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8장 증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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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꼬는 련일 밤늦게까지 자기의 법률사무소에 들어박혀있었다. 그사이 미진된 업무를 보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꾜로 온 다음날 히로미오빠에게 문안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사무실에 잠간 들린 후로는 나흘째 노상 자기 사무실에만 붙어있었다.

아사꼬의 사무탁 한쪽옆에는 그간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되여 중국의 남경과 송산전역을 편답하면서 걷어쥔 조사자료묶음과 록음테프, 사진필림들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언제 그것을 정리할 사이가 없었다. 당장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제출할 문건부터 작성하여야 했던것이다.

그날 저녁 업무보충을 끝내고난 아사꼬가 한숨을 돌리며 안락의자에 몸을 던졌을 때였다.

책상우에 놓아둔 손전화기가 삑삑거리면서 소란을 피웠다. 전화기를 집어들고 현시판을 보니 문부성의 이찌로였다.

거마리같은 작자로군… 아사꼬는 손전화기의 전원을 아예 꺼버릴가 하다가 생각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아사꼬상, 이찌로가 문안합니다. 원로에 쌓였던 피로를 기본적으로 푸시였으리라 봅니다.》

버릇처럼 하는 꿀바른 이찌로의 인사말에 닭살이 돋아난 아사꼬는 퉁명스레 내뱉았다.

《그런데요.》

이찌로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아사꼬상, 무슨 인사가 그렇습니까?》

아사꼬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과장님, 이 늙은이는 원체 그렇게 막돼먹어놔서…》

아사꼬가 정면으로 마구 비틀어대자 이찌로는 낮추붙었다.

《아, 아, 아사꼬상. 당신이 막돼먹다니요. 자꾸 그렇게 엇드레질을 하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한번 만납시다. 이번 3개국 합동조사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좀 들어볼겸…》

이찌로가 말투를 바꾸었지만 아사꼬는 그냥 들이댔다.

《과장님, 내 좀 물읍시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문부성의 당신 발밑에 있는 부하로 아는게 아니요? 난 엄연히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공동대표이고 이번에 3개국 합동조사에도 련합대표의 자격으로 참가한겁니다.》

《아, 그야 그렇지요. 난 그저 우리가 막역지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겁니다.》

아사꼬는 막역지우라는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여보시오. 과장님, 나에게는 당신과 같은 막역지우가 있어본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겁니다. 그리 알고 그만합시다. 난 지금 몸이 불편하여 래일부터 한 보름간 온탕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겠어요. 그럼 안녕!》

아사꼬는 전화기의 통화차단건반을 눌렀다. 자기가 몇달전까지도 저런 철면피한들에게 속히워 꼭두각시놀음을 할번 했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 씩씩거리였다.

속과 겉이 다른 위선자! 흥, 그런 주제에 아직도 《민간업자책임론》?… 철따구니가 없는 시러베자식…

아사꼬는 곤명에서 현지편답을 할 때에도 장거리전화로 이찌로가 이래라저래라 삿대질을 하자 이 비슷한 말로 핀잔을 준 후 그와의 일체 전화대화를 거절하였던것이다.

전홍과 함께 나리다비행장에 내리던 날에도 항공역앞에서 이찌로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때 아사꼬를 마중한답시고 번대머리공동대표와 함께 항공역사에서 대기하고있던 이찌로는 아사꼬를 만나자 늘 써먹던 인사말투를 바꾸어 이렇게 너덜거렸다.

《만여리를 무사히 빙 돌아온 부메랑들을 환영합니다.》

이찌로의 말재간에 억이 막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껌벅거리던 아사꼬가 제꺽 내뱉았다.

《미안하지만 나나 전홍상은 당신들이 날린 부메랑이 아니라는것을 명심하는것이 좋겠어요.》

아사꼬는 곁에 선 전홍에게 재촉하였다.

《전홍상, 우린 갈길을 갑시다.》

이찌로가 몇발자국 따라서며 사정하듯 소리쳤다.

《아, 아니. 아사꼬상!-》

그날 아사꼬가 아들과 귀여운 손자, 손녀의 마중을 받고 전홍과 함께 승용차에 오르는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이찌로와 번대머리는 쓴입만 다셨다.…

며칠후 아사꼬는 손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텔레비죤수상기에 마주앉았다. 인기뉴스를 방영하는 시간이 되였던것이다.

푹신푹신한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죤화면을 응시하던 아사꼬는 이제부터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상이 보내온 특집물을 방영하겠다는 방송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긴장한 몸가짐으로 주시했다.

아니, 그럼 그 《부덕쥐》가 벌써?…

아사꼬의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위안부〉사진이 말해주는 심각한 력사》라는 제명이 나타난 후 이번 3개국합동조사단의 활동장면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는 80고령이 다된 일본군성노예생존자 박순정이 자기의 치욕스러운 과거가 산재되여있는 남경과 송산전역으로 현지편답을 하는 장면들이 비쳐졌다.

내용별로 구색이 맞게 박순정이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 시절에 남긴 여러장의 사진들과 이번 현지조사과정에 중국 등충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새로 입수한 수십매에 달하는 사진들도 편집되여 화면을 꽉 채웠다.

특집물을 해설하는 녀방송원의 목소리도 상당히 흥분되여있었다.

전홍이 만든 텔레비죤특집물은 가장 믿음직한 사실자료인 사진을 기본으로 엮었기때문에 지난 시기 일본군에 성노예제도가 없었다고 우기던 일본정부를 완전히 수세에 몰아넣고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뒤흔들어놓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했다.

아사꼬는 흥분하였다. 지금 이 편집물을 시청하는 우리 일본사람들의 반향은 얼마나 클것인가! 국가를 운영한다는 각료들이 받은 충격은 또… 전홍이 늘 외우는것처럼 사진이란 원래부터 거짓과 담을 쌓은, 진실을 전제로 하여 력사의 순간순간을 영상으로 고착시킨 더없이 솔직하고 더없이 위력한 력사적증거물이다. 그러니 누가 이런 력사적사실을 부정할수 있겠는가. 아마 이찌로와 같은 작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것이다.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부덕쥐》는 역시 난 인물이야. …

아사꼬는 전화기를 들었다. 《부덕쥐》가 나왔다.

《축하해요. 전홍상, 난 지금 당신이 엮은 인기뉴스특집물에 박수를 보내고있는중이예요.》

《감사합니다. 고명한 아사꼬상이 이렇게 과찬해주시니 미숙한 졸작을 성급히 내놓은 나로서는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야 할지… 하긴 큰 배는 천천히 떠난다고 이제 아사꼬상이 더 굉장한걸 내놓아 세간을 흔들텐데요. …》

《아니, 사실 난 좀전까지도 좌왕우왕했어요. 그래서 이번 합동조사과정에 수집한 자료들이 지금도 사무탁우에 그냥 놓아둔채로 있고… 물론 미진된 업무가 있었지만 실지는 이찌로의 회유와 강박 특히는 히로미오빠의 간절한 당부도 있고 해서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던거예요.》

《가만, 아사꼬상! 중도에서 말을 자른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히로미상의 간절한 당부란 뭡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와 자기네 중대장에 대한 이야기는 공개하지 말아달라는거예요.》

《허 참, 그 늙은이의 속은 왜 그리 좁습니까? 이미 오래전에 있은 력사적진실에 대한 공개를 반대하니…》

《아마 오빠는 자기의 행적과 관련된 사실들이 알려지는것이 불편해서 그러는거겠지요. …전번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바람으로 오빠한테 가서 문안도 드리고 이번 현지조사과정에 발굴고증한 〈위안부〉관련자료에 기초하여 편답기형식의 책을 쓰겠다고 했더니 심각해져서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로 넣지 말라고 당부하더군요. 사실 그 부분이 빠지면 책이 제대로 안되지요. 그래서 지금껏… 하지만 이제는 결심이 섰어요. 오빠를 내가 잘 리해시키겠어요. …하여튼 이번에 당신은 자기의 히트작을 가지고 이 아사꼬가 어떤 글을 써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선을 그어주었어요. 많은 시사를 받았어요. 정말 고마와요. 앞으로 더 훌륭한 인기뉴스를 기대해요. 안녕!》

아사꼬는 실지 전홍이 편집한 텔레비죤특집물을 보고서야 자기가 이제 어떤 자료들을 어떤 방향에서 묶으며 앞으로 어떤 책을 써내야 하겠는가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가질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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