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제8장 증 인


8


도꾜 구단회관은 야스구니진쟈가까이에 있었다.

이날 회관은 성황을 이루었다. 회관안은 물론 회관밖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붐비고있었다.

여기서 이제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녀성국제전범법정》이 진행되는것이다. 엎디면 코닿을데인 야스구니진쟈에 웅크리고있는 성노예범죄를 저지른 주범들의 《영령》들을 묶어다가 피고로 내세운 녀성들의 국제법정이였다.

녀성들이 기본을 이루었지만 국제적으로 이름난 법관들을 비롯하여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어제까지 맑았던 하늘이 이날에는 울적한 표정을 짓고 슬픔의 눈물인양 진눈까비를 뚝뚝 떨구고있었다.

법정에는 숱한 법률가들이 모여왔다. 법정판사단, 수석검사단, 피해 각국의 검사단들과 법률고문단들… 어느 하나도 허술히 볼것이 없었다. 모두가 바늘도적으로부터 살인범에 이르기까지, 특대형의 국제범죄에 이르기까지 온갖 류형의 범죄들을 솜씨있게 다루어보았다는 관록있는 법관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거기에다 피해자녀성들과 전 일본군복무자들, 국제공개청문회 성원들과 전문가증인단, 개별적인 증인들과 각국의 인사들까지 합하면 1 000여명을 헤아리였다. 사람사태가 날 지경이였다. 물론 올빼미눈과 박쥐귀를 가졌다는 각국에서 온 유명무명의 기자들도 그속에 무수히 끼여있었다.

홍영숙을 단장으로 하고 황정식과 김진희외 여러명으로 구성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검사단과 증인단성원들은 박순정을 비롯한 몇명의 피해자들을 앞세우고 회관에 들어섰다.

회관홀 벽면에는 과거의 일본군성노예제를 발가놓는 사진자료들이 수많이 전시되여있었다.

《법정피고석》이라는 패쪽을 써붙인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있었다.

황정식은 김진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도 가봅시다.》

피고석에는 피고인들의 큼직한 사진들을 붙인 큰 광고판이 걸려있었다. 피고인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왜왕 히로히또, 일본수상 도죠 히데끼, 중국파견 일본군사령관 오까무라 야스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조선강점 일본군사령관 이따가끼 세이시로, 일본군참모장 우메즈 요시지로, 대만총독 안도 리끼찌, 먄마방면군 일본군 제56사단장 마쯔야마 유조였다.

박순정은 피고들의 사진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신수는 펀펀한 놈들이구만.》

황정식이 웃으며 응대했다.

《할머니, 신수는 펀펀해도 속에는 짐승이 들어앉은 놈들입니다.》

《그래그래, 죄다 짐승들이고 호색마귀들이야.》

사람들이 붐비는 속에서 중국측 검사단성원들인 경증성과 과진량이 박순정을 띄여보고 다가왔다.

《할머니, 그새 무고하셨습니까? 년로하신 몸에 또 수고로이 예까지 오셨습니다.》

그들은 박순정의 손을 붙들고 허리를 굽석했다.

《어이구, 선생들도 오셨구만. 내 여기까지 오긴 힘들었지만 저 히로히또랑 기어이 재판해야 하겠다는 악심을 먹고 기를 쓰고 왔수다. 허허…》

박순정은 김진희의 부축을 받으며 황정식, 경증성, 과진량 등과 함께 회관객석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법정 개막행사가 진행되는 회관객석은 정말로 사람사태가 났다. 객석의 앞줄로부터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지역 그리고 네데를란드에서 온 70~80고령에 이른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앉고 그뒤로 각국에서 온 청중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좌석이 모자라 어떤 사람들은 통로 한켠으로 개별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청중들이 술렁거리였다.

장내에 음악이 울리더니 앞쪽에서 4명의 녀성들이 각기 《태양》, 《꽃》, 《초불》, 《사람의 눈》을 형상한 커다란 기발 같은것을 들고 입장하는것이였다.

객석 앞줄에 앉은 박순정은 우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그와 나란히 앉은 김진희가 나직이 속삭이였다.

《할머니, 저건 이번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법정의 상징기발입니다. 〈태양〉을 그린건 희망을 상징하고 〈꽃〉을 그린건 녀성을 의미해요. 그리고 〈초불〉은 성노예피해자들을, 〈사람의 눈〉은 정의를 상징한거랍니다.》

박순정은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숭엄한 분위기속에서 네쪽의 기발이 정방형으로 무어져 앞쪽 벽면에 크게 써붙인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녀성국제전범법정》이라는 간판밑에 게양되였다.

이어 무대조명이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일본군의 반인륜적범죄에 대한 분노인양 시퍼런 빛갈의 배경판우에 이 법정에 오지 못한채 한을 안고 눈을 감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지역의 성노예피해자들의 초상이 비쳐졌다.

객석에 앉았던 각국에서 온 피해자녀성들이 무대로 올라 추모의 꽃을 한송이씩 그 초상들앞에 놓고는 눈굽을 찍었다. 꼬리를 문 그들의 수는 놀랄 정도로 부지기수였다.

이런 속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한 흑인녀성이 무대로 뛰여올라가 노래 《우리는 승리하리라》를 선창하자 참가자모두가 합창하였다. 언어가 다르고 소리색갈도 각이했으나 하나로 합쳐진 그 목소리들은 기어이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주모자들을 처벌하고 일본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야말 의지를 유감없이 시위하였다.

특이한 형식으로 진행된 개막행사가 있은 다음날 구단회관에서는 정식 법정이 시작되였다.

법정집행부 성원들이 각기 자리를 차지하였다. 무대 왼쪽에는 각국 검사단성원들이, 가운데는 수석검사와 서기들이, 오른쪽에는 판사단성원들이, 그뒤에 이번 법정조직위원회 공동대표들이 앉았다.

각국 검사단성원들에 대한 소개가 있은 다음 판사단의 수석판사가 연단에 나섰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있는 녀성판사였다.

그는 류창한 목소리로 법정의 헌장을 랑독하였다.

《…

본 법정은 일본군성노예제도를 산생시키는데서 주역을 논 개인들에 대한 책임과 거기에 관여한 일본정부의 책임에 대하여 물을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와 관련하여 현 일본정부에 오늘의 이 법정에 참석해줄것을 요청했으나 응답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바입니다. 그러나 현 일본정부가 어찌하든 본 법정은 자기가 할바를 다 할것입니다. 이번 국제재판은 12월 12일 본 법정 판사단에 의해 판결될것이며 최종판결은 래년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내려질것입니다.》

법정개최선언에 이어 큰 키에 법관복이 잘 어울리는 흑인녀성인 수석검사가 본 법정공동검사단의 기소요지를 발표하였다. 그도 이미 세계의 여러 전범자국제재판에서 명성을 날린 국제검사였다. 그는 먼저 공동검사단의 이름으로 모든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을 원고로, 왜왕 히로히또와 도죠 히데끼, 미나미 지로, 이따가끼 세이시로, 오까무라 야스지, 우메즈 요시지로, 안도 리끼찌, 마쯔야마 유조를 피고로 기소하면서 이렇게 력점을 박았다.

《일본군성노예제도의 확립과 그 집행은 정부와 군부의 전적인 관여하에 강제적으로 조직되고 실시된 성노예행위로서 전쟁범죄와 인도에 관한 죄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성노예범죄자들을 모두 찾아내여 그가 이미 죽었건 현재 살아있건 관계없이 해당한 처벌을 선고하여야 하며 일본정부는 과거의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하여 국가적인 법적책임을 지고 사죄배상하여야 합니다.…》

법정은 처음부터 피고들에게 유죄를 판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세력들의 저항도 집요했다.

일본측의 한 변호사는 변론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기소요지에 공감되는 점도 없지 않지만 사실 이번 법정에 내세운 피고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기때문에 재판이 성립될수 없습니다. 피고인들이 참석하지 않은 법정에서 유죄판결은 불가능합니다.…》

뒤따라 일어선 다른 변호사도 이에 편승하였다.

《피고인들이 참석하지 않은 조건에서 범인들에게 형벌을 주고 일본정부에 책임을 리행시키는 문제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현재상태에서 일본정부에 그 어떤 국가적인 사죄나 배상을 요구하기는 곤난하다고 보아집니다.》

청중들속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났다. 분격한 사람들이 당장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날 태세였다. 여기저기에서 일본변호사들에게 차거운 눈총을 쏘았다.

여러 나라들에서 온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을 비롯하여 청중들의 격분은 극도에 달했다.

박순정은 곁에 앉은 김진희가 통역해주는 말을 듣고 일본측 변호사들의 행위에 분개하여 주먹을 내두르다가 눈에 흰자위를 가득 채운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법정의 시선이 일순 박순정에게로 모아졌다. 온통 주름살로 뒤덮인 그의 얼굴이 밀랍덩이처럼 되였다.

의료방조성원들이 부랴부랴 박순정을 부축하여 회관에 림시로 꾸려놓은 구급치료실로 데리고 나갔다.

일본측 검사단석에 앉아서 그 모든것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아사꼬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더우기 천인공노할 성노예범죄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자기네 변호사들의 발언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당신들도 나와 함께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되여 남경과 송산전역을 밟아보았더라면 감히 그런 말을 할수 없었을것이고 또 지금처럼 비난의 화살도 받지 않았을거요.…

아사꼬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두 변호사들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황정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법정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법에 의하면 국가는 국가를 구성하는 기관, 단체들의 행위와 국가공무원들의 공무집행과정에 나타난 비법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며 국가기관이 아닌 단체나 개인들이 국가의 지시나 리익을 위하여 수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지게 되여있습니다.

또한 국가는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자신의 리익을 위하여 수행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법에 어긋나는 불법행위라는것을 알면서 사전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도 법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여있습니다.

그래 〈법치국가〉라고 자랑하는 일본국이 이런 초보적인 법적론리도 모른단 말입니까.

이미 기소요지에서 제기된바이지만 일본군성노예제는 당시의 일본륙군성과 해군성에서 모의, 계획, 지령하였으며 여기에 외무성, 내무성, 로동성 등 여러 국가기관들이 관여하였습니다. 민간업자들이 관여한 경우에도 전적으로 군당국의 지령에 의하여 또 군당국의 적극적인 방조하에 진행되였습니다. 이 몇가지 사실만 놓고보아도 일본군성노예제의 주범들을 피고석에 내세우는것은 물론 이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누구나 쉽게 내릴수 있을것입니다.》

그는 론리정연한 주장으로 일본측 변호사들의 궤변을 일축해버렸다.

이날 법정에서 청중의 이목을 모은것은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주범들인 히로히또를 포함한 8명의 범죄자들에 대한 형사책임과 일본의 국가책임을 법률적으로, 력사적으로 까밝힌 북과 남에서 온 검사단들의 공동기소였다. 우리 공화국의 검사단은 물론 남조선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인사들로 구성된 남측검사단도 이 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 북과 남이 공동보조를 취하는데 대하여 쌍수를 들었던것이다. 삼천리강토는 아직 분렬되여있어도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마당에 나선 북과 남의 마음은 벌써 통일된셈이였다.

공동기소장발표는 북과 남의 검사들이 엇바꾸어 연단에 나서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분노와 증오가 서리서리 얽힌 장문의 북남공동기소장은 부여된 권한에 따라 피고들인 왜왕 히로히또와 도죠 히데끼, 오까무라 야스지, 미나미 지로, 이따가끼 세이시로, 우메즈 요시지로, 안도 리끼찌, 마쯔야마 유조를 전쟁범죄와 인도에 대한 죄로 기소했다. 동시에 기소장에는 일본이 1907년 헤그 제4협약 《륙전법규와 관습에 관한 협약과 그 부속규칙》, 1910년 《매춘을 위한 부녀단속에 관한 국제조약》, 1921년 《부녀 및 아동매매금지에 관한 국제조약》, 1926년《노예제도 및 노예무역철페에 관한 협약》, 1930년 《국제강제로동조약》 등 여러 국제성문조약들과 당시 관습법들을 란폭하게 위반한것으로 하여 군성노예제에 대한 국가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고 명시되여있었다.

연단에 나선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위원장인 조선측 검사단 단장 홍영숙은 저력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판사단, 국제검사단 여러분! 그리고 거의 한생을 피눈물을 씹어삼키며 엄청난 고통과 한을 안고 살아오신 각국의 일본군성노예제피해자 여러분!

나는 이 법정이 그 누구를 복수하려고 마련된것이 아니라고 한 법정조직위원회 공동대표의 발언에 공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싶습니다.

〈후안무치한 일본정부도 이제는 대세를 똑바로 보고 21세기가 되기 전에 불미스러운 과거를 다 청산하자. 20세기의 더럽고도 더러운 묵은때를 그냥 가지고 21세기로 넘어갈수야 없지 않는가.〉…》

그는 20세기초부터 조선반도를 타고앉은 일제가 관권과 군권의 힘을 빌어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 랍치, 유괴하여 저들의 성노예로 부려먹은 력사적사실들을 립증하는 록화물의 화면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단죄하였다.

《수많은 조선녀성들을 성노예로 전쟁마당에까지 끌고 다니다가 칼로 찔러죽이고 총으로 쏴죽이다 못해 나중에는 집단적으로 생매장하여 학살한 이 력사적사실은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조선민족의 씨를 말리워 지구상에서 조선민족자체를 말살해버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감행한 가장 극악한 반인륜적인 대범죄입니다.》

이어 공동기소에 나선 황정식은 일본군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의 소녀로부터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가림없이 가장 야수적인 랍치와 강제련행, 회유, 기만의 방법으로 군성노예로 끌어간 사실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면서 사리정연한 론고와 주장을 펴나갔다.

북과 남의 검사들이 연단에 나서서 기소할 때마다 회관의 좌우벽면에 걸린 전광판들에 그것을 립증하는 록화화면이 비쳐지고 그런 속에서 북과 남에서 온 피해자녀성들의 사실증언도 동반되였다.

박순정은 기어이 재판정에 나서서 증언을 하겠다고 비척걸음으로 다시 증인석에 들어와 앉았지만 격분이 극도에 이른데다가 육체가 너무도 쇠진하여 끝내 말문을 열지 못하였다. 그래서 대신 3개국합동조사단이 현지에 나가 촬영한 록화화면을 내비치면서 김진희가 박순정의 심중의 말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사실증언을 하였다.

거의 3시간에 걸쳐 진행된 북남공동기소마감에 연단에 나선 북측검사는 일본군의 성노예제에 대한 일본국가의 책임을 론증하면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군성노예제에 대한 철저한 해명과 공개, 책임인정과 공식사죄, 배상, 처벌 등 8개 항목에 달하는 정부책임리행사항을 제기하였다.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올랐다. 이렇게 법정에서 히로히또를 비롯한 군성노예주범들과 일본정부가 재판을 받고있을 때 구단회관 앞마당에서는 일본의 우익깡패들이 법정을 무산시키기 위한 란동을 꺼리낌없이 벌리고있었다.

그러나 개가 짖어도 행렬은 가는 법이다.

공동기소에 이어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각국의 검사단 검사들이 앞을 다투어 연단으로 나섰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본정부의 후안무치성에 대하여 단죄하면서 공식사죄, 배상, 처벌 등으로 일관된 일본정부의 책임리행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가슴에 한을 안은 여러 나라 피해자녀성들이 주먹을 내두르며 앞을 다투어 사실증언에 나섰다.

중국에서 온 한 녀성은 자기가 일본군에게서 당한 기막힌 성폭행사실을 증언하다가 까무라쳐 담가에 실려나가는 일까지 빚어졌다.

중국, 필리핀, 네데를란드, 인도네시아, 동부띠모르 등 여러 나라들에서 온 검사단들의 기소장발표가 있은 뒤였다.

또다시 장내가 갑자기 술렁거리였다. 머리가 허연 로인이 환자밀차에 앉은채로 연단에 나섰다. 전 일본군복무자 오따니 히로미였다.

가해자로서 스스로 증언에 나선것이다.

히로미는 증언끝에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의 성노예제는 감출수 없는 실체입니다.… 군인들을 이렇게 만든것은… 히…히로히또였고 도죠 히데끼였습니다.…》

환자밀차가 퇴장하자 이번에는 턱수염이 새하얀 로인이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증언에 나섰다. 요께찌였다.

그는 피해자녀성들이 앉은쪽으로 몸을 돌리고 허리를 굽혔다.

《…이 늙은 전 일본군복무자를 용서하시오. …그때 우리는 군〈위안부〉제도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순응하도록 요구한 일본군부와 정부의 그 반인륜적인 처사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 머저리들이였소. 오늘 죽지 않으면 래일 죽을것은 뻔한 일이라고 여겼기에 〈위안소〉에 다니는것을 자기 운명에 대한 미련과 불우한 처지를 일시나마 잊어버리는 기회로 삼은 천치들이였소.…》

아사꼬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드디여 그 시각은 왔다.

법정 마감날 수석판사가 다시 연단에 나섰다. 최종판결을 선고하기 위해서였다.

장내는 숨죽은듯 했다. 수석판사가 나선 연단주위에 촬영기들과 마이크들이 벌떼처럼 몽켜 돌아갔다.

천여명의 시선을 모아쥔 수석판사는 장내를 한번 쭉 훑어보더니 옆에 끼고 나온 큼직한 판결문을 숙련된 동작으로 쫙 펼쳐들었다.

그의 무게있는 목소리가 장내의 침묵을 깨뜨렸다.

《본 법정은… 기소된 피고들인 이전 일본〈천황〉 히로히또와 수상, 륙군대신, 내무대신을 겸임했던 도죠 히데끼, 중국파견 일본군사령관 오까무라 야스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조선강점 일본군사령관 이따가끼 세이시로, 일본군참모장 우메즈 요시지로, 대만총독 안도 리끼찌, 먄마방면군 일본군 제56사단장 마쯔야마 유조를 유죄로 판결한다!》

순간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내솟았는지 증인석의 피해자녀성들이 두손을 허공으로 뻗쳐들고 거세찬 파도마냥 와르르- 자리를 차고 일어나 환호를 터뜨렸다.

법정은 온통 눈물과 환희의 격정으로 끓어번졌다. 병약한 육체를 끌고 법정무대로 올라간 머리가 흰 피해자녀성들은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울고웃으며 돌아갔다. 안면이 있든 없든, 언어가 통하든 안 통하든 상관이 없었다. 춤이라도 출듯 어깨를 들썩이며 덩실거리던 그들은 재만 꽉 찬 가슴들을 대문짝처럼 활 열어제끼였다.

《내…내가 오…늘을 보자고 눈을 감…을수가 없었지.… 어허허허…》

《그래, 그래. 원쑤 못 갚고 그저 죽을수가 있나.… 하여튼 속이 한결 풀리는것 같소. 아하하-》

《히…로히또의 위패를 내다놓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해야 돼!》

《그렇잖구. 도죠도, 오까무라도, 미나미도…》

피해자녀성들속에 끼워서서 피기가 다 빠진 조글조글한 입술을 씰그러뜨린채 눈물만 쏟던 박순정이 펄썩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김…녀야!- 이… 이 소리를 듣느냐? 김녀야!-》

진희가 놀라서 돌아보니 박순정이 바닥에 주저앉아 세찬 격정에 흐느끼고있었다. 이때 《박상!-》 하고 그를 부르며 다가간 아사꼬가 박순정을 안아 일으켰다.…

이렇게 히로히또를 포함한 8명의 성노예범죄의 주범들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그 이듬해 네데를란드 헤그에서 진행된 국제법정에서도 이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주범들의 유죄를 최종판결하였다.)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녀성국제전범법정》은 1946년 도꾜국제군사재판소에 기소되지 않았던 왜왕 히로히또를 기소심리하고 그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성노예범죄자들이 요행수로 법적처벌을 면할수는 있어도 자기들의 죄과를 결산하지 않는 한 저승에 가서도 인류의 공정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심각한 력사의 진리를 남기였다.

군성노예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정식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온 일본땅을 뒤흔들었다.…


×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의 〈위안부〉생존자 박순정》이라는 도서가 출판되여 온 일본땅을 뒤흔들어놓았는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도모이 아사꼬였다.

책에는 일본군성노예제도에 일본정부의 관여가 있었다는것 그리고 성노예모집의 강제성을 립증하는 구체적인 사실자료들과 군성노예제의 희생물이였던 피해자녀성들의 비참한 생활이 생동하게 반영되여있었다. 일본신문기자협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 도서는 일본군의 성노예범죄에 대한 더없이 위력한 력사의 증언이였다.

아사꼬는 이 책이 출판된 후에 다시 평양을 방문하였다. 평양에서 열리는 일본군성노예범죄와 관련한 국제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중국의 경증성, 과진량, 소자영을 비롯한 3개국 합동조사에 참가했던 일본군성노예문제전문가들도 평양으로 왔다.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도 아사꼬와 동행하였다.

아사꼬는 황정식, 김진희, 경증성, 과진량, 소자영 등을 만난 자리에서 자기가 집필한 책을 그들 매 사람들에게 주었다.

황정식은 아사꼬에게 말하였다.

《아사꼬선생, 그러니 박순정할머니를 일본군성노예범죄의 〈민간업자책임론〉의 증인으로 내세우려던 선생이 이젠 정부책임론의 증인으로 되였구만요.》

《물론이지요. 세상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제도는 전적으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어찌 저라고 외면할수 있겠습니까.…사실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일본정부와 군부에 의해 산생된 문제이므로 〈민간업자책임론〉의 증인이라는 말은 동에도 닿지 않는것이고 따라서 여기엔 오직 정부책임론의 증인만이 있을뿐입니다.…》

아사꼬는 옳게 말했다.

아사꼬가 아니라 그 어떤 일본인이든 박순정의 피맺힌 과거가 산재되여있는 중국 남경과 송산, 아니 과거에 일본군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 설립했던 400여개소에 달하는 《위안소》들중 어느 한곳만이라도 가본다면 다 아사꼬와 같이 정부책임론의 증인으로 나서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일본군성노예범죄와 관련한 국제토론회가 개최되던 날 토론회장소인 인민문화궁전 앞마당에서 홍영숙과 황정식, 김진희를 비롯한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 일군들과 중국측의 경증성, 과진량, 소자영 그리고 일본에서 온 아사꼬와 여러명의 녀성인권문제전문가들은 또다시 뜨겁게 손을 잡았다.

그날 평양의 하늘가에서는 피빛으로 타는 진한 노을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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