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6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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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입은 소년병사 리창조는 수염자리가 푸릿푸릿한 아바이병사와 함께 산기슭의 오솔길을 따라 수무천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그는 송산에 있는 일본군진지가 중미련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떼를 써서 군대에 입대하였는데 상급에서는 그를 이곳에 있는 중대에 배속시켰던것이다.

창조의 어깨에는 둘둘 말아감은 반두가 메워져있었다.

아바이병사는 큼직한 버들광주리를 손에 들고있었다. 그 아바이는 중대취사원이였다.

그들은 전투승리를 축하하는겸 중대원들에게 물고기료리를 푸짐히 해먹이자고 작정을 하고 지금 수무천으로 나가는 길이다.

수무천을 가까이 할수록 싱그러운 물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창조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어깨를 들썩거린다.

이날따라 해빛은 사정없이 쏟아져내렸다. 수무천기슭의 자갈밭은 너무도 따가와 맨발로 올라서기가 힘들 정도였다.

땀을 철철 흘리며 수무천기슭에 당도한 창조와 아바이병사는 우선 한바탕 미역을 감았다.

이들이 더위를 털어버린 후 반두를 펼쳐들고 강기슭 버들숲이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커다란 바위가 있는 숲속에서 인기척이 났다. 소곤소곤하는 말소리까지 들려왔다.

엉? 누가 숨어있는것 같다! 어떤자들일가?

신경이 곤두선 창조와 아바이병사는 두손에 돌멩이를 집어들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큰 바위가 있는 버들숲으로 접근해갔다.

순간 바위뒤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와닥닥 뛰쳐일어나 수무천아래방향으로 들고뛰기 시작하였다.

맨앞에서 달아빼는 놈은 머리에 붕대를 두른 일본군장교였다. 그 뒤로 너덜너덜한 일본군 군복상의를 걸친 여러명의 녀성들이 뚱기적거리며 따라가고있었다.

오호, 여기에 일본군패잔병들이 숨어있었구나!

창조와 아바이는 뒤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서라!-》

《서지 않을테냐? 안 서면 쏜다!-》

비틀거리며 줄행랑을 놓던 3명의 녀자들은 정말로 총을 쏘는줄 알고 얼마 못 가 풀썩 주저앉아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맨 먼저 뛰쳐일어난 일본군장교는 벌써 눈에 보일락말락하게 멀어졌다. 그뒤를 따르던 한명의 녀자도 퍼그나 멀리로 달아났다. 신발을 신은 왜놈장교나 그 녀자는 덤불이면 덤불, 바위돌이면 바위돌 상관없이 막 뛰여넘으면서 죽기내기로 달아빼는데 리창조나 아바이는 맨발이였으므로 빨리 쫓아갈수가 없었던것이다. 보다 안타까운것은 총이 없는것이였다. 고기잡이를 나오면서 시끄럽게 생각되여 중대에 두고 왔던것이다.

장교를 뒤쫓아가던 창조가 걸음을 멈추고 한탄했다.

《에잇, 총이 있었으면 놓치지 않는건데…》

아바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창조, 그만하면 됐어.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구. 저놈들이 뛰여야 벼룩이지…》

그러나 리창조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후회가 막심하였다.

까마득하게 달아난 왜놈장교는 수무천에 들어서더니 물살에 말려들면서도 끝끝내 강을 헤염쳐 건넜다.

강건너편 바위우에 올라서서 창조네쪽을 쭉 둘러보던 그놈은 무성한 수림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죽기내기로 장교의 뒤를 따라가던 한명의 녀자는 수무천을 건느며 몇번 자맥질을 하다가 사품치는 물에 휘말려들어 끝내는 걸레쪼박처럼 떠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창조가 달려가보니 그 녀자는 건너편 강기슭에 잠겨있는 큰 나무가지에 걸려 물살이 하자는대로 흔드적거리고있었다. 꼼짝하지 않고있는것을 보아 벌써 숨이 진것 같았다.

창조와 아바이병사에게 붙들린 3명의 녀자들은 《우라야마진지》구역안의 《위안소》에 있다가 《요꼬마따진지》로 끌려갔던 녀성들이였다. 창조와는 풋낯이나 아는 녀성들이라 그들은 창조의 발밑에 엎드려 제발 놓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불행한 그들을 대하는 창조의 립장이 딱해졌다.

그러나 그냥 제 갈데로 가라고 놔줄수는 없었다. 더구나 취사원아바이가 일본군성노예녀성들도 일본군군인들과 꼭같이 취급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며 그들을 포로수용소로 데리고 가자고 하기에 어쩔수가 없었다.

창조가 녀자들을 안심시키며 이렇게 설복했다.

《우리는 당신들과 같이 불쌍한 녀성들을 때리거나 죽이는 일을 하지 않소. 오히려 당신들에게 먹을것도 주고 입을것도 줄거요. 자꾸 놔달라고 하는데 실지 여기서 풀어놔주어야 어디로 가며 또 어떻게 살아간다고 그러오. 그러니 우리와 함께 갑시다.》

그제서야 생각을 달리 먹은 3명의 녀성들은 창조의 말에 순순히 응해나섰다.

고기잡이를 단념한 창조와 아바이는 그들을 앞세우고 산기슭을 따라 중대로 향했다.

강물에 적셔보지도 못한 반두를 메고 털썩털썩 걸음을 옮기던 리창조가 투덜거렸다.

《아바이, 오늘은 별나게 일이 꼬이는데요.》

아바이가 느슨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꼬이긴 뭐가 꼬여?》

《아, 본때있게 해보자던 고기잡이도 다 망태기가 되였으니 이제 중대에 가서 뭐라고 변명하겠나요. 장교놈도 놓치고 고기는 한마리도 못 잡고… 그래 이게 꼬이는거지 뭐예요. 참…》

아바이는 손에 들었던 광주리를 창조가 둘둘 말아 어깨에 멘 반두꼭대기에 척 걸어놓으면서 《이녀석, 삐뚤어진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중대에 가서 표창이나 받을 궁리나 해.》 하고 껄껄 웃었다.

《표창? 무슨 큰일을 했다고 표창을 받겠나요.》

《왜, 창조가 큰일을 했지. 이렇게 3명이나 되는 포로를 잡았는데두?》

《쳇. 이 녀자들이 무슨 포로라고 그래요.》

이러는데 금방 지나온 강기슭의 강냉이밭에서 인기척이 났다. 개꼬리가 쭉쭉 뽑힌 강냉이대가 흔들거리는것을 보아 그곳에 사람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어깨우에 올려놓았던 반두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친 창조는 나는듯이 그리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강냉이밭 한가운데서는 허벅아래까지 내려오는 누런 반소매샤쯔를 걸친 한 녀자가 정신없이 날강냉이를 뜯어먹고있었다. 강냉이이삭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우물거리던 녀자도 색다른 군복을 입은 리창조를 보더니 깜짝 놀라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다음 순간 창조는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였다.

《아니, 이게 순정누이가 아니요?》

하지만 순정은 혼이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창조를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순정은 대답대신 눈물만 줄줄 흘리였다.

창조와 아바이는 순정이를 통해 수무천너머로 도주한 왜놈장교는 113련대 고급참모 겐지이며 그를 따라 도망치다가 물에 빠져죽은 녀성이 백화자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창조네가 고기잡으러 강가로 나가던 그때 순정은 겐지가 딴데 신경을 쓰는 틈을 타서 백화자에게 도망을 치자고 눈짓을 했다. 이때 창조와 아바이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다른 녀자들이 무의식중에 겐지의 뒤를 경황없이 따르자 그는 반대방향에 있는 강기슭의 강냉이밭으로 은신했던것이다.

일본호색광들에게서 갖은 치욕을 다 당하면서 최전방격전장에까지 끌려다니던 4명의 조선인성노예녀성들은 이렇게 되여 련합군의 포로가 되였다.

그들은 리창조네 중대앞에 있는 산기슭에 가서 잠시 휴식을 할 때에야 한숨을 돌릴수 있었다.

그때 미군보도반에 배속되여 그곳 전역에 나와있던 한 미군종군기자가 처참한 모습을 한 순정이네들을 향해 사진기의 샤타를 눌렀다. 그 사진이 반세기나마 미국회도서관에 소장되여있던, 아사꼬를 몹시 흥분시켰던 바로 그 사진이였다.


×


《요꼬마따진지》와 《마쯔야마진지》, 《니시야마진지》에서 도망쳐 산골짜기에 배겨있던 일본군패잔병들은 거의다 련합군의 수색에 걸려 잡혀왔다.

박순정이를 포함하여 여기저기에 숨어있다가 붙들린 성노예녀성들도 거의 10명이나 되였다.

련합군측에서는 그들까지 죄다 일본군포로로 취급하면서 보산시에 림시로 설치한 포로수용소로 끌고 갔다.

포로대렬에 끼여 가까스로 걸음을 옮기던 순정은 허기증과 갖은 치욕을 당하던 나날에 얻은 병으로 중태에 빠졌다. 그는 비칠거리다가 끝내 로상에서 쓰러졌다.

포로들을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던 리창조가 호송대를 책임진 자기네 소대장에게 통사정을 했다.

《소대장님, 저 녀자는 일본군에 억울하게 끌려다니던 조선녀자입니다. 수용소에 끌고가더라도 먼저 치료부터… 소대장님, 불쌍한 저 녀자를 살려주십시오.》

수염이 더부룩한 소대장이 이죽거리였다.

《허, 쬐꼬만 녀석이 지내 인정이 무르다. 혹시 너 일본군진지에서 잡부노릇을 할 때 눈이 맞은건 아니야?…》

소대장이 험한 소리까지 내뱉았지만 리창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소대장님, 이건 지나친 인정이 아닙니다. 소대장님에게도 누이동생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걸 생각해서라도 제발…》

그는 울먹거리며 소대장의 팔에 매달렸다.

그때 나이가 지숙한 아바이병사가 리창조의 편을 들어주었다.

《소대장님, 창조의 말대로 저 녀자를 병원에서 며칠간만이라도 치료를 받도록 해주시우. 이러나저러나간에 저 녀자는 일본사람도 아닌데 한번 마음써주시우.… 소대장님.》

소대장은 눈을 희번덕거리다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럼 며칠간만 떨궈둬!》

혼수상태에 빠졌던 순정은 그후 리창조네 먼 친척벌되는 사람의 집에서 며칠간 묵으면서 안정하였다.

순정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련합군병사들이 와서 그를 다시 곤명포로수용소로 데려갔다. 당시 곤명에 중미련합군 륙군사령부가 있었고 포로들에 대한 심문도 그곳에서 하게 되였던것이다.

어느날 순정은 수용소천막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길건너 맞은켠에 있는 천막앞에 서있는 히로미를 띄여보았던것이다. 원래 약한 체질인데다가 피골이 상접할대로 상접하여 허수아비처럼 된 히로미였다. 보기조차 처참한 정도였다.

(히로미도 포로되였구나.)

그후로는 히로미를 더는 보지 못했다.

순정은 곤명포로수용소에서 다시 중경포로수용소로 이송되였다.

그곳에서 그는 일본이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된 소식을 들었다.

아, 조선이 해방되였다! 고향땅이 해방되였다! 고향, 가고싶은 고향!… 보고싶은 아버지와 사랑하는 동생들…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있을가!…

순정은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향생각을 하였다.

그때로부터 해가 지나서야 중미련합군 륙군사령부에서는 박순정을 비롯한 중경포로수용소에 있던 조선인녀성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심문결과를 발표하였다.

《…조선녀성들은 일본군에 속히워 끌려다니다가 련합군측에 자발적으로 투항하여온 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포로가 아니다.…》

심문결과발표에 뒤이어 순정이네들에게 귀국할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였다.

1946년 봄 박순정은 상해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얻어타고 귀국의 길에 올랐다.

순정의 나이가 그때 25살이였으니 남포를 떠난지 해수로는 8년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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