정부의 관여하에 군부가 조직적으로 감행한 20세기 특대형범죄행위》라는 두툼한 문건이 있었는데 좀전까지 그것을 본 아사꼬는 가슴이 두근거려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조선측 조사단 단장 황정식은 그 문건을 아사꼬에게 넘겨주며 이렇게 말했었다.

《아사꼬선생, 이 자료를 심중히 보아주기를 바랍니다. 김진희연구사가 조사작성한 이 문건자료에는 우리측 조사단이 이번 3개국 합동조사에 림하는 태도와 립장이 다 밝혀져있습니다.》

김진희가 조사작성했다는 자료는 아사꼬가 내심 주장하는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민간업자책임론》과는 완전히 상반되는것으로서 일본정부와 군부의 책임론에 초점을 박은, 력사적인 반증까지 빈틈없이 안받침된 일종의 론고장이였다.

아사꼬는 탁우에 놓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김진희 제출》이라고 박아쓴 문건자료를 다시 손에 집어들었다. 탁상등앞에 마주앉은 그는 김진희의 초상을 그려보며 자료철뚜껑을 펼쳤다. 금시 귀전에 김진희의 또렷또렷한 목소리가 울리는듯 하였다.

《…

우리 조선반도의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수치와 괴로움을 억누르고 일본군의 추악한 성노예범죄를 고발해나선지도 어언 10년이 되였다. 지나온 10년은 억울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치욕스러워 스스로 자기자신을 매장해버리고싶은 고통과 울분속에 살아온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력사와 국제사회의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여 투쟁해온 10년, 일본의 파렴치한 책임회피에 분노해온 10년이였다.

인류의 수치이고 인류사에 두번다시 있어서는 절대로 안될 일본군의 성노예행위는 철두철미 일본정부의 관여하에 군부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벌린 반인륜적대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현재까지도 지난 시기에 감행한 범죄적인 군성노예행위를 은페하거나 그 책임을 추업에 종사하던 민간업자들에게 밀어버리려고 교활하게 획책하고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우익적인 인물들과 정부의 관료, 정객들까지도 일본군의 성노예행위를 매춘업자들의 개별행위로, 매음녀들의 돈벌이행위로 묘사하면서 성노예들의 련행에서는 강제성이 없었다고 우겨왔다.

그러나 력사는 일본정부의 이러한 사실부정적태도에 관계없이 일본군성노예제의 진상을 낱낱이 까밝히고있다.

1990년대초 과거 일본정부와 군부가 성노예녀성들의 련행, 수송, 〈위안소〉의 설치운영에 직접 또는 깊숙이 관여하였다는 당시의 군문서들과 회고담, 일기, 심문조서 등 여러가지 기록들이 일본방위청(당시) 방위연구소 도서실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였다. 이에 대해서는 1992년 1월 〈아사히신붕〉이 소개하였다. 1992년 12월 같은 신문 조간지도 1932년 9월부터 1933년 2월까지 일본군 혼성 제14려단사령부가 작성한 〈위생순보〉 34편과 함께 〈예창기, 작부 건강진단요령〉(〈위안부건강진단법〉)이라는 공문서가 발견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를 계기로 일본의 많은 신문들에서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관련한 정부와 군부의 공문서발견소식을 련이어 공개보도하였다.

그후 외무성, 내무성을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들의 문서고들과 미국회도서관, 력사기록보관소들에서도 일본군의 성노예행위가 정부의 관여하에 군부가 직접 조직집행하여 벌린 범죄행위였다는것을 립증하는 문서들과 사진들이 련이어 발굴되였다.

이미 1991년 8월 남조선의 일본군성노예생존자 김학순녀성이 용단을 내려 자기의 피해사실을 공개하면서 도꾜지방법원에 배상을 요구하자 뒤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세계 각국에 생존하고있던 피해자녀성들이 수치감으로 하여 수십년세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피해사실들과 목격자료들을 련속 공개하였다. 지어 성노예행위에 관여한적이 있는 일본군복무자들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공개증언에 나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92년에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살고있던 리경생녀성이 자기의 일본군성노예피해를 고발해나섰다. 그는 치욕스러운 일본군성노예생활에 대하여 스스로 공개하자니 부끄럽고 주저되였지만 자신을 바쳐서라도 파렴치한 일본정부의 주장을 부셔버리고 후대들에게 피눈물의 력사를 똑바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개증언에 나섰다고 한다. 이와 꼭같은 심정에서 시작된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신고는 오늘까지도 계속되고있으며 그 수는 총 200여명에 이르렀다. 그중 40여명의 피해자들이 자기의 피해체험과정과 자기 얼굴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일본당국은 이러한 명명백백한 사실앞에서 더는 발뺌을 할수 없게되자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군성노예행위가 정부의 묵인 또는 관여하에 군부가 직접 벌린 행위였다는것을 뒤늦게나마 인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소극적인 범위에서 〈조사사업〉을 진행하는척 하면서 모든것을 굼땠다.

그후 세계 여러 피해국가들과 유엔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국제인도주의단체들이 이에 대한 조사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오늘과 같이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감행한 성노예범죄행위가 다소나마 밝혀지게 되였다.

일본침략군이 일으킨 상해사변과 중국 동북지방에 대한 침략으로부터 시작하여 중일전쟁 초시기까지는 군의 직접적인 관할통제밑에 매춘업자들이 운영하는 〈위안소〉들이 출현하여 전개되였고 중일전쟁 중반기부터 태평양전쟁기간에는 일본군이 직접 녀성들을 랍치, 련행해오고 〈위안소〉를 설치운영한것으로 하여 이것은 군주도형의 성노예행위라고밖에 달리 설명할수 없다.

일본군성노예제가 정부의 관여하에 군부가 직접적으로 고안해냈다는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조선의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풍곡동에서 발견된 풍골〈위안소〉는 라남주둔 제19사단장과 헌병대장, 도지사의 모의하에 1930년대에 설치된것이였으며 청진시 청암구역 방진동에서 확인된 〈풍해루〉와 〈은월루〉라는 두개의 군〈위안소〉도 방진일대에 주둔했던 일본해군 부대장과 헌병분견대장의 지시에 의해 설치운영된것이다.

일본군이 9.18사변으로부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기간에 처음으로 설치한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상해 륙해군〈위안소〉도 1932년 3월 상해파견군 부참모장이였던 오까무라가 참모에게 지시하여 설치한것이다.

일본군부는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강점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출동부대들이 저저마다 〈위안소〉들을 설치운영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편향들이 나타나게 되자 그를 수습하기 위하여 〈위안소〉설치, 운영, 〈위안부〉모집, 관리운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군부가 하달하는 지시에 따라 진행하라는 통지문을 띄웠다.

대표적으로 당시 륙군대신의 위임에 따라 륙군성 병무과장과 륙군성 차관의 결재인장까지 찍어 1938년 3월에 하달한 〈군위안소 종업원 등 모집에 관한 건〉이라는 문건을 들수가 있다.

일본륙군성은 1940년 9월 〈위안〉시설에 주목하는것이 필요하다, 〈성적위안〉이 군인들에게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성적위안〉이 군인들의 〈사기진흥〉, 〈군기유지〉, 〈범죄 및 성병방지〉 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통보를 출정부대들에 하달하였다.

태평양전쟁시기에는 군부의 엄격한 감독통제밑에 군부대들이 〈위안소〉들을 직접 설치운영하는 체계로 넘어갔다.

일제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먄마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태평양과 인디아양의 많은 섬들을 강점함으로써 전선과 강점지역이 넓어졌으며 병력수도 급격히 증가되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부는 〈위안소〉와 성노예들을 늘여야 한다는 미명하에 군〈위안〉행위를 군부가 직접 틀어쥐고 영구적으로 벌릴 조치까지 취하였다.

그것이 바로 1942년 3월 〈과장회보〉에 발표된 국민들이 헌납하는 〈국방헌금〉으로 하사관이하를 위한 영구적〈위안〉시설을 설치할데 대한 륙군성 은상과 과장의 제안이다.

1942년 9월 륙군성 〈과장회보〉에서 〈장교이하의 위안소시설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고 하면서 그 결과보고를 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설치된 〈위안소〉는 화북에 100개, 화중에 140개, 화남에 40개, 남방지역에 100개, 남해에 10개, 화태(남부싸할린)에 10개 도합 400여개소에 이르렀다.

태평양전쟁개시직후인 1942년 3월 일제는 왜왕 히로히또의 〈칙령 300호〉를 개정하여 〈위안소〉관계업무를 후생업무에 포함시키도록 하였으며 그해 4월부터 륙군성은 인사국의 은상과(인사국에 속한 과의 하나로서 왜왕의 명의로 된 상을 수여하는 부서)를 성노예들의 련행, 수송, 〈위안소〉의 관리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로 지정하였다.

결과 일본군부에서는 군상층으로부터 산하부대들에 이르기까지 군〈위안소〉관리운영체계가 세워지고 통일적인 지휘관리하에 군성노예행위가 감행되게 되였다.

…〈위안〉관계사업에 직접 관여한 정부기관은 외무성, 내무성, 현지령사관들, 조선총독부이다.

…이상의 자료들은 일본군부가 〈위안소〉의 설치와 성노예들의 징발, 수송, 〈위안소〉의 관리운영 등에 직접 관여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일본군성노예들중에서 절대다수는 조선녀성들이였다.

이에 대하여서는 일본정부의 고위인물들까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993년 당시 일본내각의 관방장관 고노는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관련한 담화에서 〈전지로 이송된 위안부출산지에 대하여 말한다면… 조선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당시 조선반도는 우리 나라(일본)의 통제하에 있었으므로 위안부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거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아 녀성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시행되였다.〉라고 말하였다.

적게 잡아서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녀성들에 대한 성노예징발은 총칼의 위협을 동반한 강제랍치와 유괴를 기본방식으로 하여 진행되였다.

지금까지 여러 문서들과 피해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조선녀성들이 일본군성노예로 끌려다닌 곳으로 확증된 지역만 해도 조선관내는 물론 중국에서 베이징, 상해, 남경, 광동, 무한, 장춘, 할빈, 홍콩, 마카오 등 50여개의 지역과 일본에서 오끼나와, 오사까, 히로시마, 구마모또, 아오모리, 시즈오까, 와까야마, 나고야, 혹가이도 등 10여개 지역, 인도네시아에서 쑤마떼라, 쑤라바야, 쟈와섬, 할마에라, 먄마의 양곤, 라시오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싸할린, 몽골, 캄보쟈, 필리핀, 파푸아뉴기니아, 꾸릴렬도, 싸이빤섬, 괌도, 니코바르 등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고있다.

…일제는 수많은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끌어다가 생식능력을 소멸함으로써 장차 조선민족의 혈통을 끊어놓으려고 하였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한 녀성문제전문가는 〈일본처녀들을 위안부로 전장에 내보내지 않은것은 어째서인가. 그처럼 횡포하기 그지없는 일본군이 일본처녀들의 인권을 고려했기때문인가. 그렇지 않을것이다. 그들 군국주의지배자들은 일본처녀들의 생식기관이 못쓰게 되는것을 두려워했기때문이다. 위안부를 시키면 녀성의 생식력이 쇠퇴해진다고 계산하고있었던것이다. 이런 계산에 기초하여 생각해낸것이 식민지에서 처녀들을 끌어오자는것이였다. 이렇게 하면 당면하게 성병을 막을수 있을뿐아니라 식민지민족의 민족성을 앗아내기도 매우 좋다는 품먹은 음모적타산도 작용했을것이다. 바로 여기에 민족차별이 있고 식민지지배의 본질이 있다.〉라고 잡지 〈세까이〉에 자기의 견해를 밝혔다.…

만일 태평양전쟁이 10년이상 지속되였더라면 조선의 젊은 녀성들은 거의다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을것인데 그렇게 되면 조선민족의 존재자체가 위기에 처했으리라는것은 명백한 리치이다.

…제반 사실은 일본군성노예제가 정부의 적극적인 관여하에 군부가 조직적으로 감행한 20세기 특대형범죄행위라는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아사꼬는 눈앞이 아찔했다. 자기가 마치 피고석에 앉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자료는 바늘 들어갈 짬도 없이 완벽하였다.

김진희, 김진희… 젊은 나이에 너무도 원숙하다. 이 많은 자료들을 언제… 정말 지독하게 파고들었구나!

아사꼬는 30대밖에 되지 않는 김진희앞에 일본에서 한생을 살아온 60대의 법률가, 녀성인권문제전문가인 자기로서도 긴장감을 품게 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사꼬는 김진희라는 녀성을 다는 모르고있었다. 그의 가슴속에, 아니 조선의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쌓이고쌓인 반일감정이 얼마나 격렬하며 할머니대의 조선녀성들이 일본호색광들에게서 당한 그 치욕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겠다는 각오가 얼마나 서슬푸른것인지를 다는 모르고있었다.

문건자료철을 덮은 아사꼬는 머리를 싸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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