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7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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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충주재 운남신문기자 리권진은 자기 사무실에서 3개국합동조사단일행을 기다리고있었다. 50대가량 나보이는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였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선생, 일이 바쁘실텐데 안됐습니다.》

《원, 별말씀… 어서 자리들을 잡고 앉으십시오.》

조사단성원들이 리권진의 사무탁과 맞붙여놓은 길다란 앞상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았다.

리권진과의 대화는 김진희와 아사꼬가 주로 맡아하였다.

아사꼬가 먼저 말꼭지를 떼면서 직방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자선생, 선생이 중일전쟁때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나던 시기까지 등충에 있던 성노예녀성들에 대한 자료를 많이 아신다던데…》

《많이 알기야 뭐, 아마 아는것이 하나라면 묻혀버린것은 백은 더 될겁니다. 허허…》

리권진은 책장에서 자료철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뽑아 책상우에 펴놓았다.

조사단성원들이 사진주위에 모여섰다. 전홍을 비롯한 촬영가들도 사진들에 렌즈를 들이댔다.

《이 사진들은 그 시기 련합군에 소속되여있던 프랑크 멘와렌이라는 종군기자가 이곳 등충에서 촬영한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복사판들입니다. 원전은 미국회도서관에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면 이곳 등충에 있던 성노예녀성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잘 알수 있을것입니다.》

전부 1944년 9월 15일에 촬영한것들이였다. 사진 아래단에 촬영년월일이 다 박혀있었다. 그날은 중미련합군에 의해 등충수비대가 전멸된 이튿날이였다.

많은 사진들중에서 한장은 등충현성안의 성벽밑에 흩어진 시체들을 찍은것이였는데 사진밑에는 《등충에 대한 련합군의 공격으로 죽은 일본군과 녀성들의 시체》라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사진왼쪽에 2명의 녀성들의 시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느 나라 녀성인지는 똑똑히 알수 없었지만 옷차림이나 머리모양을 보니 성노예녀성들이 틀림없었다.

조사단성원들의 눈길을 끄는 또 한장의 사진은 같은 날 련합군군인들이 시체를 매장하고있는 장면을 찍은것이였다.

도랑속에 마구 구겨박힌 녀성들의 시체, 도랑우에서 삽질하는 련합군병사들,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때문에 코를 싸쥔 한 애어린 병사…

그밖에도 그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사진들이 여러장이나 되였다.

각이한 장면들을 촬영한것들이였지만 사진들의 초점은 하나같이 너저분하게 널려진 성노예녀성들의 시체에 맞추어져있었다.

사진을 뜯어보던 아사꼬가 리권진에게 물었다.

《이 녀성들은 일본군군인들이 〈옥쇄〉할 때 함께 자결했겠지요?》

《선생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까? 판단이 빗나가는것 같습니다. 제 견해는 자결이 아니라 타살이라는것입니다. 자결로 보는것은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리권진은 은근히 침을 놓았다.

아사꼬는 저도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져 목구멍으로 나오던 말을 삼켜버리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실지 리권진은 등충에서 일본군이 전멸당하면서 성노예녀성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는데서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그는 조사단성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성노예녀성들의 시체는 몇구인지 정확히 알수 없지만 명백한것은 타살이라는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료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가 서류함에서 꺼내놓은 자료는 당시 발간되던 군보에 실린 《등충전역에서》라는 제목으로 된 기사였다. 군보는 누렇게 색이 바랜데다가 하도 접었다폈다 해서 허리가 두동강이 나있었다.

군보의 한쪽단에 사진도 게재되여있었는데 그것도 미군종군기자가 찍은것이였다. 죽은 성노예녀성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이였다.

《등충전역에서》라는 기사의 필자는 당시 등충에서 일본군의 시체를 처리하던 장씨성을 가진 사람이였다.

기사에는 일본군이 전멸된 후 등충현성안을 돌아보았을 때의 환경이 아주 방불하게 그려져있었다.

《…일본군을 섬멸하고 아군이 전장을 정리하고있을 때 서문성벽의 땅구뎅이에서 살아있는 3명의 녀성들을 발견하였다.

년령은 20살전후. …머리카락이 흩어져있는데 그녀들은 마치 활을 보기만 해도 도망치는 새처럼 몹시 놀라 떨며 총살되는것을 겁내고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물으니 그녀들은 원래 조선녀자들인데 일본군에 의해 강제적으로 군기(군성노예)로 된 녀성들이라는것이였다.

〈군기원〉(군〈위안소〉)에 있은것은 이 셋만이 아니였다. 필자가 성안에서 전투가 끝난 후 성안을 돌아보고있을 때 사람의 시체가 타는 냄새가 서리고 여기저기에 사체가 굴러다니고있었는데 큰 흙구뎅이속에 20구이상의 사체가 있었다.… 가슴이 절반나마 보이는 반라체상태였다. 그것은 전부 군기의 사체인데 그안에 흩어져있었다.

그녀들의 몸에는 총탄흔적이 없고 다만 좌우의 관자노리에 총구멍이 나있었다. 왼쪽에서 쏜 한발의 총탄이 오른쪽으로 관통하여 숨이 끊어진것이였다. 일본군이 전멸하는 최후의 날에 탈출, 돌파를 결정했을 때 군기들의 목숨을 살리려 하지 않고 한사람씩 그 자리에서 총살한것이였다. 당황하여 구뎅이우에 흙을 덮을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였다.

땅구뎅이에 숨어있던 3명의 녀성은 아마 일본군이 혼란상태에 빠져 잊어버리는통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것으로 생각된다.

그녀들 세사람은 행운아들이였다. …》

기사를 읽던 아사꼬는 아직까지도 철회하지 못한 자기의 주장에 발을 붙이고 갈구리질을 하였다.

《리상, 글을 보면 필자가 일본군이 20여명의 〈위안부〉녀성들을 총살하는 모습을 제눈으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추측으로 쓴것이 분명한데 꼭 그렇게만 보아야 할가요? 자결했을수도 있지 않을가요?》

《아니, 그건 론리에도 어긋납니다. 가령 성노예녀성들이 자결했다고 칩시다. 총탄이 모두 왼쪽으로부터 쏘아박은것이 분명하다고 했는데 그럼 그 20여명의 녀성들이 전부 왼손잡이들이였단 말입니까? 그건 엄청난 착오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일본군이 그들을 한사람씩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고 쓴것입니다.…》

리권진은 문제분석도 법관이상으로 치밀하고 심오했다.

아사꼬는 어느 한 일본군복무자가 쓴 책에서 본 《일본군〈위안부〉들은 자결했다.》는 글줄이 생각나 그런 주장을 세웠다가 코만 떼웠다.

이번에는 김진희가 입을 열었다.

《기자선생, 이 군보말고 당시의 등충신문에도 성노예관련 기사가 실렸다고 하던데 그것도 좀…》

《내 그럴줄 알았습니다. 좀 기다려주십시오. 잠간만…》

리권진은 자료철이 꽉 들어찬 맨끝 책장에서 큼직한 자료철 하나를 쭉 뽑아들었다. 겉표지에 《등충에서의 전지기자의 보고》라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때 이곳에 있던 한 신문기자가 수집한 자료인데 그 자료들은 기사화되여 1944년 9월부터 10월에 걸쳐 〈대공보〉와 〈소탕보〉신문에 실렸고 1946년 9월 14일부 〈등충일보〉의 〈등충광복 2주년 기념특집〉에도 게재되였습니다.》

리권진이 꺼내놓은 자료들은 조사단성원들의 손으로 옮겨졌다.

김진희는 자료철속에서 나온 누렇게 퇴색된 신문묶음을 펼쳤다. 1944년 9월부터 10월에 걸쳐 발행된 《대공보》였다. 각이한 날자들이 찍힌 매 신문에는 《일본군위안부조사-등충성내의 한무리의 가련한 인생들》이라는 제목의 련재기사가 실려있었다.

김진희가 기사를 펼쳐들었다. 아사꼬와 전홍도 신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

등충현성안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이미 련합군은 성안에 50여명의 영기(일본군대병영안에 있는 성노예라는 뜻)가 일본군과 함께 포위되여있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련합군병사가 남문성벽에 올라 안의 동정을 살피고있을 때 북문에 이어진 성안의 소로길로 선명한 의복을 입은 2~3명의 녀성이 당황하여 지나가는것을 보았다. 그후 공격의 포위체계가 이루어지고 련합군의 작은 포와 기관총부대가 봉쇄한 저편 길에서도 선명한 옷차림의 녀성이 걸어가고있었다. 병사들은 사격을 중지하고 그녀들을 불렀으나 그녀들은 무엇이 두려운지 황급히 사라졌다. 이러한 영기제도는 전세계의 군대중에서도 처음 보는것이다. 그때문에 아군속에서도 별의별 신화같은 말이 다 퍼져갔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그처럼 포위진이 좁혀졌는데도 왜 한명도 포로되지 않았는가? 그녀들은 어디로 간것인가?

그후 붙잡힌 포로들의 입을 통해 48명의 젊은 영기들과 5명의 루주마담(〈위안소〉 녀주인)이 안에 갇혀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은 전멸직전의 일본병들과 같이 최후 5분간에 모두 빼앗길것이다. 생각했던바 그대로 일본군은 12일인지 13일인지 밤에 비도덕적이고 잔혹한 방법으로 그 가냘픈 어린양들을 처리했다.

10살안팎의 한 중국소녀는 죽음을 피할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영기들이 방공호안에 숨어있을 때인 어느날 새벽, 갑자기 한명의 일본군이 달려들어와 총으로 13명의 영기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때 공포로 하여 의식을 잃었던 그녀는 인차 정신을 차리고 도망쳤기때문에 구원되였다.

9월 14일 오전, 련합군이 등충현성안의 일본군의 최후의 진지를 점령했을 때 성벽가까이에서 10여구의 녀성들의 사체를 발견하였다. 사체속에는 군복상의를 입고있는자, 군복바지를 입고있는자, 허름한 의복을 몸에 걸치고있는자도 있었다. 그녀들은 일본군에 의하여 눈을 싸매우고 함께 총살된것이였다. 거기에 썩어 문드러진 사체나 숨진 직후의 사체, 아직 손발에 경련이 일고있는것도 있어 그 잔혹하고 처절한 광경을 말로 다 할수 없다. 이 녀성들은 생전 일본군의 성욕의 배출구로 되고 마지막에는 살해되였다. 그녀들에게 도대체 어떤 죄가 있었다는것인가.

14일 아침 1명의 루주마담은 12명의 영기를 데리고 동문근처의 파렬구로부터 도망쳐 논판을 기며 어디에로 가는지 방향도 모르고 달리다가 련합군에게 발견되였다.… 13명의 녀성들은 포로가 되였다. 사람들은 영기들이 잡힌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녀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어떠한 인간들인가.… 의문이 가득 있었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표시하였기때문에 기자는 취재한것을 모두에게 상세히 전하고싶었다.

중국어를 할수 있는 한 루주마담과 인터뷰를 하는것과 함께 그에게 통역도 맡아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녀들은 모두 조선인녀성들인데 1년전에 파송되여왔다.… 일본군은 영기제도를 만들고 사람들을 파견하여 조선에서 처녀들과 유부녀들까지 강제련행했다.…〉

기자는 련합군이 남문밖을 탈환하였을 때 영기가 있는 몇채의 공관을 견학하였다. 그무렵 공관의 정문은 성벽에 림하여있어 통과할수 없었기때문에 나는 파손된 벽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에는 20개이상의 작은 방이 있고 모든 문에는 그녀들의 명찰과 군의관의 검사합격증이 붙어있었다. 이 합격증명서는 매주 바꾸어 붙인다고 한다. 웃쪽에는 영기의 이름이 있고 옆에 의사의 도장이 눌러져있었다. 매 방의 꾸밈새는 일본식가옥과 같았다. 이런 종류의 영기공관은 이전에 남문밖에 한채 있었고 먼곳으로는 와순과 계두에도 있었다.

…살아남은 영기들은 각이한 이름들을 가지고있었다.

년령은 제일 젊은 녀성이 18살이고 19살이 둘이고 20살부터 23살이 제일 많았다. 유부녀들이였던 28살의 녀성도 둘이 있었다.

…나는 호소하고싶다. 〈불쌍한 녀성들을 구원하자.〉고… 민국33년 9.18사건 13주년을 맞으며 등충에서》

아사꼬가 리권진에게 물었다.

《민국33년이면 1944년이지요?》

《그렇습니다.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그 다음해에 중화민국이 수립됐으니까. 그리고 이 기사제목에 있는 〈적군〉이라는 말은 일본군을 의미한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사꼬선생이 노하실건 없고… 허허허.》

김진희는 기사를 읽은 소감에 대해 리권진에게 말하였다.

《등충이 함락된 직후에 이러한 기사가 게재되였다는것은 대단히 흥미가 있습니다. 후세사람들에게 당시 현실을 리해하고 일본군성노예제도를 똑똑히 알게 하는데서도 부정할수 없는 력사적자료를 제공해주고…》

리권진도 기사에 대한 자기의 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기사를 보면 등충현성이 무너질 때 수많은 성노예녀성들이 자결이 아니라 타살 즉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였다는 문제와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진내막이 선명하게 드러나고있습니다.

그러면 왜 일본군이 그때 수많은 성노예녀성들을 그렇게 집단적으로 한곳에 몰아넣고 총살하고 불태우고 생매장해 죽였는가?》

이렇게 말하던 리권진은 성벽밑에 흩어진 성노예녀성들의 시체를 촬영한 사진과 손에 삽을 쥔 련합군군인들이 도랑속에 마구 처박힌 수많은 성노예녀성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사진들을 김진희와 아사꼬가 앉은 책상앞으로 밀어놓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들이 일본군에 반항했기때문도 아니고 련합군측으로 도망을 치려고 했기때문도 아닙니다. 그런 자료는 없습니다. 그건 패망을 눈앞에 둔 일본군이 〈성도구〉로 끌고 다니던 그 녀성들을 살려두면 자기들이 저지른 성노예범죄의 진상이 드러날가봐 그렇게 했던것입니다. 저의 견해가 틀립니까?》

김진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응대했다.

《아주 정확한 견해입니다. 이 사진들이 그에 대해서 다 말해주고있습니다.》

사진들을 다시한번 깐깐히 뜯어보던 김진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진들은 오늘뿐아니라 몇년후에도, 아니 몇십년, 몇백년후에도 호색광중의 호색광이며 야수중의 야수인 일본쪽발이들이 감행한 특대형반인륜범죄를 만천하에 고발할것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 한장한장의 사진속에 있는 녀자들의 시체는 일본군이 감행한 성노예범죄에 대한 영원한 고발자들입니다.… 그럼 조사사업에서 큰 성과를 바랍니다.》

《선생, 고맙습니다. 우리 일을 성의껏 도와주어서…》

아사꼬는 김진희와 리권진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또다시 반성의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구멍은 깎을수록 커지고 북은 칠수록 소리가 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력사의 갈피마다에 뚜렷한 일본군의 이 다대하고 더러운 행적을 과연 무슨 수로 가리울수 있으랴.

아사꼬는 이번에도 자기가 성노예녀성들의 최후에 대한 문제분석에서 《타살론》이 아니라 《자결론》에 편승하여 착오를 범할번 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권진의 방에서 나온 조사단성원들은 성안에 있는 옛날 《위안소》건물들과 일본군 등충수비대 작전본부자리, 남문밖에 있는 박순정이 끌려가있던 《위안소》자리 등을 돌아보고서야 곤명을 향해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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