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7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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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합동조사단에서는 현지편답계획에 따라 송산전역에서 일본군이 련합군으로부터 제일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는 《마쯔야마진지》의 전방지휘소자리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전방지휘소는 노강을 가로지른 혜통교로부터 서쪽으로 펼쳐진 개활지대의 한가운데 나지막하게 솟아있는 산정점에 자리잡고있었다.

중국측에서는 이날의 조사를 마음먹고 준비하였다. 삽과 곡괭이를 멘 10여명의 억대우같은 청년들로 발굴대를 무어 합동조사단에 동행시켰던것이다.

박순정도 녀의사와 김진희에게 의지하여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전방지휘소자리는 본래의 모습을 거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미련합군의 집중포화에 포대경을 설치해놓았던 야전지휘소건물은 형체도 없고 터만 남아있었다. 거기에도 이젠 아름드리소나무가 여러대 자라고있었다.

다박솔들이 꽉 덮인 자그마한 언덕뒤쪽으로 난 교통호를 따라 스무발자국쯤 가느라니 입구가 어느쪽인지 가늠할수 없는 지붕이 둥실한 방공호가 나졌다. 방공호는 마치 옛사람들이 만든 릉처럼 보였다. 주변은 호랑이가 새끼를 칠 정도로 숲이 꽉 우거져있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눈비의 닥달을 받아 방공호입구쪽에는 흙과 가랑잎이 한길이나 쌓여있었다.

과진량은 제2차 세계대전후 이 지방사람들이 포탄에 파헤쳐지고 불에 타서 벌거숭이가 된 이 지구의 여러 격전장들을 정리하면서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곳 일본군전방지휘소자리만은 미처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합동조사단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였다. 중국측 조사단에서 그 산을 현지편답의 기본대상으로 제기하고 발굴대까지 조직한것도 바로 이런 점을 보았기때문이였다.

발굴대청년들이 웃통을 벗어제끼고 곡괭이를 휘두르며 삽질을 하자 은둔생활을 하던 옛 일본군방공호가 자태를 드러냈다.

드디여 방공호입구가 열리였다. 두세사람이 동시에 나들수 있는 넓은 출입구가 생겼다.

녀의사의 부축을 받으며 박순정이 방공호입구쪽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옛날 이곳 격전장에서 겪은 일들이 생각나서인지 얼굴이 해쓱해졌다.

경증성이 큰 전지를 손에 들고 과진량과 함께 앞서 방공호출입구로 들어갔다. 그뒤로 황정식, 아사꼬, 김진희 그리고 전홍을 비롯한 여러 조사단성원들이 따라섰다.

괴괴한 정적만이 꽉 들어찬 방공호안에서는 썩은 냄새가 물씬물씬 풍겨났다. 방공호안은 산꼭대기에 있어서 그런지 생각외로 그리 습하지는 않았다.

여러개의 손전지에 커다란 충전등까지 가동을 하자 방공호안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안은 굉장히 넓고 구조도 복잡하였다.

철근을 넣고 콩크리트타입을 한 천정의 여기저기에 고드름같은 허연 석순들이 비쭉비쭉 내돋아있었다. 지하구조물로서는 보통 견고하게 만들지 않았다는것이 대뜸 알렸다.

합동조사단일행은 방공호뒤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즈렁즈렁 울리는 발자국소리에 거의 60년간을 잠자던 방공호안의 모든것들이 깨여났다.

경증성이 전지를 내비치자 방공호뒤쪽 벽면중심으로 복도와 같은 한갈래의 통로가 드러났다.

과진량이 먼저 그 통로로 들어서자 모두가 따라섰다.

통로의 좌우켠에 정방형으로 된 여러개의 방들이 나졌다.

맨 끝방 바닥에는 오물 같은것이 두둑하게 한벌 쭉 깔려있었다. 흙먼지가 두텁게 쌓인 방구석에는 녹이 쓸어 쇠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지는 철갑모와 부러진 일본군도가 나딩굴고있었다. 뒤쪽과 옆쪽의 벽체들에는 다닥다닥한 총탄자국들이 나있었다. 전방지휘소가 함락될 때 련합군군인들이 방공호안에까지 들어와 일본군에게 총탄을 퍼부은것 같았다.

각국 조사단 단장들의 합의에 따라 방공호내부와 그속에 있는 유물들에 대한 촬영이 시작되였다. 전홍은 물론 합동조사단의 다른 촬영가들도 분주하게 오고가며 방공호내부와 그속에 있는 자그마한 물건 하나도 빠짐없이 렌즈에 담았다.

내부에서의 촬영이 기본적으로 끝나자 조사단성원들은 발굴대청년들의 도움을 받으며 방공호안에 묻혀있던 유물수집사업을 시작하였다.

방공호뒤쪽 복도 맨 끝방에서 황정식과 경증성, 과진량과 아사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굴대의 2명의 청년들이 바닥에 한벌 쭉 깔린 오물더미 같은것을 삽으로 조심조심 헤집었다. 전홍을 비롯한 촬영가들은 그 장면도 놓치지 않고 렌즈를 들이댔다.

덧쌓인 세월의 껍질을 쭉 벗긴 오물더미에 여러개의 전지불이 모아졌다.

경증성이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말하였다.

《여긴 고위급장교들이 쓰던 침실같구만.》

일리가 있는 주장이였다. 찬찬히 살펴보면 방안의 맞은켠 벽체아래바닥에는 침대높이의 정도로 빈 포탄상자들이 반듯하게 쌓여있었고 그우에는 다 삭아 부스러지는 군용모포가 아직도 옛 모습대로 쭉 깔려있었다. 지금은 포탄상자나 그우에 깐 군용모포가 다 썩어 주저앉았지만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했다. 더우기 그속에서 썩어서 화석처럼 된 일본군좌급장교의 견장까지 나오는것을 보아 몇몇 고위급장교들이 리용하던 침실이라는것이 어렵지 않게 짐작되였다.

조사단성원들은 방공호안에서 여러구의 해골만 남은 시체를 비롯하여 권총, 보총, 수류탄, 군도, 철갑모, 탄피, 군용밥통, 군화, 혁띠고리, 단추, 손칼, 상아물부리, 철담배갑, 견장과 같은 일본군의 유물들을 수많이 수집하였다.

유물들은 발굴되는족족 방공호앞의 널다란 공지에 펴놓은 백포우에 하나하나 진렬되기 시작하였다.

과진량이 웃으며 말했다.

《허, 이거 오늘은 대단한 횡재를 하는데…》

《이따위 일본쪽발이들의 잔해나 다 썩은 골동 같은것들이 무슨 재산이 되겠습니까.》

유물들을 정리하던 발굴대의 청년이 입을 삐쭉거리며 과진량을 쳐다보았다.

과진량이 그 청년을 가까이로 불러앉혔다.

《이보라구 젊은이, 이건 그렇게만 볼것들이 아니네. 이제 이것들이 곤명항일력사박물관 진렬대에 옮겨지면 얼마나 값나가는 재산이 되는가를 두고보게.》

청년의 입에서는 탄성이 튀여나왔다.

《옳습니다. 듣고보니 그렇구만요. 선생님, 정말 이번에 우리 청년발굴대가 팔을 걷어붙이기를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런 유물들이 땅속에 묻혀 영영 없어질번 했습니다.》

과진량이 웃음을 머금고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니야. 력사적사실을 안고있는 이런 유물은 우리 대에 발굴 못한다고 해도 어느땐가는 꼭 발굴된다네. 먼 후날 고고학자들의 손에 의해서라도 말일세.》

청년은 머리를 기웃하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될가요?》

과진량은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했다.

《똑똑히 알아두게. 인간이 존재하는 한 력사는 절대로 인멸되지 않는 법이라네.》

《선생님, 오늘 정말 많은걸 배웠습니다.》

청년은 벌쭉 웃으며 허리를 굽석했다.

이날 합동조사단 성원들의 시선을 모은것은 고위급장교들의 침실로 확인된 방공호의 맨 뒤쪽방에서 발견된 두사람분의 해골이였다. 뼈들은 탄약상자로 만든 야전침대 한쪽에 두툼한 흙먼지를 들쓴채 뒤엉켜있었다. 신체의 구조에 맞게 뼈들을 조립해보니 하나는 허우대가 큰 남자의 유골이였다. 다른 하나는 눈에 알릴 정도로 뼈들이 연약하였는데 골반이 넓은것을 보아 녀자의 유골이 확실했다.

소자영이 자기의 견해를 내비치였다.

《그러니 전방지휘소가 함락될 때까지도 이 미상의 일본군장교는 야전침대우에서 성노예녀성을 품고있었다는건데… 정말 상상밖입니다.》

《소자영선생의 추측이 명중한것 같습니다.》

황정식이 이렇게 긍정해주자 경증성과 과진량도 동감을 표시했다.

조사단성원들은 방공호입구 안쪽에서 종이뭉테기 같은것을 불태워버린 흔적도 발견하였다.

흙에 깊숙이 묻힌 그 재무지를 삽으로 헤쳐보니 맨 밑바닥에서 한쪽면이 불을 맞아 조글조글해지고 다 삭아 너덜너덜해진 가죽가방 하나가 나왔다. 어느 장교가 사용하던 전투가방이 분명했다.

전투가방을 제일먼저 발견하고 손에 집어든것은 아사꼬였다.

가방뚜껑을 제끼던 그는 긴장해졌다. 가방속에서는 삭을대로 삭아집으면 부스러지는 군사지도 한장과 자그마한 수첩이 하나 나왔다.

꽁다리연필도 몇개 나왔다.

아사꼬는 호기심을 가지고 수첩부터 손에 들었다. 수첩의 아래부분은 불에 타서 3분의 1정도가 없어졌다. 그통에 아쉽게도 수첩임자의 이름도 없어졌다. 일본군장교가 사용하던 수첩인것만은 틀림없었다.

수첩장들에는 깨알같이 박아쓴 일본글자들이 희미하게 살아있었다. 수첩장을 몇장 넘기던 아사꼬는 환성을 지를번 하였다. 어느 한 장교가 애용하던 일기장이였던것이다.

아사꼬의 주위에 황정식과 경증성, 과진량을 비롯한 합동조사단성원들이 우르르 몰켜들었다.

수첩에는 주인이 짬짬이 써넣은 당시의 시대상과 송산격전의 정황을 가늠할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 수없이 나왔다.

그중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소화16년(1941년) 5월 3일 동북 할빈에서.

오늘은 기분이 꽤 좋다. 대대참모 하라 데쯔이의 지시에 따라 나는 그와 함께 〈관특연〉(관동군 특별연습의 략칭)에 동원될 쵸센삐들이 집합되여있는 할빈역앞 군인대기소로 갔다. 하라는 이번 〈관특연〉에 쵸센삐 2만명 동원된다고 했다. 나는 군인대기소 독방에서 하라의 허가밑에…》

그 아래글들은 불에 타서 없어져버렸으므로 더 읽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것이 상상되였다. 수첩소유자가 중국 동북지방에서 관동군에 복무하면서 1941년 《관특연》으로 불리운 대쏘침공준비를 위한 군사훈련참가자였다는것도 알수 있었다.

다시 수첩장을 번지던 아사꼬는 눈이 뎅그래졌다.

《소화18년(1943년) 4월 7일 송산에서.

진지구축작업을 일찍 마치고 이시하라를 비롯한 동향친구들과 제비뽑기를 했다. 진지에서 좀 떨어진 진안가에 있는 영기네 집(〈위안소〉)으로 나들수 있는 순서를 정하는 놀음이였다. 매번 이시하라가 이겼다. 벙글거리는 이시하라에게 나는 〈색광이, 거기에 콱 빠져죽어라!〉 하고 말했…》

《소화18년(1943년) 12월 3일 송산에서.

오늘도 중대는 전방지휘소뒤쪽에 군전용영기들의 집건설작업을 했다. 진지에서 좀 떨어져있는 영기네 집(〈위안소〉)까지 오가는것은 련합군의 장거리포사격때문에 곤난이 크다는 우리 장교들의 의견제기가 효력을 낸 덕이다. 중대군인들은 사기가 나서 두채의 집을 제꺽 지어놓았다. 이제는 영기만 오면 된…》

《소화19년(1944년) 6월 12일 송산에서.

포탄과 폭탄이 전방감시소를 들부신다. 숱한 사상자들이 났다. 동향친구 이시하라가 먼저 천당에 갔다.

그런데 전투가 한창 격렬해지고있는 때에도 전방감시소 방공호안에서는 눈에 드는 영기들을 그러안고 돌아가는 고위급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위급들은 련대부에 있던것들이다. 더러운 작자들이다. 사병들은 진지사수를 위해 목숨을 내대고 결사전을 하는데 영기들과 맞붙어 돌아가…》…

수첩을 쥔 아사꼬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안경속의 눈확에서는 경련이 일었다.

전홍이 아사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사꼬상, 그렇게 수첩을 손에만 쥐고있으면 촬영기를 멘 사람들은 곤난하지 않습니까?》

아사꼬가 제꺽 인상을 달리하며 웃었다.

《아, 그렇지.… 자, 이젠 촬영을 하세요.》

방공호앞 유물들이 진렬된 곁에 자그마한 앞상이 놓여졌다.

그우에 놓인 일본군장교의 전투가방과 지도, 연필 그리고 수첩은 촬영기들에 포착되여 력사기록으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촬영가들은 수첩장을 한장한장 번지며 거기에 렌즈를 들이댔다.

아사꼬는 앞상우에 놓인 미상의 장교가 리용하던 일기수첩과 그곁의 백포우에 진렬된 갖가지 유물들을 생각깊은 눈길로 둘러보았다.

정말 기가 찬노릇이로구나. 거짓을 모르는 저것들이야말로 일본군성노예제도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입없는 반증자들이 아닌가!…

이날 방공호안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바라보던 황정식은 중국측 조사단 단장 경증성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경선생, 오늘 중국측에서 청년발굴대까지 동원시킨 덕에 소득이 대단합니다. …이번에 3개국합동조사단은 군성노예제도의 실체를 꿰지고 낡아빠진 〈히노마루〉자락으로 가리우면서 일본군에 〈위안부〉제도가 없었다고, 만일 있었다면 그것은 민간업자들의 행위라고 뻗대며 갖은 오그랑수를 다 쓰는 일본우익지배층의 궤변을 짓부셔버릴수있는 충분한 사실자료들을 발굴고증하였습니다.》

경증성도 사람좋게 웃으며 응대했다.

《옳습니다. 이번에 3개국조사단 성원들이 소문없이 정말 큰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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