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시라


제 2 장 량심의 선고


6


비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은 별빛 하나없이 캄캄했다. 희미한 가로등만이 밤안개에 싸인 조용한 거리를 비치고있었다.

퇴근시간이 퍽 지나서야 자기 방을 나선 권일학은 머리를 짓숙인채 걸음을 옮겼다. 늦은 저녁이여서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도 드물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눈에 익고 검불 하나 없는 깨끗한 인도로였지만 어째선지 자주 발이 걸채였다.

권일학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오늘처럼 괴로와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사람들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터놓는것이 죽기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적도 없었다. 그러나 할말은 하고야말았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허탈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강학선의 모습이 또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그다음 자기 손을 뿌리치던 강학선, 그때 수치와 번민에 모대기던 그의 눈빛은 얼음쪼각처럼 차겁게 번쩍이였었다. 단순한 노여움이나 서운함이 아니라 원망에 가까운 그런 눈빛이였다.

어디선가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또 한소나기 쏟아부을것 같다.

그때였다. 마주오던 웬 청년이 갑자기 멎어서며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술부원장선생님.》

권일학은 두눈을 쪼프리며 가로등밑에 서있는 청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군인들처럼 짧게 깎은 머리, 정성껏 닦아신은 군화… 그 청년의 옆에는 갸름하게 생긴 한 대학생처녀가 화판을 메고 서있었다.

청년이 벌씬 웃었다.

《기술부원장동지, 전 새로 온 산원 구급차운전사입니다.》

그제야 생각났다. 다른 나라의 산원엔 구급차가 얼마나 있는가고 묻던 그 제대군인친구이다.

《아, 그렇구만. 이름이 뭐라 했던가?》

《옛, 주동국입니다!》

청년이 발뒤축을 딱 붙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주동국이라구 했지. 그런데 이 처녀는?》

《제 누이동생입니다. 미술대학에 다니는데 지금 졸업반입니다.》

처녀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 그렇구만.…》

권일학은 꼭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며 오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동국이 싱긋 웃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저… 전 구급차야간대기근무여서 지금 산원에 나가는 길입니다.》

《야간대기근무라…》

이렇게 되받으면서도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권일학은 아무 의미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길을 내주었다.

《음, 그럼… 수고하겠소.》

《안녕히 가십시오!》

오누이가 거의 동시에 머리숙여 인사하며 그의 옆을 지나갔다. 이윽토록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는데 처녀의 토라진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분은 오빠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괜히 우쭐해서…》

주동국이 녀동생에게 변명하는것 같았다.

《산원의 큰 기술부원장이니까 나같은 사람을 모를수도 있지 뭐. 구급차운전사만 해도 몇십명인지 알기나 해?》

웬일인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어떤 맑고 정다운것이 그의 가슴을 덥혀주는것 같았다.

다음순간 머리속에 떠오른 강학선의 원망어린 눈빛은 곧 그 한점 온기마저 가뭇없이 날려버리고말았다. 그는 다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후 집에 들어서니 썰렁한 기운이 풍겼다.

불도 켜있지 않았다.

《어머니.》

대답이 없다. 발자국소리만 나도 문을 차고 달려와 안기던 정철이도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철렁했다. 애가 어디 갔을가? 그리고 어머니는?!…

《정철아!》

또다시 다급하게 부르며 옆방과 부엌에까지 들여다보았으나 여전히 정철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어린게 어디 갔단 말인가, 밤도 깊었는데? 혹시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또 거리로 찾아나간게 아닌지?…

문득 어두운 길가에서 울며 헤매고있을 어린것과 허둥지둥 애를 찾아다닐 어머니의 정상이 떠올랐다. 불시에 거친 화살이 가슴에 박히는것을 느끼며 선자리에서 급히 몸을 돌렸다.

애가 있을만 한 거리방향을 재빨리 속으로 짐작해보며 막 문을 열고나가려는데 마침 어머니가 들어섰다.

《애그, 내가 그만 늦었구나. 옆집에 가서 이걸 마저 해온다는게 글쎄…》

어머니의 가슴엔 두툼한 작업장갑이 무둑하게 쌓여있었다. 며칠전부터 어머니는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고있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당시)건설장에 지원나갈 차비를 서두르고있었다. 거기에는 권일학의 막내녀동생이 청년들과 함께 나가있었던것이다.

권일학이 먼저 다우쳐물었다.

《그런데 정철인 어디 갔어요?》

금방 재봉질한 작업장갑의 실밥을 손으로 잡아끊으며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엔 아까 경철이 에미가 데려갔다. 오늘이 경철이 생일이라구… 글쎄 이 늙은것두 함께 가자는걸 그만 뒀다.

너도 안들어왔는데…》

《예?》

경철이 어머니란 강학선의 처 오기화이다. 애들 이름조차 정철이, 경철이, 마치 형제들처럼 비슷하게 지은 두 집안이였다.

권일학은 저도 모르게 문설주를 잡고있던 손을 맥없이 떨어뜨렸다. 그 어떤 안도감과 함께 그와 전혀 다른, 이름할수 없는 죄스러움과 괴로움이 밀물처럼 가슴에 쓸어들었다.

언제나 사심없이 도와주고있는 강학선과 그의 안해… 그들은 어머니를 잃은 어린 정철이를 집에 데려온 그때에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도와주었었다.

얼마나 가슴아파했던가. 젖먹이 정철이를 두고…

문득 한 녀인, 자기의 담당환자였으며 정철이의 친어머니였던 몸집 자그마한 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동안 부인병을 앓고있던 녀인, 담당의사였던 권일학은 나날이 녀인의 병이 더 심해지는것을 두고 심상치 않게 여겼었다.

《당장 수술해야겠습니다. 훌 떼버리면 깨끗해질거요.》

그러나 환자는 반대했다. 의학적으로 임신하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도 끝내 임신했던것이다.

권일학은 차마 녀인의 소원을 물리칠수 없었다. 그래서 환자의 요구대로 임신을 유지해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약물치료, 물리치료, 온천치료… 그러나 그것이 끝내 악성종양으로 번져질줄이야!

악성종양은 독버섯이 자라듯 무섭게 번식하며 시시각각 녀인과 배안의 생명을 위협했다. 당장 임신을 중절해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아,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의사의 인정에 사로잡혀 환자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으니!…

그러나 제1병원의 나이많은 원장은 그에게 조용히 환자의 수술을 권고했었다. 권일학은 놀랐다.

《아니, 원장선생님, 그 종양환자야 이미 생명의 계선을 넘어선 환자가 아닙니까. 이제 수술을 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겠는데?…》

《그렇지만 혹시 둘중의 하나라도 살릴수 있지 않겠는지?…》

권일학은 말없이 자기를 바라보고있는 원장을 마주보았다. 언제나 침착하고 진지한 이 반백의 로의사, 그는 인제 더는 의학적으로 어쩔수 없다는걸 알고있지만 권일학의 높은 림상기술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있는것이다.

《원장선생님, 그러나 그것이 환자에게는…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수술이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환자는 그 모든걸 알고있소.》

《그렇단 말이지요.… 그래, 가족들은 동의했는가요?》

원장이 조용히 눈길을 떨구었다.

《그 환자의 남편은 한달전에 잘못되였소. 어느 출판물보급소 부원이였는데 당보를 가지고 자강도 림산로동자들을 찾아가다가 눈사태에 묻혀 그만… 지금 그의 당비서가 여기 와있는데 그의 가족을 대신하여 수술립회를 서게 될거요.》

곧 수술이 시작되였다. 쉴새없이 바뀌며 오염그릇에 무둑히 쌓이는 수술도구들!…

드디여 갓난애기의 생명은 구원했지만 녀인은 기름이 마른 등잔불처럼 서서히 꺼져갔다.

행여나 바라던 마지막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자 권일학은 손에 든 수술칼을 으스러지게 그러쥐였다. 의사로서 할수 있는것은 다했지만 이미 내려진 의학적결과는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녀인은 마지막숨을 거두면서도 끝까지 수술칼을 들고 애쓴 권일학을 고맙게 생각했다.

《선생님, 애를 부탁합니다.…》

권일학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그리고 저주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적출하지 못한 자신을 두고 뼈아프게 후회했다. 그는 그때 저주로운 그 악성종양과 함께 그 순간 자기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편협한 나약성과 주저 그리고 값싼 인정과 동정심을 날카로운 수술칼로 베여던지듯 사정없이 잘라버리였다.

울고있는 어린애를 안고 오래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그에게 함께 수술에 참가했던 반백의 원장이 다가왔다.

《너무 그러지 마오. 달리 될수야 없지 않았소. 그 상태에서 갓난애를 살려낸것만도 정말 기적이요!》

가슴을 허비며 애처롭게 울고있는 갓난애… 이 어린것을 위해 녀인은 서슴없이 자기를 던져버렸다. 생명을 버렸다. 목숨까지도 바치는 이 무서운 모성애, 성스러운 어머니의 이런 모성애야말로 그 어느 애정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강렬하고도 철저한, 가장 뜨겁고도 진실한 사랑이 아닐가?…

그때 그 녀인이 남기고 간 피덩이가 바로 정철이였다. 권일학이 제 달수를 채우지 못한 그 갓난애를 안고왔을 때 누구보다도 제 일처럼 안타까와한것은 강학선의 안해였다.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총각이 어떻게 애아버지가 된다는거예요? 더구나 녀인들도 이런 젖먹이를 키우기가 힘든데… 정 그러면 애를 나에게 맡기세요.》

그러나 권일학의 어머니가 먼저 반대했다.

《내가 펀히 살아있는데 무슨 소릴?… 총각이 애아버지가 못된다면 이 늙은이가 애의 친할미가 되면 될게 아닌가.》

그때 강학선의 안해 오기화는 늙은이의 두손을 부여안고 소리내여 울었다. 바로 이런 어머니여서 권일학이도 장한 아들로 키웠다고 눈물을 머금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한 강학선의 부부여서 그들은 정철이를 위해 늘 왼심을 써왔었다. 정철이의 첫돌생일때도 맨먼저 찾아온것이 그들이였고 아이가 앓을 때는 좋다는 약은 다 구해가지고 집에 들리던 그들이였다. 두 집안이 그렇게 가깝게 지내고 허물없는 사이여서 권일학의 어머니는 별음식이 생기면 꼭같이 갈라 오기화에게 보내군 했었고 강학선은 안해에게 자주 늙은 어머니대신 그의 집 부엌동자질과 함께 어린 정철이를 돌보아주도록 했었다.

이러한 강학선을, 자기를 위해 진심을 바쳐온 그를 권일학은 오늘 가차없이 곤경에 몰아넣었다. 그를 법에 넘길수도 있는 랭정한 론거를 세웠고 그것으로 하여 가장 성실한 우애와 사심없는 존경을 헌신짝처럼 차버린것으로 되고말았다.

그래 이제 그의 안해 오기화에게 오늘 일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바로 다름아닌 이 권일학이 그 녀자의 남편을 막다른 지경에 몰아넣었다는것을 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로 받아안을것인가?…

방안에 들어와 쏘파에 몸을 던진 권일학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멍하니 천정만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그저 누구도 자기를 건드리지 말고 그냥 이대로 놔두었으면, 날이 새도록 정신없이 잠들었으면 하고 바랄뿐이였다.

밤은 깊어갔다. 희미한 가로등빛이 창가로 조용히 비쳐들어오고 밖에서는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고있었다. 끝내 잠들수 없었다. 괴로움에 모대기던 끝에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였다. 벽에 걸려있는 외출복을 갈아입고 우산을 찾아들었다. 어째선지 산원에 다시 나가고싶었다. 그러면 마음도 한결 가라앉을것만 같았다.

거리에 나서니 보슬비가 뿌려지고있었다. 가로등빛은 뿌잇해졌고 인도로의 포석은 번들번들해졌다. 길옆의 가로수들도 축축히 젖어있었다.

그는 손에 들고있는 우산을 지팽이처럼 짚으며 그냥 비속을 걷고있었다. 어느덧 속옷까지 젖어드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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