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8장 증 인


4


아사꼬는 구루메로 갔다. 자기 고향이여서 간것은 아니였다.

구루메에는 운남격전당시 등충수비대에서 중대위생병으로 복무하던 요께찌라는 로인이 살고있었다. 히로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등충에서 전멸된 3 000여명의 일본군가운데서 살아남은 몇명중의 한사람이라고 한다.

(위생병으로 복무했다고 하니 《위안부》들의 생활에 대해 들을 소리가 많을것이다. 그의 입을 통하여 이번 편답과정에 발굴한 군《위안부》자료들에 대한 확증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 일본법률가협회에 제출할 기소문에도 등충《위안소》에 대한 부분이 좀 허약하다. 빨리 그를 만나 자료를 묶자.)

아사꼬는 이런 생각을 안고 요께찌의 집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허연 턱수염을 길게 기른 키가 작달막한 로인이였다. 요께찌라는것이 대뜸 짐작되였다. 온후한 눈매를 보니 상대하기가 쉬울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밤 전화를 한 도모이 아사꼬입니다.》

《허허… 전쟁이야기를 듣고싶다고 하길래 좀더 나이가 든 어느 전우의 미망인인줄 알았소. 하여간 어서 들어오시오.》

아늑한 응접실에서 두사람이 마주앉았다.

아사꼬는 자기의 신분을 밝힌 다음 직방 기본문제로 들어갔다.

《요께찌상, 요께찌상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중국 전서지역의 등충수비대에서 위생병으로 복무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위생병이라면 군〈위안부〉들에 대한 파악도 있겠는데… 실은 〈위안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듣고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요께찌로인은 펄쩍 뛰였다.

《〈위안부〉이야기?… 아, 아니, 아니! 난 그런건 잘 기억하지 못하고있어. 싸움얘기라면 몰라도 그런 얘긴 내게 없어.… 지금이야 로친네나 딸들과 며느리, 손녀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데 그런 얘기를 안다고 해도 쉽게 입에 올릴 용기도 나지 않소.》

아사꼬는 요께찌에게 다시한번 머리를 까딱하고는 사정하듯 말했다.

《그래도 큰 기대를 가지고 댁을 찾아왔는데 다문 한두가지 이야기라도…》

잠시 입을 꾹 다물고있던 요께찌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사실 〈위안부〉얘기야 옛날 송산지역에 주둔해있던 113련대 고급참모 다께모또 겐지상이 잘 알고있지.…》

아사꼬는 깜짝 놀랐다.

《네-에? 겐지라구요?》

요께찌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법률가선생도 그를 잘 아오?》

《아니, 이름만… 요께찌상, 당신은 겐지가 생존해있을 때 그와 가까운 사이였겠지요?》

《생존해있을 때? 허허허… 다께모또 겐지상은 지금도 살아있다오.》

순간 아사꼬는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소리를 내지르지 않은게 다행이였다.

아사꼬는 널뛰듯 하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

《그가 지금 어데서 살고있습니까?》

로인은 흔연히 대답하였다.

《그의 집은 여기서 멀지 않은 히띠라는데 있소. 겐지상은 아마 89살이 되였을거요. 다섯해전에 후처로 얻었던 로친을 먼저 보내고 지금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데리고 살고있다고 하던데… 사실 난 겐지상과 친분관계야 없지. 겐지에 대해 밑바닥까지 잘 아는 사람은 몇해전까지 교또대학 의학부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다께다라는 사람이였소. 그는 전쟁때 겐지와 함께 중국의 남경과 송산에서 군복무를 했으니까.… 나도 다께다상의 말을 통해 겐지라는 사람을 좀 알게 된거요.》

아사꼬의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튀여나왔다.

《다께다라면 그때 군의관을 하던?…》

요께찌는 머리를 끄덕거리였다.

《그래, 그래. 바로 그 다께다요. 법률가선생도 그에 대해 좀 아는것 같구만. 허허…》

아사꼬는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이런?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떨어지는구나. 내가 여기로 오길 잘했다. 이제는 다께다를 만나야 한다.…

《요께찌상, 정말 고맙습니다. 이젠 됐습니다. 나에게 다께다상이 살고있는 집주소를 좀…》

요께찌는 손을 내저었다.

《아아, 너무 덤비지 마시오, 다께다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지난해에 작고했소.…》

아사꼬는 맥이 풀렸으나 요께찌를 통하여 다께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욕심만은 버리지 않았다.

결국 화제는 다께다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졌다.

《다께다상에 대해서야 내가 잘 알지. 나와 다께다상은 운남격전후 곤명에 있는 중미련합군 포로수용소에서부터 서로 낯을 익혔소. 종전이 된 다음 거기서 풀려나와 귀국한 후 다께다상은 입대전처럼 다시 교또대학 의학부에서 교편을 잡았고 나는 그 대학 학생으로 입학하여 그의 강의를 받았소. 그때 그는 중국 전서지역에서 같이 싸운 전우라는 의미에서 나와 각별했소. 때로 마주앉아 마사무네를 나누기도 했지. 그는 속에 몇잔만 들어가면 남경과 송산일대에서 당하고 목격했던 일들에 대해 한담삼아 말하기도 했고 특히 함께 있던 다께모또 겐지에 대한 얘기를 적지 않게 했지.… 참, 그때까지도 다께다상은 겐지가 송산진지에서 〈옥쇄〉한줄로만 알았댔소. 그런데 겐지가 펀펀히 살아있고 그후에는 그가 참의원 의원으로까지 당선된걸 알게 되였던거요. 참, 운명이란 묘한거요. 꼭 살아있을것 같은 사람은 죽어버리고 영낙없이 죽었을것이라고 했던 사람은 살고… 그래서 다께다상이 겐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것 같기도 하고… 겐지에 대한 이야기중에는 기담같이 흥미있는것들이 적지 않소.》

아사꼬는 의자를 끄당겨 로인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요께찌는 담배를 피워물더니 아사꼬를 쳐다보았다.

《이건 겐지의 기질에 대한 얘기인데 한번 들어보시오.》

호기심이 바싹 동한 아사꼬의 귀는 항아리만 해졌다.

로인은 혹시 다른 사람들이 듣지나 않나 해서 아래웃방을 쭉 돌아본 후 다시 자리를 잡고앉아 입을 열었다.

《그게 송산수비대가 중미련합군에 완전히 먹히우던 1944년 9월중순쯤 되였을거우다. 그때 련합군과 격전을 벌리다가 포로될번 하였던 겐지는 광주로 도망쳐갔다고 하더군. 광주에 친척벌되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소. 겐지는 그 친척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홍콩인가 어덴가 가서 제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고 하더군. 그걸 밑천으로 하여 1946년도인가 1947년도에 일본으로 귀국한 후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한쪽다리를 잃은 본처를 내버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퍽 아래인 후처를 맞아들였다는거요. 그때 후처한테서 아들을 보았다고 합디다.… 당시 패전하고 돌아온 일본남정들은 대체로 타락해버리거나 주눅이 들어 집안에 들어박혀 살았는데 겐지는 그렇지 않았소. 후처까지 맞아들이고 무슨 기업을 하면서 돈을 곽지로 긁어모았다고 하더군. 그걸 밑천으로 그후에 참의원 의원자리에까지 게바라올랐다는거요.…》

아사꼬가 요께찌에게 물었다.

《겐지가 후처에게서 아이를 본것이 언제쯤 됩니까?》

요께찌는 생각을 굴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다께다상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1948년생이라고 하던지… 사실 그 시기로 말하면 련합군사령부에서는 도죠를 비롯한 일본군부의 우두머리들은 물론이고 겐지와 같은 장교들도 다 잡아들여 조사를 하고 국제전범자재판을 하던 때인데 버젓이 후처를 맞아들이고 아들까지 보았다더군.》

로인은 여담삼아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듣는 아사꼬는 몹시 심각해졌다.

그러니 중국의 남경과 송산, 먄마의 라시오전역에서 호색마귀로, 살인마로 불리우던 겐지가 사지판에서 도망을 친 후 일본에 와서 본처를 차버리는 비렬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그 다음에는 제 마음대로 후처를 껴안고 돌아갔다는건데 역시 인간이 되기를 그만둔 짐승이야!… 겐지가 생존해있다는 사실을 조선에 있는 박순정이나 중국 안순에서 살고있는 호영란이 알게 된다면 당장 일본땅으로 달려와 그의 낯짝에 침을 뱉고 멱살을 쥐자고 할거야!… 더러운 겐지!…

요께찌로인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사꼬를 보기가 딱했던지 《법률가선생, 우리 그런 시시한 얘기는 그만하고 전쟁이야기나 하자구.》 하면서 아사꼬를 집 뒤뜰로 이끌었다.

정갈하게 꾸려진 뒤뜰가운데는 거무스레한 대리석비가 세워져있었다. 일반가정들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것이였다.

대리석비 웃쪽에는 《등충옥쇄전사비》라는 큼직한 글이 새겨져있었다. 그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소화19년(1944년) 9월 14일 먄마원정군 등충수비대 3 000여명은 중미련합군의 맹렬한 포위공격을 받고 악전고투끝에 전사했다는 내용과 이 전투에서 기이하게 살아남은 한 륙군위생병 요께찌가 전사자들을 잊지 못해 1987년에 비를 세웠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아사꼬는 전 일본군복무자인 이 로인이 무엇때문에 이런 비석을 자기 집 뒤뜰에 세웠으며 또 자기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는가를 처음에는 리해하지 못하였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데 대한 복수심에서 출발한 행위인가? 아니면?…

아사꼬의 심중에서 이런 생각이 배회할 때 로인이 입을 열었다.

《전쟁이란 도깨비들이 하는짓이야. 〈대동아성전〉이라는게 두번다시 되풀이되여선 안되지. 사실 히로히또나 도죠가 목터지게 부르짖은 〈대동아성전〉이란것두 개꿈에 지나지 않아. 난 그걸 후대들이 똑똑히 알라고 내 집뜨락에 이런걸 세웠소. 이 비가 전쟁에 대해 다 말해주고있소. 그때 우리 일본이 너무 우둔했단 말이요.》

정말 요께찌의 입에서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잘 흘러나왔다.

로인은 부나비날개같은 눈섭을 쭝긋하더니 물었다.

《법률가선생, 선생은 중국대륙지도를 볼 때면 뭐 생각되는게 없소?》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로인은 방안으로 들어가 책장에서 세계지도첩을 뽑아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시아주지도를 펼쳐들었다.

《물론 나라들의 땅덩어리가 생긴 형태에 따라 먹거나 먹히우는 문제가 결정된다는것은 아니지만 이 중국대륙의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오. 이 모양이 꼭 큰닭과 비슷하지 않소? 반면에 여기에 있는 우리 일본땅은 그 닭의 부리앞에 놓인 먹이감 비슷하고… 선생도 눈앞에 닭과 먹이감을 그려보면서 우리 일본이 중국을 먹어치우려고 벌린 전쟁에 대하여 좀 생각을 해보시오. 허허허… 쬐꼬만 먹이가 닭을 잡아먹으려 했으니… 허 참…》

아사꼬는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요께찌상, 〈위안부〉에 대한 문제인데 미안한대로 한두가지만 물읍시다. 그때 등충수비대관할하에 〈위안부〉들이 대체 몇명이나?…》

《조선, 중국, 필리핀 등 각지에서 한 200명가량 왔던것 같소. 그중에서 한 80%는 조선에서 끌려온 녀자들이였소.…》

아사꼬는 마침내 로인의 입에서 《위안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씩 짜내는데 성공하였다. 로인의 기억력은 비상하였다.

그는 그때 등충에서 일본군군인들이 《위안소》로 갈적마다 제비뽑기라든가 도박 비슷한 놀음을 해서 선후차를 가리는것이 례상사였다는것과 등충에서 진지가 함락될 때 일본군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위안부》들을 20여명이나 성벽밑에 세워놓고 총으로 쏴죽인 사실도 증언했다.

아사꼬는 요께찌에게 물었다.

《그때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성노예녀성들의 이름 같은것은 기억나지 않습니까?》

요께찌는 도리머리를 했다.

《그런건 생각나지 않소. 내가 병참장교였다면 몰라라 입대해서부터 전쟁 전기간 위생병노릇을 했으니까… 그때 나는 장교들의 지시하에 일본병정들이 〈위안부〉녀성들을 총으로 마구 쏴죽이고 칼로 배를 갈라 죽이는것을 목격했을뿐이요.》…

아사꼬는 요께찌를 통하여 당시 등충《위안소》에 있던 성노예녀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와 이름 같은것을 확인하려던 자기의 초기계획이 틀어졌지만 뜻밖에도 저세상으로 간줄 알았던 겐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는 생각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됐다! 이제는 겐지를 만나야 한다. 아- 내가 구루메로 와보길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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