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7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2)


1


합동조사단 성원들은 뻐스에 올랐다. 등충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1944년 봄 박순정이 송산으로 끌려오기 전에 얼마간 가있었다는 등충《위안소》자리도 돌아보고 현재 그곳에서 일하고있는 등충주재 운남신문기자 리권진이라는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곳에 있던 일본군《위안소》에 대한 자료를 많이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조사단에서는 호영란과 리창조는 그간 자기들이 할바를 다했기때문에 집으로 돌려보내고 박순정만을 데리고 떠났다.

뻐스가 등충시 소재지에 들어서기 전에 자그마한 골개강을 낀 언덕받이를 내리는데 앞쪽에서 웬 로파 하나가 여라문살 되는 소녀와 함께 큼직한 버들광주리를 길섶에 놓고 서있었다. 광주리속에는 약초뿌리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뻐스가 그들의 앞에 가서 멎자 과진량이 차창을 열고 소리쳤다.

《장할머니,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그런데 어델 그렇게…》

로파는 반색을 했다.

《에이구, 과선생이시구먼, 몇달째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어떻게… 내 오늘은 손발이 근질거려 산바람도 좀 쏘일겸 해서 손녀를 데리고 저기 〈자매소〉건너편에 약초캐러 갔댔수다.》

《허, 좋은 약초를 굉장히 많이 캤습니다. 어서 뻐스에 오르십시오. 가는 길에 모셔다드리지요.》

《아, 아니. 일없수다. 이제 엎디면 코닿을데까지 왔는데 일없소. 일이 바쁘실텐데 어서 앞서시우. 난 지금 여기서 아들이 몰고오는 차를 기다리고있소. 어서 떠나시우.》

로파는 손을 홰홰 내저었다. 장할머니라 부르는 로파네 집은 등충시내에 있었다. 과진량이 중일전쟁기간에 감행한 일본군의 범죄행위를 조사하면서 몇해째 이곳에 여러번 나들었는데 그때 면목을 익혔던것이다.

달리는 뻐스안에서 과진량이 박순정에게 물었다.

《박순정할머니도 저쪽 골개강이 흐르는데 있는 〈자매소〉를 아실텐데… 생각이 나십니까?》

순정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내 그걸 어찌 잊겠소. 며칠전 꿈자리에서도 그 〈자매소〉에 빠져죽은 불쌍한 녀자들이 나타나서 원쑤를 갚아달라고 소리칩디다.》

《자매소》이야기가 나오자 조사단성원들은 잠간 방향을 돌려 우선 그곳부터 찾아보기로 하였다.

뻐스는 대도로에서 갈라진 소로길을 따라 달리다가 구불구불한 아름드리소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밋밋한 언덕아래에 멈춰섰다.

일행은 몇발자국 옮겨 앞이 확 트인 언덕받이에 올라섰다. 발밑코앞에서 쏴- 쏴- 하는 산골물이 사품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쪽으로 쪼개진 바위벼랑짬으로 흰 거품을 문 골개강이 기세를 돋구고있었다.

골개강은 은구슬을 쥐여뿌리며 쏜살같이 내리꼰지다가는 크고작은 소들에서 한 둬고패씩 빙빙 돌아가다 다시 방향을 잡으며 흘러간다.

조사단일행이 서있는 발아래로 그중 큰 소 하나가 내려다보이였다.

과진량이 독을 쓰듯 류달리 검푸른 그 소를 가리켰다.

《저 큰 소가 바로 이곳 사람들이 〈자매소〉라고 부르는 소입니다.》

일행은 머리를 끄덕이며 과진량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사꼬는 의아함을 금할수가 없었다. 《자매소》라는 뜻은 나란히 맞붙은 크고작은 소라는 뜻일텐데 하나의 소를 놓고 그런 이름을 달다니? 여기에는 필경 류다른 사연이 있을것 같았다.

아사꼬는 박순정의 곁으로 다가갔다.

먼저 과진량이 그 주변의 자연지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 박순정의 입에서는 《자매소》와 관련된 가슴터지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박순정이 1944년 초봄 등충현(당시)에서 두달정도 머물러 있을 때 있은 일이였다.

당시 등충에는 《위안소》가 서너개 있었는데 성안에도 있고 성밖에도 있었다. 순정이가 끌려간 《위안소》는 남문에서 좀 떨어진 성밖의 산기슭에 구축된 일본군진지들의 안에 있었다. 그 《위안소》에서 산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바로 오늘날 《자매소》라 부르는 이 소에 와닿게 되여있는것이다.

순정은 등충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온 날 이미 와있던 녀자들속에서 너무도 나어린 소녀를 띄여보게 되였다.

(어쩌면 저렇게 어린 나이에…)

순정은 그 소녀를 보며 고향에 두고온 녀동생을 생각했다. 애리애리한 몸에 후렁한 일본옷을 걸친 그를 보기가 더없이 측은했다.

순정은 그를 붙들고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찌바〉, 아니, 정고랑녀야요.》

《고향은 어데니?》

《경상도야요.》

《몇살이니?》

《열…세살…》

순정의 녀동생보다 몇살이나 더 아래였다.

소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손에 들었던 나무가지를 때깍때깍 꺾다가 홱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일본군병정들은 나어린 정고랑녀를 《찌바》(꼬마)라고 불렀다.

듣고보니 그의 운명도 기구했다.

그는 경상도 감포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가 2살 나던 해에 아버지가 앓아서 죽고 4살때에는 지주집에서 약값으로 꾸어쓴 빚돈 3원때문에 어머니가 지주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의 맏언니는 곱사등이 병신아들을 둔 어느 부자집 민며느리로 팔려갔다고 한다.

《찌바》는 1943년 가을 왜놈들과 결탁된 웬 면장놈의 손아귀에 걸려 강제로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어느 한 《위안소》로 끌리워갔다. 거기서 어린 나이에 죽을 고생을 다하다가 다시 상해를 거쳐 등충에까지 끌려왔는데 순정이보다 한 보름 앞서 그곳 《위안소》에 와있었다.

순정이가 끌려온지 3일째 되는 날 아침이였다.

마당가를 내다보니 어디에서 끌려왔는지 또 10명의 조선인녀성들이 차에서 내리고있었다.

그날 오후엔 《위안소》의 모든 녀성들이 시큼한 땀내가 꽉 배인 일본군병정들의 군복을 걷어안고 뒤산너머에 있는 골개강으로 나가게 되여있었다. 병참장교의 지시로 성노예녀성들이 이런 고된 로동을 강요당하는 때가 무수했다. 물론 이런 일은 일본군감시병들의 감시속에서 진행되였다.

순정이가 목대가 부러질 정도로 한임되는 빨래감들을 버들광주리에 담아이고 강가에 나가 앉았을 때였다.

그가 자리잡고 앉았는데 소옆에 있는 벼랑바위턱에서 두 녀자들이 울고불며 야단질을 하고있었다. 《찌바》와 그날 아침에 도착한 순정이 나이쯤 되는 키가 쭉 빠진 녀성이였다.

《아이고, 세상에… 너까지 이런데 와있으니 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구 이렇게… 아하하… 어머니!…》

키큰 녀자가 《찌바》의 가슴을 마구 쥐여박다가 풀썩 오금을 꺾는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풀버덩을 털썩털썩 두드리다가 머리끄뎅이를 잡아당기듯 새초잎사귀를 와락와락 뜯어 팽개친다.

그 녀자가 바로 《찌바》가 4살 나던 때 곱사등이네 집에 민며느리로 팔려갔던 맏언니였던것이다. 그가 어떤 경로를 밟아 등충에까지 왔는지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없다.

《언니!- 날 죽여줘!-》

《찌바》는 엉엉 울면서 언니의 가슴에 매달렸다.

순정의 가슴은 널뛰듯 했다.

그러니 저들이 자매간이였구나! 어쩌면… 어쩌면…

순정은 가슴을 쥐여뜯으며 불쌍한 자매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달래줄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였다.

순정이가 《풍덩-》 하는 소리에 놀라 후닥닥 일어섰을 때에는 오열을 터뜨리던 자매가 서로 부둥켜안고 검푸른 소에 뛰여든 뒤였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자매를 한입에 삼켜버린 커다란 소만이 입을 다시듯이 잠시 여러 갈래의 둥그런 파문을 일쿠다가 잦아들어버렸다.…

그때부터 그 아근의 주민들은 그 소를 가리켜 《자매소》라고 부르며 그 근방에 가까이 가기조차 꺼려하였다.

과진량의 말에 의하면 1960년대초까지도 그 소에서 밤이면 《날 죽여줘!-》 하는 곡성 같은것이 자주 울려나와 사람들을 놀래워 마을에서는 의논끝에 그 바위벼랑턱에 제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침통한 기색을 지은 박순정은 《자매소》에 박았던 시선을 돌려 거무틱틱한 바위너설을 뒤덮고있는 숲덤불쪽을 바라보며 움직일줄 몰랐다. 바위짬덤불속에서는 이 고장에서만 볼수 있는 야생란초들이 아직까지도 꽃잎을 펼쳐든채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아사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중 제일 소담한 란초꽃 한송이를 꺾었다. 숨소리만 높이던 김진희도 뒤따라 한송이를 꺾어들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듯이 박순정의 손에 그 꽃들을 쥐여주었다.

아무 말도 없이 두송이의 꽃을 코가까이에 갖다대고 향기를 맡아보던 순정은 발아래로 솨- 솨- 하고 울며 몸부림치는 검푸른 《자매소》를 한동안 굽어보았다. 그러다가 파랗게 열린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가에서는 맑은것이 번뜩이였다. 순정은 두팔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두송이의 란초가 공중으로 휘뿌려졌다가 너울거리며 《자매소》물면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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