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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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꼬의 마음은 좀 풀어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몹시 긴장해있던 마음의 탕개를 풀어준 조선측 조사단 단장 황정식이 고마왔다.

금방 뻐스에 오르기 전까지 합동조사단은 호텔에서 원탁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는 이번 3개국 합동조사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몇가지 조항을 제기하고 충분한 토의를 거친 후 그것을 현지조사의 원칙으로 합의하였다.

모임끝에 황정식은 아사꼬를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 나는 물론 여기에 온 사람들은 누구나 일본군국주의를 증오하지만 선생과 같은 일본인민들은 절대로 같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금도 위축되지 말고 이번 조사사업에서 관록있는 녀성법률가로서 성과를 올리기 바랍니다. 자, 이번에 우리 함께 손을 잡고 현지편답을 잘해봅시다.》

가뜩이나 김진희연구사가 제출한 문건자료를 두세번 보면서 밤새 속이 켕겨 돌아가던 아사꼬로서는 황정식의 진심어린 그 말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아사꼬의 귀전에서는 불쑥 전날 저녁 도꾜에서 전화를 걸어온 이찌로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일으켰다.

《아사꼬상, 우리 정부와 국민이 당신을 믿고있다는것을 언제나 명심하시오.… 어련하겠소만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묻어버려야 할것과 부각시켜야 할것을 잘 갈라보면서 일을 용의주도하게 처리하여 월계관을 차지하시오.…》

아사꼬는 무뚝뚝한것 같은 황정식의 말에서 진심을 들었다면 더없이 《상냥스러운》 이찌로의 말에서는 강박감을 느꼈다. 이찌로를 생각할수록 아사꼬는 기분이 나빴다.

그는 뻐스의 왼켠창옆에 앉아 흘러가는 거리풍경에 시선을 준채 입을 다물고있는 황정식을 밉지 않은 눈길로 넘겨다보았다.

약간 도드라져나온 이마, 어글어글한 두눈, 인정미가 감추어진 눈꼬리, 강단이 느껴지는 구리빛의 갱핏한 볼, 쩍 버그러진 어깨… 년령상으로 보면 동생벌 되지만 진중하면서도 대범한 그앞에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일본을 떠날 때 가슴 한구석에서 머리를 쳐들던 불안감, 이제 대상할 모든 사람들의 눈에 죄많은 일본인으로 부각될 자신이라는데로부터 어쩔수 없게 들쓰게 되던 그 속박감마저 다소 덜어진것 같아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러나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왔다는 녀의사의 부축을 받으며 쇠진해진 몸을 잔뜩 옹크리고 앞쪽좌석에 앉은 박순정의 주름깊은 옆모습에 시선이 가닿는 순간 가슴이 섬찍해지는 아사꼬였다.

뻐스는 남경시의 중산로가 끝나는 갈림길목에 멎어섰다. 일행은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킨수이로》까지 가면서 현지조사를 하자고 합의했던것이다.

박순정을 앞세운 합동조사단은 태평로를 건너섰다. 정식 조사사업은 이제부터였다.

아사꼬는 김진희와 나란히 박순정의 뒤에 바투 붙어섰다. 박순정의 말과 행동을 록음기와 렌즈에 담기 위해서였다.

촬영기를 멘 전홍은 합동조사단행렬의 앞뒤를 오가며 쉼없이 렌즈를 휘둘러댄다. 박순정의 주름깊은 얼굴가까이에 갖다대기도 한다.

앞만 쳐다보면서 녀의사의 팔에 의지하여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던 박순정은 걸음을 멈추고 퇴색한 2층, 3층짜리 낡은 건물들로 한개 구획을 이룬 거리쪽을 여겨보기 시작하였다. 거기가 바로 그가 18살 때 끌려가 처음으로 치욕을 당하던 《킨수이로》가 있는 리제항 18호구역이였다.

박순정이 드디여 입을 열었다.

《여기 어디에 기차길이 있었는데… 그리구 저기바루엔 큰 늪이 있었구…》

중국측 조사단 단장인 남경사범대학의 경증성이라는 볼이 퉁투무레한 로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꺽 설명을 달았다. 그는 남경대학살연구쎈터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옳습니다. 여기 남경에 장강대교가 일어서기 전까지는 저쪽 장강기슭에 있던 자그마한 역에서 중산로와 태평로를 꿰지르는 철길이 이렇게 서남방향으로 쭉 놓여있었고 그 철길부근에 큰 못도 있었습니다.

1958년경에 못을 다 메꿔버리고 그 자리에 지금 저기 보이는 중학교를 들여앉혔지요.》

아사꼬는 박순정의 기억력이 젊은이들을 찜쪄먹을 정도라고 생각하였다. 지난해 그는 평양에서 박순정으로부터 《일본헌병들에게 잡혀 처음 가닿은데가 남경이라는 큰 도회지였소. 그곳에 있는 〈킨수이로〉라고 부르던 〈위안소〉가까이에 철길이 있었는데 그 짐승같은 일본군대로부터 잠시 해방되여 방안에 혼자 있을적에는 빽- 하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군 했소. 그럴 때마다 저 기차를 타면 집에 갈수 있으련만 하는 생각에 눈물을 쏟군 했다오.》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던것이다.

조사단일행은 박순정을 둘러싸고 천천히 《킨수이로》쪽으로 이동하였다. 박순정은 걸음을 옮기면서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조사단성원들의 물음에 생각나는대로 답변을 주었다. 합동조사는 순풍에 돛단듯 했다.

그런데 조사단일행이 길다란 3층짜리 건물아래에 있는 큰 철문앞에 이르렀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벌그스름한 광명단칠을 한 그 철문은 일제시기에 리제항 18호구역으로 들어가는 외통로입구였다고 한다. 박순정은 그 철문을 보자 우묵한 두눈에 흰자위를 가득 채우더니 《으응-》 하며 황황히 뒤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아니?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할머니, 할머니! 진정하세요!-》

녀의사와 김진희가 놀라서 소리치면서 박순정을 부축하였다.

아사꼬는 영문을 몰라 뻥뻥해졌다.

박순정은 손을 내저으며 고함을 쳤다.

《아니, 아니, 난 안 들어가. 안 들어가!- 날… 날 고향으로 데려다주오. 어…서… 고…고…고향…으로!-》

치마자락을 깔고 포석우에 퍼더버리고 앉은 박순정은 마치 얼이 다 빠져나간 사람같았다. 평생 고뇌에 시달리던 그의 뇌수가 과거와 현재를 마구 혼탕치기 시작한것이다.

녀의사와 김진희가 제때에 박순정을 곁에서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생길번 했다.

합동조사단일행은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거리로 오가던 중국사람들은 술렁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황정식을 비롯한 몇명의 조선측 조사단성원들이 급히 박순정에게로 달려가 그를 부축하여 뻐스가 서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철문앞까지 갔던 아사꼬와 전홍 그리고 다른 조사단성원들은 뜻밖에 벌어진 일을 두고 혀를 찼다. 누구나 박순정의 그 심중이 가슴에 마쳐와 동정을 금치 못했다.

옛 《위안소》건물로 들어가는 그 무시무시한 외통로입구가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도 조금도 변치 않은 그날의 모습으로 박순정의 앞으로 덮쳐들었으니 그가 얼마나 기겁을 했겠는가.

그 벌건 철문은 박순정에게 있어서 정조뿐아니라 젊은 시절의 육체까지도 통채로 삼켜버린 《악마의 입》이였고 자기를 또다시 치욕스러운 과거에로 끌어가려고 노려보는 피발이 선 《괴물의 네모진눈》이였다.

그 철문을 경계로 추녀를 맞댄, 옛 시대 건물이 빽빽이 들어앉은 안쪽에서는 일본군성노예제도가 활개치던 저주로운 세월이 숨진채로 웅크리고있었다. 음침한 그 골목의 어느 창가에서 금시 《빠가야로!》 하는 음욕에 달이 뜬 앙칼진 소리가 튕겨나올것만 같았다.

그러니 가뜩이나 심리가 편안치 않은 박순정이 어떻게 그 철문안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을수 있었으며 졸아들대로 졸아든 그의 심장이 어떻게 그런 충격을 감당해낼수 있었겠는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자는 심산으로 박순정의 뒤를 쫓다가 뜻밖의 일을 목격한 아사꼬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


뻐스안에서 진정제주사를 맞고 한동안 잠든듯 하던 박순정이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리제항 18호구역으로 향했다.

내가 왜 자꾸 이러는가? 이러지 말자고 곱씹어 마음을 먹고도… 가야 한다. 가서 그 일본쪽발이들은 절대로 인간이 아니라 극악한 야만들이였다는것을 증명해야 한다. 가자.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순정은 뻐스의자에서 일어서려고 모지름을 썼다.

녀의사가 놀라서 만류하였다.

《할머니, 아직은 안돼요. 좀더 안정을 해야 합니다.》

얼굴이 컴컴해진 황정식이 다가와 박순정의 두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좀 어떠하십니까?》

박순정은 황정식을 마주하자 전에 없던 힘과 용기가 솟는것을 느꼈다.

《황선생, 걱정마오. 내 이제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거요. 자, 어서 갑시다.》

박순정은 정말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 녀의사의 부축임도 없이 제발로 뻐스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일행을 달고 주저없이 걸음을 옮겨 옛 《위안소》로 통하는 그 철문을 넘어섰다.

그 시각부터 박순정이 내짚는 한발자국한발자국은 그저 수치와 공포로 주저하던 성노예제도의 피해자, 수난자의 발걸음만이 아니였다. 인류를 경악시킨 그러한 성노예제를 창안해낸 일본정부와 그 주범들을 력사의 심판장으로 끌어내는 증견자, 기소자의 발걸음이였다.

박순정을 둘러싼 조사단일행은 오불꼬불한 골목길을 꺾어들며 《킨수이로》라는 옛 간판이 걸려있는 2층짜리 벽돌양옥집 마당가에 들어섰다.

주변에는 그와 꼭같은 10여동의 건물들이 추녀를 맞대고있었다. 그 건물들이 바로 일본군이 남경을 강점한 후 시내 곳곳에 설치한 40여개의 《위안소》중의 하나인 《동문위안소》였다.(그 건물의 주변에는 주민들의 살림집이 없는데 이 《동문위안소》가 리제항에 위치했다고 하여 리제항《위안소》로도 통용되고있었다.)

박순정을 실성하게 만들었던 그 철문으로부터 리제항《위안소》의 2호동건물인 《킨수이로》마당까지는 불과 60여메터정도밖에 안되였다. 결국 박순정은 그 한메터한메터의 거리를 갈적마다 1년씩 세월을 거스르며 악몽속에 흘러간 60년의 력사를 되짚어간셈이다.

《킨수이로》마당가에서 한동안 숨소리만 높이던 박순정이 입을 열었다.

《바로 이 집이요!》

천만마디의 말을 다 대신하는 박순정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고 원한에 사무쳐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더없이 저력이 있었다.

박순정의 그 목소리에 오랜 세월 일본산 면사포를 들쓰고 력사의 음달에 박혀있던 일본군《위안소》가 세계무대우에 흉물스러운 제 모습을 드러내놓기 시작하였으며 성노예제도의 존재를 부인하려들던 일본정부의 입에 자갈이 물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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