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7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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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판은 난셈이다. 력사의 구김살속에 숨겨져 보일락말락하던 남경과 송산, 등충과 라시오 등 전서지역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저지른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진상은 인류의 량심이라는 하얀 백지장우에 악취를 풍기며 드러났다. 바늘귀로는 하늘을 보지 못한다고 했지만 인류량심은 박순정이라는 《바늘귀만 한 구멍》으로 일본군성노예제도를 속속들이 들여다볼수 있게 되였다.

이로써 성노예생존자와 동행하는 3개국합동조사단의 10여일간에 걸치는 현지조사는 막을 내릴 때가 되였다.

하지만 아사꼬에게는 마감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기가 그때까지 내놓지 않은 몇장의 사진을 박순정, 리창조에게서 확인받는 일이였다. 그래서 마감날 리창조를 다시 곤명호텔로 데려왔다.

조사단성원들이 둘러앉은 속에서 아사꼬는 그 사진들을 꺼내들었다.

《박상,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아사꼬가 박순정앞에 내민 사진은 안경을 낀 얼굴에 주름이 많은 현재의 히로미의 독사진이였다.

돋보기를 꼈다벗었다 하던 박순정은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끝끝내 알아보지 못한것이였다. 리창조도 마찬가지였다.

아사꼬는 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위구심을 느꼈다.

혹시 그럼 다른 사람?… 그러나 인차 생각을 돌렸다.

아니야,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그럴수 있지.

아사꼬는 다른 사진 한장을 또 내보이였다.

《그럼 이 사진은 생각나십니까?》

박순정의 눈이 커졌다.

《으응? 이…이건 히로미요!-》

《맞소. 히로미요!-》

두 로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며 거의나 동시에 탄성을 올리였다.

그 사진은 일본군사병복에 각반을 두르고 찍은 초년병시절의 히로미 독사진이였다. 송산진지에 있을 때 찍은것이라고 한다.

사진을 집어든 순정의 손이 가늘게 떨리였다.

《아직도 이런 사진이 남아있었구먼.》

리창조는 일본군사병복을 입은 히로미의 사진을 손에 들고 대화라도 하듯 《히로미-》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아사꼬는 머리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사꼬는 박순정의쪽으로 돌아앉으면서 첫번째로 내보였던 사진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박상, 다시한번 보세요. 지금 일본에 생존하고있는 히로미상입니다.》

박순정은 사진을 구체적으로 뜯어보고나서 이렇게 응대했다.

《그렇소?… 음, 알고보니 눈에 익구만. 하긴 우리가 이렇게 늙어 귀신꼴이 됐는데 이 사람이라고 늙지 않을가.》

히로미의 현재 모습을 찍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리창조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보다 한살우인데 그래도 그닥 늙지는 않았어.》

아사꼬는 히로미가 먄마의 꽌히오에서 입은 부상으로 일생 독신으로 살면서 말년에는 환자밀차신세를 지고있는데 대하여 이야기한 후 또다시 가방속에서 2장의 사진을 꺼냈다.

한장은 이미 평양에서 박순정에게 보여 확인받은 4명의 성노예녀성들이 산경사면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있는 그 사진이였다.

아사꼬는 그 사진을 리창조에게 내밀었다.

《이 4명의 녀성들이 기억에 있습니까?》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던 리창조가 머리를 끄덕거리였다.

《아, 아, 이 사람과 이 사람은 본 기억이 있소. 그리고 여기 서있는건 박순정이고… 참,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리창조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꾹꾹 찍었다.

아사꼬는 다른 한장의 사진을 손에 쥔채로 순정을 한참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상이 이 사진을 보면 기분이 나쁠수 있겠는데…》

아사꼬가 주저하며 선뜻 내놓지 못하는 사진은 성노예인듯 한 몇명의 녀성들이 발가벗기운채로 앉아서 머리를 수그리고있는 장면을 찍은것이였다. 얼굴들은 옆모습만 약간 나타나 누가 누군지 분간키 어려웠다. 본인들이 아니면 그속의 인물들을 가려볼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사진이였다. 지난해 전홍이 중국의 일본군성노예연구쎈터에 있는 자기의 5촌벌 되는 사람한테서 복사해온것이였다.

이 사진의 발굴경위에도 기담 같은것이 담겨있었다.

일본군이 운남지구를 강점하기 전에는 등충에 2층짜리 사진관이 하나 있었다. 그 사진관이 바로 며칠전 조사단성원들이 리권진을 만나러 갔을 때 들려보았던 《위안소》자리였다. 당시 그 사진관을 운영한 사람이 바로 후날 자기 5촌형의 장인으로 된 웅씨성을 가진 사람의 부친이였다.

1942년에 운남성을 다 먹어치운 일본군은 송산과 등충지구에 요새화된 진지들을 구축하는 동시에 쓸만 한 건물들을 빼앗아 군《위안소》를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일본군이 등충으로 쳐들어올 때 웅씨네 집 사람들은 가산을 버려둔채 식구들만 깊은 산속으로 피난갔다.

그후 그 지역에서 일본군이 전멸된 후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에서 쓰던 사진기나 사진현상기재들은 죄다 일본군이 가져가고 집뜨락에는 성노예녀성들이 입던 옷가지들과 일본군이 쓰다버린 피임고무주머니 같은것들만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그사이 일본군은 그들일가가 살림집으로 겸해쓰던 2층짜리 사진관을 《위안소》로 리용하였던것이다.

어느날 7살 난 집의 큰아들이 집추녀밑에 있는 새둥지를 들추다가 굴뚝옆 담벽에 구멍이 펑 뚫린것을 보게 되였다. 그속에 새알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구멍속에 손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새알이 아니라 뜻밖에도 사진필림이 들어찬 자그마한 마분지통이 나왔다. 필림토리를 풀어 해빛에 비추어보니 녀자들이 발가벗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가 그것을 가져다 보이자 아버지는 눈을 부릅떴다.

《어데서 났어?》

《새를 잡으려고 저기 벽에 난 구멍속에 손을 넣었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빼앗아 집 웃방의 어느 구석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후 모두 그 일을 감감 잊고있었는데 1986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 그 필림을 발견했다고 한다.

필림은 아들이 일본군성노예연구쎈터에 있던 자기의 매부에게 넘겨주었고 결국 전홍의 손을 거쳐 나중에는 아사꼬의 손에까지 들어왔던것이다.

아사꼬는 운남신문기자 리권진을 만나러 등충에 갔을 때 그 사진을 옛날 일본군《위안소》옆에서 살았다는 수염이 허연 로인에게 조용히 보여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은 일본군이 성노예들에게 적용한 처벌장면을 찍은거요. 저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이렇게 했지.》

어렸을 때 《위안소》에서 심부름군노릇을 했다는 그 로인은 그때 일본군사진사가 이런 장면의 사진을 찍는것을 여러번 목격했다고 하였다.

아사꼬는 문제의 사진을 박순정앞으로 가져갔다.

《박상, 기분이 나빠도 좀… 여기에 혹시 알만 한 사람이 없는지…》

사진을 뜯어보던 박순정의 볼편이 씰룩거리기 시작하였다.

아사꼬와 조사단성원들도 귀를 도사리며 순정의 입만 바라보았다.

이제 어떤 말이 나올것인가. 그런데 전혀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난 모르겠소. 더 묻지 마오!-》

박순정의 입은 다시 꽉 다물리였다. 얼굴에서는 전에 보지 못한 노기가 짙게 서리였다.

곁에 앉은 리창조가 옹색한 표정을 짓고 아사꼬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젠 그만하자는 뜻이였다.

내가 너무했구나. 히로미오빠도 박순정을 노엽히거나 괴롭히는 언행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사꼬가 자기를 타매하며 《미안합니다. 이젠 그만합시다.》라는 말을 막 쏟아놓으려고 하는 그 순간이였다.

박순정은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손가락으로 사진속의 녀성을 짚으며 말했다.

《이들은 나와 같이 〈위안소〉에 있던 녀자들이였소.…》

박순정의 주위에 몰켜섰던 조사단성원들이 술렁거리고 촬영기들이 번쩍번쩍 섬광을 일으켰다.

아사꼬는 사진속의 녀성들이 박순정과 함께 있던 성노예들이였다는것을 확인한 사실을 두고 기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회가 막심했다.

내가 너무했어. 너무했어! 나도 보기조차 부끄러운 그런 사진을 그의 눈앞에 내대고 확인하자고 했으니… 같은 녀성으로서 사실 이렇게 하는건 지나치지.…

아사꼬는 머리를 떨구었다.

그는 박순정을 마주볼수가 없었다. 치욕을 당하던 그 나날을 또다시 련상해보며 속으로 통곡하고있을 박순정,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채 사진기렌즈앞에 세워진 《성도구》들을 바라보며 최대의 희열을 느꼈을 호색한들!…

갈수록 험산이라고 파면 팔수록 아사꼬로서는 도저히 쉽게 납득되지 않은 상상밖의 실체들이 자꾸 드러났다. 그런것들까지 구체적으로 해명하자면 시간이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아사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계획했던 3개국 합동조사를 일단락 지었으니 이제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였다. 그가 예약해놓은 곤명에서 일본의 나리다비행장으로 직행하는 려객기의 리륙시간도 가까와왔던것이다.


×


3개국합동조사단 성원들은 뻐스에 올라 곤명비행장으로 갔다. 아사꼬와 전홍을 바래주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항공역사앞에서 아사꼬는 박순정의 두손을 꼭 잡고 몇번이나 사의를 표했다. 그러다가 《아, 이 정신 좀 보지.》 하며 손에 들었던 트렁크를 열었다.

아사꼬는 트렁크의 제일 밑바닥에서 잘 포장된 세벌의 애기옷을 꺼내들었다. 곁에 있던 전홍이 《역시 아사꼬상은… 난 왜 저런 생각을 못했나.》 하며 하얀 이발을 드러내고 더수기를 긁적이였다.

아사꼬는 박순정의 손에 애기옷을 쥐여주며 머리를 숙이였다.

《박상, 병약하고 년로하신 몸으로 가슴저린 과거가 묻혀있는 만리가 넘는 길을 편답하면서 많은것을 깨우쳐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요. 그리고 증손녀의 출생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애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가슴속의 한을 다 푸는 그날을 보기 위해서도 부디 오래오래 앉아계시기를…》

《고맙소.》

박순정도 머리를 끄덕이며 아사꼬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아사꼬는 김진희와도 다정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김선생, 모든걸 너그러이 생각해주세요. …그럼 도꾜에서 열리게 될 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 다시 만나요.》

그는 황정식과 경증성의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많은 방조를 주어 정말 고마와요.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나자신으로서는 계몽이라고 할가, 도저히 리해가 되지 않던것들을 납득하게 되였어요. 특히 일본이 패망한지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 조중인민들의 반일감정이 왜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더해만 가는가 하는데 대해서도 똑똑히 알게 되였어요. 잘못은 다 우리켠에 있지요. 지난날에는 우리 선배들이 잘못했고 오늘에는 우리 정부가 또 그우에 잘못을 덧쌓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나로서는 난감한 일들을 적지 않게 당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지만 수양의 기회로 삼고 깊이 머리숙여 사죄합니다. 우리 일본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옳다고 하던 나같이 편애한 생각을 가지고있는 수천수만의 일본국민들을 대신하여 머리를 숙입니다.…》

작별인사치고는 너무도 심각하고 의미심장하고 장황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사꼬는 심중의 말을 다 쏟아놓고서야 비행장개찰구로 향했다.

나리다행 려객기안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아사꼬와 전홍의 눈앞에서는 뜨겁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던 박순정과 리창조 그리고 여러 조, 중조사단 성원들의 모습이 점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구름속을 누비며 날으는 려객기안의 좌석에 몸을 내맡긴채 눈을 감은 아사꼬의 귀전에서는 황정식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일으켰다.

《이번에 3개국합동조사단은 군성노예제도의 실체를 꿰지고 낡아빠진 〈히노마루〉자락으로 가리우면서 일본군에 〈위안부〉제도가 없었다고 뻗대며 갖은 오그랑수를 다 쓰는 일본우익지배층의 궤변을 짓부셔버릴수 있는 충분한 사실자료들을 발굴고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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