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2


박순정이 끌려가있던 리제항《위안소》 2호동건물인 《킨수이로》의 1층에는 14개의 방이, 2층에는 16개의 방이 있었다. 매 방은 려관처럼 복도를 가운데 두고 량쪽으로 갈라져있었다. 방들의 출입문은 서로 마주하고있었다.

중국측의 경증성교수가 반백의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주해를 달았다.

《이 건물은 원래 양보경이라는 중국인이 경영하던 려관이였습니다. 그러던것을 1937년 12월 남경을 강점한 일본군이 강제몰수하여 저들의 〈위안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이 〈킨수이로〉가 일본군이 직접 경영하던 〈위안소〉였다는 말씀입니까?》

신경을 도사리고있던 아사꼬의 물음이였다. 얼추 듣기에는 범상한 질문같았으나 마디마디가 상당히 날이 선 어조였다.

그의 내심을 들여다본 경증성은 느슨한 웃음을 띠웠다.

《이제 그 사실을 제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겁니다.》

《그걸 그렇게 쉽게 확신할수 있을가요?》

아사꼬는 속에 구렝이가 들어앉은 머리 허연 중국인교수가 힘줄까지 드러난 야마도민족의 상처를 너무도 깊이 헤집는다는 생각에 이렇게 꼬집어 반발했다.

순간에 분위기는 팽팽해졌다. 이제 경증성이 한마디만 더 하면 아사꼬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쏟아져나올지 모른다.

이때 곁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있던 중국의 일본군성노예쎈터의 소자영교수가 로숙한 솜씨로 분위기를 해소시켰다.

《허, 이러다간 아사꼬선생의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오겠습니다. 경선생,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아사꼬선생스스로가 결론을 찾게 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담은 경증성이 《이거 내가 처음부터 〈감정을 앞세우지 말자.〉는 조사준칙을 어기는것이 아닌가?》 하더니 그럼 요약하여 몇마디만 더 하겠다고 하면서 자기의 말에 계속 발을 달아나갔다.

《…일본군은 상해사변 특히 남경강점을 계기로 일본군인들속에서 강간사건이 다발하자 일본군부에서는 군속전용의 〈위안소〉들을 많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점령지구에서 발생하는 군인들의 성병을 방지하며 군사기밀루설현상도 없앤다는 등등이 일본군부가 주장한… 특수한 형태의 군〈위안소〉설립의 취지였다고 봅니다. 거기에다 그무렵인 1938년 4월에 공포된 〈국가총동원법〉에 발동이 걸렸으니 일본이 타고앉은 조선이나 중국 같은데서 성노예들을 징발하는 일은 사실 강가에서 자갈줏기나 같았지요.》

경증성의 말은 유순했지만 조사단성원들의 상상력에 불을 달기에는 충분했다. 모가 나거나 무리한것도 없었다. 죄다 력사적사실이였다.

경증성이 개괄한 내용은 사실 남경에서 진행하는 일본군의 성노예범죄조사라는 《강》을 건느는 3개국합동조사단 성원들 누구나가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징검돌》이기도 하였다.

아사꼬도 이러한 력사적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하고 넘어가야지 별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쥐고 온 《주패장》도 있고 또 이미《칼》을 빼들고 경증성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뗀 이상 마무리를 하자면 두덜거리기라도 해야 하였다.

그래서 갑자르던 아사꼬는 제자리돌이를 하는 고장난 축음기라도 된듯이 처음에 물었던 말을 곱씹었다.

《경선생, 그러니 저… 이 〈킨수이로〉가 일본군이 직접 경영한 〈위안소〉였단 말입니까?》

《그건 그때의 피해자이며 체험자인 박순정로인이 더 잘 알것입니다.》

경증성은 로숙한 력사가였다.

조사단성원들이 박순정에게로 몰켜들었다. 렌즈를 돌려댄 촬영기들이 가동을 시작하고 마이크들이 박순정의 입가로 다가들었다.

통역원처녀가 박순정에게 아사꼬의 물음을 설명해주면서 우선 《킨수이로》의 주인이 누구였는가를 말하라고 하였다.

통역원처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박순정이 손을 홱 내저었다.

《〈킨수이로〉의 주인? 그깐 놈들에 대해선 입에 올리기도 싫소. 그것들은 1층 요 앞방에서 살고있었는데 조선말과 중국말을 곧잘 번지는 사복쟁이 일본족속들이였지. 부부가 다 돈벌이에 환장한 천하에 못된 놈들이였어. 맨날 나같이 세상물정도 모르는 순진한 체네들을 일본병정들에게 섬겨바치는 놀음을 벌려놓구선 그게 〈경영〉이라고 하면서 곽지로 돈을 긁어모았으니까.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고 가슴이 터져와 견딜수가 없네. 천하에 못된 그런것들이 해방후 제명을 다 살았을라구…》

증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덜퉁한 잡담같았으나 쥐여짜면 《킨수이로》를 운영한 사람이 일본군대가 아니라는것이였다. 어찌 보면 박순정은 3개국합동조사단이 보는 앞에서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정부가 방패로 내들고 념불처럼 외우는 《민간업자들의 소행》, 《돈벌이를 위한 상적행위》라는 허튼소리에 협화음을 울려준셈이다.

아사꼬의 입가에서는 알릴듯말듯 한 웃음이 새여나왔다. 됐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박순정의 다음 말에 머리칼이 쭈삣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루주는 사복쟁이들이였지만 진속은 일본군대나 같았소. 사실 〈킨수이로〉는 부대병참장교가 쥐락펴락했는데 병참장교는… 응, 그렇지. 그놈은 키가 작달막한 겐지라는 쪽발이였는데 매일 〈킨수이로〉에 나타나군 했소. 그럴 때면 루주부부가 다 참대꼬챙이처럼 몸을 빳빳이 세우고 〈하잇, 하잇!〉 하면서 일본병정이상으로 노죽을 부렸고 무조건 복종했소. 그리고는 쩍하면 일본군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년은 군법에 의해 처형된다고 으르렁댔소. 가만히 보니 그 년놈들은 한주일에 한번씩 남경시내에 있는 일본군대병영에 가서 〈킨수이로〉에서 쓸 물자들과 식량 같은것도 타오더구만. 사민복을 입었지만 군인이라면 군인이였지. 더러운 놈들…》

황정식과 소자영을 비롯한 합동조사단 성원들이 펼쳐든 수첩에 《〈킨수이로〉-병참장교 겐지…》라는 글을 재빨리 적어넣었다.

아사꼬도 수첩장에 《겐지》라는 이름을 박아넣었다.

이때 경증성이 몇번 기침을 깇더니 손에 들었던 수첩을 펼쳐들었다.

《방금 박순정할머니가 사민복을 입은 루주가 군인이라면 군인이였다고 한 말은 스쳐들을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우리 남경대학살연구쎈터에서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 리제항〈위안소〉의 루주였던 기따무라라는 일본인은 1938년 3월경까지 중지나파견군에서 병참장교 겐지의 직속부하로 군복무를 하다가 제대된 사람이였습니다. 그때 기따무라가 소속되였던 부대에서는 입대전에 전문매춘업에 종사한 그의 경력을 중시하여 그를 사복편제의 군〈위안소〉 경영자로 임명하고 그의 처까지 불러다가 〈킨수이로〉를 맡아 운영하도록 하였던것입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있던 황정식이 경증성의 말을 수긍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킨수이로〉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중국의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에 수두룩하던, 일본군부대 병참부가 직접적으로 맡아 운영하던 군전용〈위안소〉가 틀림없습니다. 당시 남경시내의 군〈위안소〉들과 마찬가지로 이 〈킨수이로〉도 일본헌병대가 직접적으로 감독통제하였을것입니다. 그리고 병참장교 겐지외에도 몇명의 하사관과 여라문명의 병졸들이 항시적으로 주둔해있으면서 성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삼엄한 경비진을 펴고 관리운영에도 참여하였을것입니다.》

이번에는 황정식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박순정이 입을 열었다.

《옳수다. 이곳 〈킨수이로〉에 칼을 찬 일본헌병들이 무시로 드나들었고 저쪽 앞대문과 건물주변에는 총을 든 일본병졸들이 눈을 부릅뜨고 밤낮으로 경비를 섰수다.》

합동조사단 성원들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렇게 되여 박순정이 들어있던 《킨수이로》의 루주는 사복을 입고있었지만 군부에 소속된 일본인이였다는 사실과 《킨수이로》가 군전용《위안소》였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잠시 생각을 더듬던 박순정이 《맞았소. 그때 주인놈의 이름을 기따무라라고 불렀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박순정의 입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있던 그 순간 전홍이 어깨우의 촬영기를 추스르고나서 벌쭉거리며 박순정에게로 다가섰다.

《할머니, 이젠 루주에 대한 얘기는 그만하시고 처녀적에 이곳 남경으로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좀…》

박순정이 전홍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건 자꾸 말해서 뭘 하겠소. 이젠 골백번도 더 얘길 했는데.》

《아니, 그래도 이번에 현지에까지 수고로이 오시면서 그때 일이 눈에 삼삼하실텐데…》

《눈에 삼삼해? 내 원참,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구…》

박순정은 또다시 손을 홱 내저으며 눈을 가로 떴다. 그 일에 대해서는 쉽게 입을 열 심산이 아닌것 같았다.

본전도 못 찾은 전홍이 메사해서 상고머리를 긁적이는데 김진희가 박순정에게 다가가 그의 뿔난 마음을 눙치였다.

《할머니, 이젠 마음을 진정하시고 조사단성원들의 물음에 사실대로 아는껏 말씀해주셔야죠. 그걸 위해 먼길을 오시지 않았나요. 저나 우리 동무들은 이미 여러번 들어 다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 선생들이야 어떻게 알수 있겠나요? 할머니, 어서 말씀해주세요.》

그제서야 박순정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입을 열듯 하던 박순정은 《킨수이로》마당 한 귀퉁이에 삐뚤서하게 선채로 말라죽은 《사꾸라》나무를 여겨보기 시작하였다. 나무밑둥은 한아름에 가까왔다. 여러 갈래로 뻗어오른 굵직굵직한 가지들은 2층건물지붕보다 더 높이 자랐는데 오래전에 말라죽어 죄다 꺼멓게 썩은 삭정이가 되였다. 도끼로 찍어 불을 때면 제격이겠건만 중국의 일본군성노예연구쎈터에서 일제의 죄행을 고발하는 증견물로 보존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땐 저 나무가 천상 죽을것 같지 않더니 제명을 다 산지 오래됐구만.》

불쑥 터져나오는 박순정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사꼬는 한방망이 얻어맞은것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일본이 전패국으로 됐다는걸 이 《사꾸라》나무가 상징한단 그 말이지? 그러나 천만에! 그래 일본국화 한그루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 일본이 없어지기라도 했는가. 우리 일본은 어제도 살아있었고 오늘도 살아있으며 래일도 살아있어!… 아사꼬는 은근히 오기가 치솟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박순정은 음달진쪽으로 구새가 먹어 구멍이 펑 뚫린 《사꾸라》나무밑둥을 만져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때로부터 이젠 60년이 되였구만. 그때 남포에서 나와 함께 붙들려갔던 김녀랑 이 나무밑에 쪼그리고 앉아 설음을 쏟던 일이 눈에 선하오.》 하며 이야기의 허두를 뗐다.

남경사범대학에 다닌다는 통역원처녀와 중국측 안내원이 팔걸이가 달린 참대의자를 가져다놓고 박순정에게 권했다.

박순정이 녀의사와 김진희의 부축을 받으며 한줌만큼 졸아든 몸을 참대의자에 담았다. 그를 중심으로 3개국합동조사단 성원들이 둘러앉았다.

박순정의 피기없는 입술이 느릿느릿 움직일적마다 쓰디쓴 피눈물로 빚어진 한 처녀의 기구한 수난사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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