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8장 증 인


7


여기가 그 악귀같은 쪽발이들이 사는 나라란 말인가? 비행기승강대에 나선 박순정은 으시시해났다. 12월의 맵짠 겨울바람이 옷섶을 쑤시고들어서만이 아니였다. 호색마귀들이 사는 나라에 왔다는 생각때문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비행장주변의 즐비한 주택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러나 박순정의 눈에는 그 모든 집들이 꼭 승냥이들이 사는 굴처럼 보였다. 이게 일본인가? 나중에는 별 더러운 나라에까지 걸음을 다하는군…

지금 박순정은 도꾜에서 열리는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녀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검사단과 함께 일본 나리다비행장에 도착하는 참이다. 일행에는 황정식과 김진희를 비롯하여 전번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되였던 성원들이 거의 다 포함되고 재판정에서 증언할 여러명의 피해자녀성들도 들어있었다.

김진희가 박순정의 팔을 꼭 껴잡고 승강대계단에 발을 내려짚었다.

《할머니, 조심조심 발을 옮겨짚으세요.》

《그래, 그래.》

비행장에서 총련의 녀맹일군들과 일본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 공동대표들이 일행을 마중하였다.

황정식은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공동대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번대머리사내에게 물었다.

《아사꼬선생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네, 아사꼬상은 지금 병이 몹시 심해 치료를 받고있는중입니다. 십상은 이번 녀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하지 못할것으로 예견됩니다.》

황정식은 몹시 아쉽고 한편으로는 아사꼬의 신상이 걱정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번대머리 우익계공동대표가 황정식에게 허튼소리를 했던것이다. 아사꼬는 그때 치료를 받으면서도 《〈위안부〉생존자 박순정의 증언》이라는 기소문을 작성하여 일본법률가협회에 제출하고 이어 녀성국제전범법정 참가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었던것이다.

바로 이때 비행장역사구내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서는 사나이가 있었다. 전홍이였다. 나고야에 가서 일을 보다가 뒤늦게야 박순정과 황정식을 비롯한 조선측 일행이 나리다비행장에 도착했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오는중이였다.

전홍은 박순정에게 허리를 굽석했다.

《박할머니, 그사이 무고하셨습니까? 먼길을 오시기에 힘이 드셨겠습니다.》

박순정의 눈이 커졌다.

《오, 촬영가선생인가? 일없네, 일없어. 그런데 법률가선생은 왜 안 보이나?》

《네, 아사꼬상은 지금 몸이 좀 편치않아서…》

박순정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런…》

《그리 걱정하실건 없습니다. 이제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러 올겁니다.》

조선측 일행은 도꾜의 신쥬꾸에 있는 어느 한 호텔에 들었다.

그들이 호텔방에 려장을 풀기 바쁘게 총련 조선신보사, 《마이니찌신붕》, 《아사히신붕》, 교도통신사를 비롯한 여러 신문 및 통신사들의 기자, 촬영가들이 련이어 들이닥쳤다.

이렇게 되여 박순정은 그날 저녁녘까지 황정식과 김진희와 함께 호텔응접실에서 기자들과 촬영가들의 시달림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본의 정계와 사회계 그리고 민심을 세차게 휘저어놓은바 있는 조선인성노예생존자 박순정의 도꾜도착소식은 나래를 펴기 시작하였다.

호텔로는 기자들만이 아니라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력사가들과 대학교수들도 찾아들었다.

저녁무렵 호텔정문으로 환자밀차에 앉은 로인과 손에 지팽이를 든 턱수염이 허연 로인이 전홍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밀차에 앉은 로인은 히로미였고 지팽이를 든 로인은 요께찌였다. 그뒤로 작은 가방을 어깨에 건 아사꼬가 들어섰다. 그의 어깨는 여느때없이 축 처져있었다.

히로미와 요께찌가 호텔응접실에 들어서자 전홍은 황정식을 만나 뭐라뭐라 말한 후 사람들속에 싸여있는 박순정에게로 다가갔다.

《할머니, 제가 누구들을 데리고 왔는가를 좀 보십시오.》

《?》

박순정이 밀차에 앉은 로인과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엉거주춤해 서있는 로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누구들인지?…》

전홍이 제꺽 소개를 하였다.

《할머니, 이 로인이 바로 할머니를 기억하고있는 히로미상이고 저쪽에 선 로인은 등충수비대에 있었다는 요께찌입니다.》

《어엉? 누… 누구라구? 그 중대장련락병?…》

순정은 안락의자등받이에 기대였던 몸을 움쭉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돋보기너머로 환자밀차에 앉아있는 히로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앞에서는 먄마의 산간토착민들의 죽창에 찔리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멍청히 자기를 올려다보던 젊은 시절의 히로미의 모습이 어룽거리였다.

히로미는 입귀를 씰룩거리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지 턱을 덜덜 떨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박순정의 시선과 히로미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순간 호텔응접실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주위에 몰켜들었던 사진기들만 펑긋- 펑긋- 화광을 뿜었다. 전홍의 손에 들려있던 촬영기도 가동을 시작하였다.

히로미의 걸걸한 음성이 얼어붙은 공기를 갈랐다.

《〈와…와까하루〉, 아…아니 박…박…박상!-》

박순정의 육신이 흠칠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두팔을 공중으로 내흔들며 허둥거리던 히로미가 밀차에서 내려 무릎을 꺾었다.

그리고는 엉금엉금 네발걸음을 하면서 소리쳤다.

《나요. 나, 히로미… 나도 옛날 당신과 같이 〈위안부〉로 끌려다니던 불행한 조선녀성들을 쵸센삐라고 부르며 학대하던… 죄많은 일본군대였소. 날 용서해주시오.》

아무말없이 히로미를 내려다보던 박순정은 김진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히로미도 옆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는 고개를 숙인채 안경을 벗어들고 눈물을 닦았다.

박순정의 시선은 다시 히로미의 얼굴에 가박혔다. 곤명호텔에서 아사꼬가 내보이던 사진속의 히로미가 틀림없었다.

히로미, 당신도 늙었구려. 그 못된 히로히또와 도죠때문에 평생 불구로 살아온 당신의 한생도 정말 기구하구만.…

억이 막힌 눈길로 히로미를 내려다보는 박순정의 눈앞에서는 후렁한 일본군사병복장을 하고 털부숭이중대장의 뒤를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던 젊은 시절의 그의 모습이 방불히 그려졌다.

《히로미, 당신도 용케 아직까지 살아있었구만.》

박순정과 히로미의 극적인 상봉은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유독 한사람만은 이들의 상봉을 두고 가슴을 쥐여뜯고있었다. 호텔응접실의 대리석기둥뒤에 서서 감히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있는 아사꼬였다. 자기야말로 야수의 조카, 호색광의 조카라는 그런 죄의식때문이였다. 아사꼬는 불행한 두 로인의 상봉을 지켜보면서 내내 울고있었다.

박순정과 히로미가 해후를 한 다음에야 엉거주춤해있던 요께찌가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갑삭하며 말했다.

《난 저… 등충수비대에서 위생병으로 있던 요께찌올시다. 죄많은 일본인중의 한사람입니다. 박상이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를 바랍니다.》

《?》

요께찌는 히로미를 힐끔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이였다.

《히로미상, 어서…》

히로미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의사가 통한 두 로인은 머밋머밋하더니 환자밀차에 실려있는 가방속에서 각기 번쩍거리는 자개박이함통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박순정이 마주한 탁우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박상, 약소하지만…》

《우리의 속죄금으로 여기고 받아주시오.》

히로미와 요께찌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였다.

박순정은 물론 황정식과 김진희도 벙벙해졌다.

히로미와 요께찌는 떨리는 손으로 각기 자기가 올려놓은 함통뚜껑을 열어제꼈다. 함통안에는 두툼한 일본지페묶음이 들어있었다.

히로미와 요께찌의 움직임과 함통안의 지페를 번갈아 보던 박순정의 인상이 별안간 확 달라지더니 입에서 칼날같은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이건 무슨짓이요? 그… 그래 속죄를 한다는 당신들이 생각해낸것이 고작 이… 이거요? 그… 그래 우리를 두번다시 모욕할텐가 말이요?-》

몸을 흠칠하던 히로미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아니, 그래도…》

요께찌가 황황히 다가서며 허리를 굽혔다.

《너무 적어서 그럽니까?》

박순정의 눈이 무섭게 번뜩이였다.

바로 그때 대리석기둥뒤에서 그 모든것을 보고있던 아사꼬가 으윽- 하는 소리를 내더니 얼굴을 싸쥐고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아, 오빠는 생각을 왜 그렇게밖에 못하는지… 박순정의 말이 백번 옳다. 그가 당한 치욕은 몇몇 전 일본군복무자들이 내미는 그런 돈으로 절대로 씻을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하긴 돈으로 죽고살고하는 이 사회에서 한생을 살아온 히로미오빠나 요께찌상으로서는 그런걸 알수도, 리해할수도 없지!)

이날 저녁 도꾜 신쥬꾸의 호텔에서 있은 일본군성노예생존자 박순정과 전 일본군복무자들인 히로미, 요께찌와의 상면끝에 벌어진 《개인보상금거부사건》은 인차 날개를 달고 도꾜시내는 물론 일본의 각지로 파다하게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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