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6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1)


9


1944년 6월부터 중미련합군의 제4차 포위공격이 개시되였다. 일본군진지들은 말그대로 란무장으로 변해버렸다. 매일 7 000~8 000발의 포탄으로 마수걸이를 하고 그 다음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며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련합군의 공격앞에서 《무적황군》은 완전한 셈세기에 들어갔다. 며칠사이에 부대가 전멸지경에 이르자 수비대장은 두눈이 휘뜩 뒤집혔다.

이제 남은 병력은 겨우 300명정도였다. 게다가 《요꼬마따진지》의 동쪽에 있던 주요지탱점인 관산진지도 하늘로 날아났다. 일본군수비대의 패잔병들은 가물철 올챙이 물웅뎅이에 몰켜들듯 전부 《요꼬마따진지》로 쓸어들었다. 식량도 탄약도 이제는 바닥이 났다. 보름전에 고야우찌라고 하는 일본군 제4비행단 비행대장이 이끌고 온 비행대가 적군의 맹렬한 고사포탄세례를 받는 속에서도 얼마간의 식량과 수류탄, 탄약을 투하시켜준것이 마지막 군용물자보급이였다.

그때 고야우찌네 비행대는 천신만고하여 물자를 떨구어주었다.

…련합군의 빗살같은 고사포탄을 가까스로 피하며 진지상공을 선회하던 비행사들은 주도기에 탄 고야우찌에게 다급히 물었다.

《주도기, 주도기, 물자를 어느곳에 떨구라는가?》

《빠가야로- 눈깔이나 어데다 팔았는가? 저기 진지 한끝에서 펄럭거리는 〈히노마루〉가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저기 고지정점을 보라. 연기가 피여오르지 않는가. 거기에 투하하라!》

아래를 살펴보니 진지의 한 귀퉁이에서 정말 한 일본군병졸이 총대끝에 매단 《히노마루》를 미친듯이 내흔들면서 뭐라고 고래고래 소래기를 내지르고있었다.

고지정점부근에서도 속내의바람의 한 병졸이 연기가 풀풀 나는 불뭉치를 손에 쥐고 바람을 맞받아 죽기내기로 뛰여가고있었다. 군복을 홀랑 벗어 대나무끝에 동여매고 거기에 불을 단것이다.

사면으로 포위된 일본군수비대에 있어서 그때의 군용물자보급은 죽고살고를 판가리하는 결전이나 다를바없었다. 밑에서 어서 내려보내라고 아부재기를 치는 일본군도 사생결단이고 우에서 어느 지점에 투하해야 할지 몰라 헤덤비는 일본군도 사생결단이였다.

비행사들이 결사적으로 기수를 그쪽으로 돌리는 찰나 련합군의 포탄 한발이 《꽈광!-》 하고 고지정점에 명중되였다.

방금전까지 물자를 내려보내달라고 그리도 애걸하던 《불뭉치》가 순간에 먼지로 사라져버렸다.

비행기조종간을 당기던 고야우찌가 통탄을 했다.

《어휴- 저 망할 놈의 새끼들을 그저 콱…》

진지귀퉁이에서 너풀거리던 《히노마루》도 또 한발의 포탄에 걸레짝이 되여 공중으로 휘뿌려졌다.

고야우찌는 《천황》의 두 아들들이 《옥쇄》한 그 자리에 군수물자들을 투하할것을 명령하였다.

지상에서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두손을 마구 내흔들던 일본군병졸들이 서로 밀치닥질하며 물자퉁구리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몰려가고있었다. 어떤 병졸은 뛰여가다가 나무등걸에 걸채여 나가동그라지기도 했다. 누구나 락하산에 매달려 건들건들 그네를 타며 내려오는 물자를 하늘에 계시는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신령님이 보내주는 《선물》로 여기며 감지덕지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있었다.

물자투하정형을 확인하며 아래를 살펴보던 고야우찌는 눈을 크게 떴다. 군복상의를 걸쳤거나 달린옷차림을 한 녀자들이 시야에 비껴왔던것이다. 분명 《위안부》들이 틀림없었다. 고야우찌는 비죽이 웃으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음, 아직도 〈위안부〉들을 끼고있는걸 보면 저 친구들의 팔자도 그리 나쁜 축이 아니야. 허허…》

그때 고야우찌대장의 목소리가 송수화기를 통해 다른 비행사들의 귀에 들리자 전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울렸다.…

《요꼬마따진지》의 널다란 방공호안은 발을 옮겨디딜 자리도 없었다. 방공호 제일 뒤쪽에는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병졸들과 팔을 잃어버리고 다리를 잘리우고 머리통이 깨여지고 가슴과 배에 관통상을 입은 중경상자들이 구데기처럼 와글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방공호입구로부터 조금 떨어진 한쪽구석에는 강제로 끌려온 수십여명의 성노예녀성들이 2명의 일본군감시병의 눈총을 받으면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들속에는 박순정과 백화자도 끼여있었다. 운명의 장난질은 끈질긴것이여서 순정과 화자를 떼여놓지 않는듯 했다. 5년전 평양역에서 함께 끌려갔던 녀자들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그들 둘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성노예녀성들은 다른 곳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밟아 이곳에까지 끌려온 조선녀성들이였다.

수비대장이 《옥쇄》하자 113련대장이 패잔세력을 통솔했다.

방공호안에서 머리를 싸쥐고 앉아있던 련대장이 소래기를 내질렀다.

《장교들은 다 모이랏!-》

방공호속의 여기저기에 구겨박혀있던 장교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방공호바깥참호에서 격전을 지휘하는 몇몇 장교들을 내놓고 련대적으로 다 모여왔는데도 열손가락에나 겨우 찰 정도였다.

련대장이 장교들앞에 나섰다.

《겐지참모!-》

《하잇!-》

목이 앙바틈한 땅딸보가 몸을 빳빳이 세웠다.

《겐지군, 당신은 최악의 경우 군기를 소각하라.》

《하잇.》

명령을 떨구는 련대장의 목소리도, 그 명령을 접수하는 겐지의 목소리도 잔뜩 풀이 꺾이였다. 그러나 비장하게 떨리는 련대장의 목소리는 패잔병들의 가슴에 《옥쇄》의 맹세를 굳혀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이들도 자기네들이 깨여진 배를 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당시 도꾜의 대본영이나 군부는 송산수비대를 포함한 전서지역에 있던 먄마방면군을 이붓자식 줴버리듯 될대로 되라 하고 밀어놓고있었다. 실지 왜왕이나 도죠도 자기 목숨부터 건지고봐야겠다는 심산에서 본토방어에 더 신경을 쓰고있었다.

그런데도 이 우둔한 《천황》의 아들들은 천동이 뭔지 지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마구 헤덤벼치며 《옥쇄》의 한길을 따라 줄달음치고있었던것이다.

방공호밖에서 둔중한 비행기소리가 났다.

련대장이하 장교들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 포위된 자기네들에게 식량과 군수물자들을 투하해주러 온 일본비행기가 아닐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에서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니였다. 련합군의 관측기였다. 진지상공을 선회하던 비행기안에서 종이뭉테기들이 휙- 뿌려지더니 사방으로 흩날리며 진지안에도 떨어졌다. 삐라였다.

한 장교가 저만치에 떨어진 삐라를 주어다가 련대장에게 바치였다.

《일본군 여러분,… 적당히 싸워보았으니 이젠 그만두는것이 어떤가. 그쪽에서도 부상자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투항하면 충분한 치료를 보장해주겠으니 잘 생각해보라. 우리는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있다. 빨리 투항하라. 투항한자들에 한해서는 목숨을 담보할것이다.》

련대장의 상판이 푸들푸들 떨렸다.

성이 독같이 오른 련대장은 그때까지도 움켜쥐고있던 삐라를 와락와락 찢어버리고는 황황히 방공호로 들어갔다. 장교들도 우르르 뒤따랐다.

얼마후 련대장의 전원집합구령이 떨어졌다.

방공호안에 정렬한 일본군의 몰골은 무덤을 향해 행진해갈 려장을 그쯘히 갖춘 도깨비무리들 같았다. 피골이 상접할대로 상접한 영양실조환자며 혼자서 일어설수 없는 부상자들도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며 다 모여들었다. 순정이와 화자를 비롯한 성노예들도 감시병들이 때려모는 바람에 맨 뒤끝에 몰켜섰다.

《에- 〈천황〉페하의 아들들인 우리 〈무적황군〉에게는 투항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 투항을 바라는자는 한발 나서라!》

련대장의 칼날같은 악청에 더욱 기가 질린 대오는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나서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너무도 잔악무도하여 《골짜기악당》으로 소문난 련대장앞에서는 누구든 순종해야만 목숨을 건사할수 있었던것이다. 격전을 앞둔 석달전까지만도 진지에서 자기의 개인급식용 닭을 키우게 하고는 당번병에게 《어째서 더 많은 알을 낳지 않는가?》 하고 호통질을 치던자이니 더 말해서 뭘 하겠는가.

《골짜기악당》이 엄숙한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자, 그럼 이제부터 〈전진훈〉을 합창하랏!-》

《전진훈》이란 자기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야마도민족의 모델이라고 자처한 도죠 히데끼가 이른바 집필한 병서에서 골자를 뽑아 만든 《선서문》의 제목이였다. 당시 일본군인이라면 그 누구든 이 《전진훈》을 암송하고 그대로 행동해야 하였다.

그것을 합창하는 소리가 장송곡처럼 방공호안을 뒤흔들었다.

《…

치욕을 아는자 강하나니…

살아서 포로의 수치를 받지 말고 죽어서 죄과의 오명을 남기지 말것이다.…》

역시 일본군은 호색에서도 뛰여났지만 객기를 부리는데서도 《용감무쌍》했다.

《옥쇄》를 영광으로 여기는 《용감성》, 그러나 사실 그 《용감성》은 오만한자들의 만용에 불과했다. 바로 그 《용감성》으로 하여 이 진지의 수많은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신령님의 후손들은 미친듯이 앞을 다투어 저승으로 달려갔고 살아남은 어리석은 《천황》의 아들들도 지금 지옥의 문어구에서 눈물을 머금고 《전진훈》을 외운 후 《〈천황〉페하 만세!》를 삼창하고있었다.

대오가 흩어져갈 때 《골짜기악당》이 히로미와 2명의 병졸을 불러서 특별임무를 주었다.

그자의 목소리는 여느때없이 비통하게 울렸다.

《히로미군, 여기엔 113련대의 공적자료와 나의 편지가 있다. 이걸 가지고 즉시 진지를 탈출하여 상부에 보고하라. 일본의 남아답게 죽어서라도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히로미는 어깨를 늘어뜨린 상태에서 밀봉된 문건을 받아 품에 간수했다.

그는 방공호를 나서면서 입구에서 서성대고있는 순정과 화자를 잠시 띄여보고는 2명의 동료들과 함께 파편들이 앙칼진 소리를 내지르는 산언덕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또다시 날아든 포탄에 흙먼지가 휘뿌려져 하늘을 가리우고 잡관목들과 바위들이 뿌리채 뽑히여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너무도 두들겨맞아 뼈대가 다 부러지고 온통 멍이 든 《요꼬마따진지》는 마지막숨을 몰아쉬고있었다.

방공호바닥에 주저앉아 눈만 데룩거리던 순정은 이제는 고향에도 돌아가보지 못하고 이대로 죽어버리고마는구나 하는 서글픔에 얼굴을 싸쥐였다.

방공호 저쪽에서는 성노예녀성들을 개몰듯 하던 키다리병참장교가 폭탄파편에 맞아 부러져나간 다리를 부여안고 아부재기를 치고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골짜기악당》이 곁에 선 장교에게 나직이 물었다.

《군기를 소각했는가?》

《하잇, 좀전에 겐지군이 소각했습니다.》

《골짜기악당》이 눈을 끔벅이자 곁에 있던 장교들은 그의 뒤를 따라 아무 소리도 없이 방공호에서 빠져나갔다.

불안속에서 장교들의 눈치만 살피던 성한 병졸들도 총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채 하나둘 잽싸게 발을 놀리며 방공호입구에서 언뜻언뜻 사라져버린다. 눈치가 빠르기는 도가집 강아지를 찜쪄먹을 정도였다.

박순정과 백화자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해쓱해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널직한 방공호안에는 쓰레기처럼 내버려진 수십여명의 성노예들과 이미 저승의 문턱앞에 이른 일본군중상자들만 남았다.

그때 순정의 눈에 땅딸보 겐지와 군의관 그리고 목에 여러개의 물통을 건 위생병이 부상병들이 누워있는 방공호의 제일 안쪽구석으로 급히 들어가는 모습이 얼핏 비껴들었다.

순정이는 의아한 눈길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사위가 조용해지자 순정은 눈가에서 흰자위를 번뜩거리는 화자를 툭 건드리였다.

화자가 그에게로 바투 다가왔다.

《왜?》

순정은 이를 옥물면서 속삭이였다.

《빨리 여기서 도망치자.》

《으응? 도망?》

《빨리!- 여기 있다간 다 죽어!-》

순정의 말에 화자는 정신이 펀뜩했다.

순정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순간에 몸을 일으켜 방공호입구쪽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방공호안에 있던 왜놈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방공호입구를 벗어난 순정은 무작정 수무천이 흐르는 진지뒤쪽 산아래로 내리뛰기 시작하였다. 그뒤로 자석에 이끌리듯 화자와 몇명의 성노예녀성들이 줄레줄레 따라섰다.

뒤쪽에서 《방공호입구를 봉쇄하라!-》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후에는 《꽝!- 꽈광!》 하는 굉음이 울렸다. 방공호입구에서는 시꺼먼 연기와 함께 삼단같은 불길이 솟구쳐나왔다.

그것은 《골짜기악당》의 명령으로 날아든 여러발의 수류탄의 《덕》으로 죽음의 문턱앞에 이른 《천황》의 아들들이 《영령》이라는 한쪼박의 《명예》를 붙안고 《승천》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방공호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조선인성노예들은 말그대로 억울한 생죽음을 당하고말았다. 천추에 용납 못할 이 력사의 죄악에 몸서리치는듯 진지가 통채로 드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이날이 바로 진지가 완전히 함락되기 하루전날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