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8장 증 인


6


일본법률가협회에 제출할 기소자료를 묶던 아사꼬는 머리를 싸쥐였다.

송산진지에 있던 온천목욕탕에 박순정을 끌고 들어가 변태적인 성욕을 채우다가 리창조의 낫가락에 찔려죽은 그 외눈깔중대장의 범죄를 기소내용에 포함시키는 문제때문이였다. 이 자료는 꼭 넣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경우 히로미오빠는 자기 상관이 살해당하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리창조의 행동을 융화한 공모자로 락인될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오빠의 얼굴에도 먹칠을… 그렇다면 포함시키지 말자.… 아니, 아니다. 조선측이나 중국측에서도 다 아는 사실자료인데 삭제한다면 그건 도리여 우리 일본측의 영상에 그림자나 던지는 노릇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오빠가 불쾌해하더라도 넣어야 한다.…

아사꼬는 히로미를 찾아가서 미리 량해를 구하기로 작정하였다.

이튿날 히로미에게 간 아사꼬는 자기의 의도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를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그는 빙빙 에돌다가 이렇게 찔렀다.

《오빠, 전번에 나에게 오빠네 옛 중대장과 관련한 내용은 더 깊이 파지 말았으면 하였는데 그 심정은 충분히 리해돼요.》

《응?-》

히로미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아사꼬를 바라보았다. 아사꼬가 무슨 말을 끄집어내려는가 하는것을 가늠해보는것 같았다. 볼편이 가늘게 떨리는것이 알렸다.

아사꼬는 전번처럼 또 오빠의 아픈 마음을 건드릴가보아 조심스레 잇댔다.

《그런데 말이예요. 오빠네 그 외눈깔중대장은 정말 호색광…》

아사꼬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히로미가 잘랐다.

《뭐라구? 외눈깔중대장?… 호색광?… 그…그렇게 막 말해선 안돼! 그런게 아니야. 그렇게만 봐선 안된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였어. 히…로히…또가 그…렇게 만들었고 도죠가 그렇게 만들었어! 야수로! 색광으로! 짐승으로! 아, 그래서 난 지금도…》

《오빠, 그건 무슨 말이예요?》

히로미는 가까스로 자제하였다.

《아사꼬야, 이젠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 응? 이 심장이 못 견딜것 같구나. 어휴-》

히로미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마의 땀을 훔치였다.

아사꼬는 더이상 그 문제를 파고들었다가는 오빠의 신상에 일이 날가봐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아사꼬는 이 문제를 놓고 또다시 끙끙 앓았다.

무엇때문일가. 내가 말을 잘못했는가? 아닌데… 그런데 왜?… 여기에는 필경 오빠와 관계되는 또 다른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것 같다. …오빠의 마음이 좀 진정된 다음 오빠의 마음을 잘 사는 전홍상을 앞세우고 가서 다시 알아보자.

며칠이 지나 아사꼬는 전홍을 법률사무소로 불렀다.

《아사꼬상, 이젠 좀 한가한가보지요. 이 못난 〈부덕쥐〉까지 불러주시는걸 보니 말입니다.》

전홍은 너스레를 떨면서 아사꼬의 방에 들어섰다.

《전홍상, 난 지금 그런 롱담을 할새가 없어요. 전홍상이 날 좀 도와주어야 하겠어요.》

《아사꼬상의 일이라면 기꺼이…》

아사꼬는 전홍에게 며칠전 자기가 히로미를 만났을 때 있은 이야기를 하면서 속생각을 터놓았다.

전홍은 벌쭉 웃었다.

《아, 그쯤한 일에 뭘 그리…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히로미상이야 나만 가면… 자, 그럼 당장 히로미상을 찾아갑시다.》

이날 저녁때쯤 아사꼬와 전홍은 히로미가 좋아하는 몇가지 료리와 과일 그리고 마사무네까지 몇병 사들고 승용차에 올랐다.

아사꼬가 운전대를 잡은 승용차는 도꾜시내를 꿰지르며 보소반도쪽으로 한참 달렸다.

그런데 전홍이 갑자기 소리쳤다.

《차를 좀 세우시오.》

차는 길옆 주차장에 멎어섰다.

《왜요?》

《아사꼬상, 방금 지나온 백화점에 좀 들렸다 갑시다. 내 언제부터 히로미상에게 좋은 환자밀차를 하나 선물로 드리자고 했는데 이왕이면 그것도…》

《환자밀차? 됐어요. 전번에 우리 아들이 새 밀차를 마련해올렸어요.》

《아, 왜 그럽니까. 아들이 사다준것과 내가 선물하는것이 같습니까? 자, 어서 내 말대로 합시다.》

전홍은 백화점에서 제일 고급한 환자밀차 한대를 샀다.

이들이 지바에 있는 히로미의 집문을 열었을 때 그는 더없이 반가와하였다.

《어허,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또 유명한 영상져널리스트가 나타났소? 어서들 들어오게.》

《히로미상, 그것도 모르십니까. 오늘이 바로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신령님이 내린 날이 아닙니까. 하하하…》

푸접이 좋은 전홍이 둘렀다쳤다.

《그런가? 사실 오미가미신령님이야 천당으로 간 날만 있지 내린 날이 있던가? 허허허…》

히로미도 전홍의 롱을 즐겁게 받아들이였다.

전홍은 아사꼬와 맞들고 들어와 전실에 놓아둔 새 환자밀차를 가리켰다.

《히로미상, 제가 오늘은 히로미상의 두다리를 마련해가지고 왔습니다. 마음에 드시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서 밀차에 앉아보십시오.》

히로미는 지팽이에 의지하여 뚜거덕거리며 전실로 나갔다.

밀차에 올라앉아 싱글거렸다.

《고맙소, 영상져널리스트! 그러고보니 이젠 이 늙은이의 성한 다리가 여러개나 되였구려. 내 자네가 바라는대로 이 다리로 마음껏 활보를 하지.》

히로미는 그옆에 있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환자밀차를 가리키며 계속했다.

《저것도 지난 여름 내 생일때 우리 손자가 나에게 선물한 좋은 밀차요. 하여튼 전홍상, 고맙소. 고마우이!》

잠시후 상우에 음식들이 차려지고 거기에 아사꼬와 전홍, 히로미가 마주앉았다. 전홍이 마사무네병꼭지를 뗐다. 히로미는 사양없이 큼직한 잔을 쭉 냈다.

전홍은 입을 딱 벌렸다.

《히로미상은 지금도 주량이 괜찮습니다.》

《남아의 주량은 도량이야.》

히로미는 몹시 즐거워하였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과 술상을 놓고 마주앉았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정말 이 술이란건 신령스러운 물건입니다. 한잔만 들어가도 만사가 오케이이고 옛날에 가슴아프게 새겨넣었던 일들도 술술 다 쏟아놓을수 있으니 말입니다. 허허허… 참, 히로미상, 전번에 우리가 중국 송산이라는 곳에 갔을 때…》

전홍의 입에서 송산이라는 말이 나오자 히로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사꼬가 슬그머니 전홍의 무릎을 툭 쳤다. 전홍도 긴장해졌다.

아사꼬는 더는 숨박곡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오빠옆으로 다가앉으며 머리속에서 굴리던 말을 쏟아놓았다.

《오빠, 이젠 뭘 더 숨기겠나요. 오빠는 왜 지금도 그 중대장에 대해… 그가 대체 어떤 사람이나요?》

히로미가 머리를 쳐들었다.

《망할 년, 그래 정 알아야 하겠느냐!-》

씩씩 거친 숨을 내불면서 고함을 지르던 히로미는 퍼런 피줄이 살아오른 관자노리를 씰룩거리며 턱을 덜덜 떨었다.

아사꼬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였다. 너무도 놀라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홍도 눈이 왕사발만 해졌다.

다른 방에 가있던 아사꼬의 아들과 며느리가 무슨 일인가 해서 황황히 뛰여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인가! 후들거리던 히로미의 주먹이 앞상우에 탕- 하고 떨어졌다.

아사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의 입이 험상궂게 이그러졌다.

《그… 그… 중대장이 바로, 바로 너의 외… 삼촌 니쇼꾸야!- 어허허-》

히로미는 말을 끝맺는 동시에 음식그릇들이 있는 상우에 머리를 쿡 박더니 옆으로 나가쓰러졌다.

《뭐… 뭐라구요?》

아사꼬도 어찌나 놀랐던지 순간에 졸도해버리고말았다. 그의 눈에는 흰자위만이 가득차있었다.

집안식구들이 사색이 되여 돌아갔다.

《외삼촌!-》

《어머니!-》

《외삼촌, 이게 무슨 일이예요?-》

《어머니, 어머니! 정신차리세요!-》

순간에 란리가 터졌다.

구급차가 달려오고 의사들이 들이닥쳤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히로미와 아사꼬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때로부터 거의 보름동안 아사꼬의 법률사무소는 문을 닫아맸다. 항간에서는 아사꼬가 급병으로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도 돌았고 어느 온천료양소에 가있다는 풍문도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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